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4)세금 제도가 단순해야 하는 이유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6월 3일 서울 중구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중장기 조세정책 심의위원회 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한국사회가 향후 직면한 문제들을 개선하려면 지금보다 중부담을 달성하는 세제 개혁을 통해 중복지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중부담으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다. 각종 감면 제도로 얼룩진 복잡한 세금 제도 때문이다.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선거 캠프가 가장 많이 제안받는 정책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각 지역의 숙원 사업인 교통·편의시설 등의 인프라 투자 제안을 꼽겠지만, 필자가 대선 캠프에서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혹은 더 많이 제안받는 정책은 조세 감면이다. 자녀 세액공제를 확대해달라, 어르신 부양 가구에 ‘효 세액공제’를 도입해달라, 심지어는 사교육비에 소득공제 적용해달라거나, 청년에겐 아예 소득세를 면세해주자는 등의 다양한 조세 감면 제안이 쏟아진다.

문제는 조세 감면 제안이 각종 인프라 설치와는 달리 공약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당수가 실제로 제도화된다. 좋게 보면 공약 이행률이 높은 셈이다. 그래서 선거를 치를 때마다 조세 감면 제도는 늘어난다. 그 결과가 각종 공제 제도가 덕지덕지 붙어 누더기가 된 지금의 복잡한 세금 제도다.

단순해야 공정하게 운영 가능 세금이란 당연히 어렵고 복잡한 제도라고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지만, 세금은 마땅히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그래야 세금 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 제도는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근간이다. 봉건왕정이든 입헌군주정이든 심지어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정부가 무너지거나 교체되는 때엔 늘 세금 제도의 불공정성, 역사에선 주로 ‘세정의 문란’으로 기술되는 사건들이 있었다. 고려시대 말엔 정부가 귀족들에게 과세의 권한을 위임한 사전(私田)이 확대돼 세정이 극도로 문란해졌다. 조선 중기에 대동법이란 개혁 정책을 통해 지역 특산물을 납부하던 세금을 토지세로 일원화했지만, 조선 말기엔 다시 토지세(전정), 군 복무 등을 대체하는 세금(군정), 정부가 흉작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제도(환곡)가 모두 불공정하게 운영됐다. 이는 ‘삼정의 문란’으로 불렸고, 각종 민란이 벌어진 핵심 원인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독립도 보스턴 차 사건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비롯됐다.

오늘날엔 불공정한 세금체계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과거만큼 불공정한 제도가 운영되더라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기만적인 상황인 셈이다. 이상하게도 각종 공제제도는 취약계층 지원, 거래 투명화, 노후 소득안정 등 나름의 목적이 있어 도입됐지만, 그 제도들의 총합은 고소득자일수록 더 많이 세금을 감면받는 효과를 가져온다. 도입 당시에 목적을 달성한 감면 제도들이 없어지지 않고, 고소득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유리한 감면 제도일수록 더 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부의 6·21 부동산대책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각종 감면 제도로 조세 제도는 지켜야 할 원칙에서도 멀어진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부터 재정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리처드 머스그레이브, 최적 조세이론의 창시자이자 영국 조세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멀리스 보고서’로도 유명한 제임스 멀리스 등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조세원칙이 있다. 누진성, 명확성, 중립성, 단순성 등이다. 누진성이란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특징(엄밀하게는 평균세율이 증가하는 특징)이다. 중립성이란 비슷한 경제활동을 비슷하게 과세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조세 감면 제도는 누진성을 훼손하고, 세금 제도를 불명확하게 만들며 특정한 소비나 소득엔 과도한 세제 혜택을 주며 중립성을 의미 없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현실의 제도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원칙과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분야가 세금 말고 또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면세자보다 부자 세금 감면이 더 심각 조세 감면은 제도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마저 왜곡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득세 면세자 비중과 최고세율에 대한 인식이다. 많은 사람이 소득세 제도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30%가 넘는 면세자들이 있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근로소득 면세자 비중은 2020년 37.2%에 달했다. 이것도 2015년 46.8%에서 그나마 지속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월급쟁이 가운데 37.2%가 각종 공제로 이미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라 자주 언급되고, 개선돼야 하는 대표적인 문제로 회자한다.

하지만 이 사안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면세자의 비중보단 고소득층이 중산층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 감면을 받는 게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연 소득이 2억원인 사람이 어떠한 조세 감면 제도도 없다고 가정할 때 내야 하는 세금은 5660만원이다. 이때 평균세율(세액/소득)은 28.3%다. 실제로 내는 세금과의 차이는 어떨까.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통합소득 1000분위 자료를 분석해보면 연 소득이 2억380만원인 사람이 실제 내는 세금의 평균값(해당 소득계층의 총세액을 사람 수로 나눈 값)은 4176만원으로 평균세율(실효세율)이 20.5%다.

중산층으로 인식되는 연 소득 5000만원인 사람은 어떨까. 각종 공제가 없다면 연 소득 5000만원에 부과되는 소득세는 678만원으로 평균세율이 13.6%다. 실제 연 소득 5049만원인 사람이 내는 세금의 평균값은 187만원으로 평균세율(실효세율)이 3.7%에 불과하다. 평균세율의 감소 폭은 중저소득자(9.9%p)가 고소득자(7.8%p)보다 더 크지만, 실제 감면액은 연 2억원 소득자는 1484만원(5660만원-4176만원)인 반면에 연 5000만원 소득자는 491만원(678만원-187만원)에 불과하다. 즉 중저소득자의 감면액보다 고소득층의 감면액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흔히 진보적인 정책의 상징으로 꼽히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도 실제 효과는 제한적이다. 각종 공제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아무리 고소득자라도 최고세율이 얼마인지보다 어떤 공제제도의 적용을 받는지에 따라 실제 적용되는 세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조세체계에 여러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조세 감면 제도는 어떻게 비교를 하더라도 과도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을 포함해 7개국의 자료로 실제 내는 세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실효세율과 법정세율과의 격차를 분석해 2018년에 발간한 논문인 ‘소득세 법정세율과 실효세율 격차에 대한 연구’(홍우형·강성훈)를 보면 한국의 세율 격차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연소득 3000만원 이상부터 2억원 이하까지의 중상위 계층의 세율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세금체계에서 조세 감면이 유독 과도하다는 의미다.

한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는 조세 감면 그렇다면 이런 조세 감면 제도는 총 몇가지가 있을까. 놀랍게도 ‘누구도 모른다’가 정답에 가깝다. 조세 감면을 정부가 쓰는 표현으로 바꾸면 ‘조세지출’이다. 정부로선 세금을 깎아주는 것도 재정지출과 마찬가지라 ‘조세지출’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정의하는 ‘조세지출’의 항목은 “조세 감면, 비과세, 소득공제, 세액공제, 우대세율적용 또는 과세이연 등 조세특례에 따른 재정지원”이다. 필자는 이 모두를 합쳐 ‘조세 감면’이라고 통칭했다. 사전적으로 조세 감면이 ‘세액을 경감하거나 면제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크게 무리가 없는 단어 사용이라고 본다.

정부는 매년 국회에 정부 예산을 보내 심의를 받는다. 이때 보내는 예산엔 ‘조세지출예산서’도 포함된다. 재정지출과 비슷한 수준의 심의를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예산서에 모든 조세지출이 담기지 않는 데 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정창수 소장과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이 작성한 보고서인 ‘비과세·감면 현황 및 정비방안 연구(2019)’는 조세지출예산서엔 ‘조세특례제한법’에 존재하는 감면조항이 대부분 담기지만, 개별 세법에 있는 감면조항의 경우 상당수가 누락돼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감면 제도가 운영되는 이유는 한번 생기면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98년에 상거래의 투명화 등을 위해 도입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3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지되는 ‘일몰 제도’로 도입됐지만, 24년이 지난 2022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최근엔 정부가 10번째 일몰 연장을 벌써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한번 도입된 조세 감면 제도가 얼마나 없어지지 않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상당수다. 2014년에 발표된 ‘조세지출 일몰연장 요인분석’(문예영·신영임) 논문을 보면 2003~2013년 동안 일몰이 도래하는 조세 감면 금액 중 평균 97%의 일몰이 연장됐고, 조세지출 규모가 클수록, 지속기간이 길수록 연장될 확률이 높아졌다.

조세 감면의 딜레마 지금까지 주로 조세 감면의 실태와 문제점을 다뤘지만, 이 정책 역시 딜레마의 상황에 있다. 각종 공제 제도가 본래 존재하는 이유는 소득에서 비용을 제외한 순소득에 과세를 하는 게 공정하기 때문이다. 소득을 얻기 위해 들어간 원재료비, 교통비를 빼주지 않는다면 조세 제도는 불공정해진다. 하지만 소득세에 적용되는 각종 감면 제도가 이런 ‘순소득 과세원칙’에 부합하는지는 불명확하다. 현행 공제 제도에서 감면 대상인 영어 유치원, 보장성 보험 등에 지출하는 비용을 빼는 게, 과연 순소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게다가 새로운 정책을 설계할 때 많은 경우 재정사업보다는 조세 감면을 고려하는 이유는 행정 절차 등이 훨씬 간소화되는 등 시행이 쉽기 때문이다. 월세 세액공제 등 대상자를 선별해 지원하기보다는 대상자들이 연말정산 시 공제를 신청하는 게 훨씬 운영이 쉽고, 이런 제도들은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렇듯 조세 감면도 나름의 이유와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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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관건은 조세 감면 제도의 공론화다. 필자가 보기에 손꼽히는 중요한 문제인데도 지독히도 정치적 의제가 되지 않는 사안이 ‘조세 감면 제도의 개혁’이다. 게다가 조세 감면 제도는 그냥 방치된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향후 직면한 여러 문제를 개선하려면 지금보다 중부담을 달성하는 세제 개혁을 통해 중복지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중부담으로 가는 길이 꽉 막혀 있다. 각종 감면 제도로 얼룩진 세금 제도 때문이다. 이 논의를 시작하는 게, 딜레마를 푸는 첫 단추일 것이다.

<윤형중 정책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