(23)K디스카운트 해소와 삼성 부당합병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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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2월 2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니치 아우어 포럼’에 참석해 ‘정책여건과 금융정책 방향’이라는 강연에서 선순환적인 자본시장 구축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가 특별히 올해 경제부처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지난 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상생금융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하고, 상속세 등 “과도한 세제를 개혁”할 것을 천명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분명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해묵은 숙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약속에 환호하기에 앞서 대통령이 언급한 정책 방향이 과연 이 문제를 해소하는 데 효험이 있는지, 또한 이 문제의 해소와 관련한 또 다른 정책과제는 없는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초기에 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부분은 과도한 상속세제의 개편이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고, 대주주의 경우 추가 할증을 통해 60%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이 수준이 한국 경제의 관점에서 적정한 것인가는 별론으로 하고, 과연 과도한 상속세율 때문에 한국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되는지를 생각해보자.

멀리 갈 것 없이 일본을 보자. 일본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5%로 알려져 있다. 그럼 일본 주가도 이것 때문에 짓눌려 있는가? 그렇게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일본의 닛케이지수는 지난 2월 22일 34년 만에 거품경제 때 달성했던 최고치를 경신했다(물론 닛케이지수의 급등에는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 등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상속세 때문에 주가가 짓눌려 있는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도한 상속세가 원인이라고?

과도한 상속세가 주식 저평가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가 대주주로 하여금 상속세 부담을 절감하기 위해 주가를 하향 관리하고 싶은 ‘유인’을 줄 수는 있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유인’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에서 곧바로 ‘억압된 주가’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은 ‘대주주가 맘만 먹으면 상당한 정도로 주가를 하향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가 관리 행위’는 거의 언제나 불법이다. 일부러 불리한 풍문을 흘리거나, 분식회계를 하거나 또는 시세조종을 수반한다면 당연히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또 유리한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도 대주주의 상속상 필요 때문에 고의로 그런 사업 기회를 포기해 기업가치를 낮추는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자 아마도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만일 상법과 자본시장법 등 주식시장을 둘러싼 경제질서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상속세가 곧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 요인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세금 좀 안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그러니까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주가를 억지로 낮게 관리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는 명제들이다.

여기서 일부 독자들은 “네가 현실을 몰라서 그래. 대주주가 주가를 관리하는 것은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팩트야”라고 필자의 무지를 개탄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속세를 낮춰야 하는가? 아니다. 상속세 수준은 조세 정책의 관점에서 결정하는 것이 맞다. 문제의 핵심은 ‘탈세 또는 절세의 유인’이 실제로 ‘주가 짓누르기’로 나타나는 통로를 정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법과 자본시장법령을 보완하고 분쟁의 최종 심판자인 법원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여러 법령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하고, 이에 관한 법률 분쟁에 대해 법원이 정당한 판단을 내린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무죄 선고한 법원, 대오각성해야

아마도 상속세 논쟁이 부각하는 우리 현실의 어두운 점은 상속세 부담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나라 현실이 자본시장의 이상적 모습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상속세에 민감한 사람들이 재벌 총수와 같은 최고위 자산가들이라는 점, 이들은 언제든지 정권과 직거래하고(국정농단 사건을 보라), 법원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재벌 총수에게 늘 내려지는 집행유예 판결을 보라) 등을 생각하면 더욱 이런 어두운 점이 현실로 다가온다.

이런 점을 가장 압축적이고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제1심 판결이 내려진 ‘삼성 부당합병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병석에 누운 후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이전하기 위해 온갖 부당한 방식을 동원했다고 비판받는 사건이다.

대통령 측근에게 말 세 마리 사주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 구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게 만들기 위해 분식회계, 유용한 사업 기회의 포기 등 여러 불법적 행위를 자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공장 바닥을 뜯어서 그곳에 숨기고, 기업 가치 평가에도 여러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합병을 앞둔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모두를 지배하는 공동의 지배자로서 중대한 이해상충 상황에 처한 상태였다. 합병 비율은 제로섬 게임 같은 것이어서 한쪽 회사에 유리하면 반대쪽 회사에는 불리하게 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이 전 부회장은 불리한 대접을 받은 회사에 대해 사실상의 이사로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런데 법원은 지난 2월 5일 기소된 모든 피고인에 대해, 그리고 기소된 모든 죄목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급심 법원의 판단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향후 상급심의 추가 판단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개탄했다. ‘법은 있지만 어기면 그만’이고, ‘문제 제기는 있겠지만 법원을 우군으로 확보하면 된다’는 식의 정글의 법칙이 자본시장의 근저를 관류하고 있다는 증표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인 한, 아니 설사 현실이 아니라도 이런 인식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각인되는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되기 어렵다. 정부와 국회가 자본시장 관련 법령을 잘 만들고 잘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법원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법원이 제도 정착의 궁극적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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