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필수노동자는 코로나에 걸려도 되나요?

집단감염과 과로 위험에서 최소한의 안전 권리 요구해도 바뀌지 않아

“우리가 필수노동자라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 미국 배송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필수노동자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사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방역과 의료, 돌봄을 비롯해 배송과 물류, 운송 종사자 등 ‘언택트’ 일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노동자들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필수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과 지원 대책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도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적극적이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의 필수노동자는 여전히 집단감염과 과로, 사고가 빈번한 위험한 일터에서 일한다. 필수노동자 중에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창구조차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팬데믹 이전에 국내 필수노동자들은 계약직·파견·외주하청·특수고용직·비정규직으로 불렸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며 당·정·청에서 내놓는 재난 지원 대책에서도 필수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방문·대면업무하는 가스 안전점검원

가스 안전점검은 필수공익사업이다.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모든 가구는 1년에 1회에서 2회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 가가호호 방문해 가스누출 여부 등을 체크하는 일이 안전점검원의 업무다. 이들은 각 지역 가스공급사로 업무 위탁받은 하청업체(고객센터) 소속이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점검완료율(실제 방문해 점검 작업을 완료한 수)에 따라 실적 평가를 받아왔다. 예컨대 서울도시가스는 95% 이상의 점검완료율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한다. 미달할 경우 경고 조치와 지급수수료 차등지급과 같은 페널티가 부과된다.

실적압박에 시달리는 점검원의 노동환경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방문·대면업무를 하는 점검원들은 감염위험에 노출됐지만, 가스공급사들은 이들에 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노동자들이 안전대책을 요구했다. 점검원들은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관할 자치단체에 항의 방문을 하고 업무 중단 등 대책을 요청했다. 그러자 변화가 생겼다. 서울시는 5개 도시가스공급사에 안전점검 중지 요청을 내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했던 상반기 3월 2일부터 3월 8일, 하반기 8월 21일부터 9월 11일까지 두 차례 안전점검업무가 일시 중단됐다. 감염 우려가 심각한 시기만이라도 업무를 중단해 노동자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점검원분들이 먼저 업무 중단을 요청해왔다. 이분들 의견을 수렴해서 정부의 거리 두기 시책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협상력이 약한 노동자는 ‘안전할 권리’를 요구하기 어렵다. 코로나19에 따른 업무 일시 중단 조치는 서울·수도권과 울산 등 점검원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업무 중단을 요구한 지역에서만 시행됐다. 그 밖의 지역에는 별도의 안전 조치가 이행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전처럼 방문 업무를 하고 있다. 충북지역 안전점검원 이화영씨(가명)는 “코로나19로 위험하니까 오지 말라고 먼저 회사에 방문 거부 의사를 밝힌 가구만 빼고 나머지 집은 이전처럼 방문해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가스 점검도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중단하라고 할 수 없다”며 “가스공급사 측에서 자체적으로 방침을 세워 유동적으로 점검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고민진씨(가명·49)는 한국폴리텍대학 학사지원직 노동자다. 폴리텍대학은 고용노동부 산하의 국책특수대학으로 고씨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지난 2018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고씨와 같은 학사지원직 노동자는 전국 캠퍼스에 34명에 불과하다. 고씨를 비롯한 학사지원직들은 스스로를 숨겨진 필수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왜일까.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학 수업은 비대면·온라인으로 방식으로 대체됐다. 대면 교육이 필수인 실습 과정은 연기됐다. 교직원 업무도 재택근무로 전환됐다. 하지만 교육생 모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씨의 상황은 다르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장소가 고씨의 일터다. 밀접 접촉을 통해 학교를 홍보하고 교육생을 모집한다. 재취업이 목적인 교육 과정 특성상 고연령 중장년층이 주요 ‘고객’이다. 온라인 홍보로는 목표 정원을 채울 수 없고 직접 전단지를 돌리고 대면 홍보를 해야 효과가 있다.

교육생 모집하는 폴리텍대학 직원

모집 정원을 채운 뒤에 강의 일정은 조정할 수 있지만 강의 개설 자체는 미룰 수 없다. 정부 예산으로 연초에 마련한 교육 과정이기 때문에 ‘펑크’가 나면 예산 소진에 지장이 생긴다. 내년 대학 예산 확보도 차질을 빚는다. ‘교육생을 얼마나 모으느냐’가 대학 캠퍼스의 평가 척도가 되고 예산 확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캠퍼스 소재 지역에 확진자가 급증하고 물리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더라도 고씨는 업무를 중단할 수 없다. 안전대책에서 ‘열외’된 셈이다. 고씨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무조건 현장에 나가 교육생을 끌어와야 한다”며 “코로나19 관련 안전대책을 대학 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별도의 안전 지침을 마련한 사업장의 환경은 어떨까. 콜센터는 코로나19 집단감염에 취약 일터다. 지난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158명의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달 코로나19 2차 확산이 시작되자 고용노동부는 ‘콜센터 거리 두기 지침(2단계)’을 마련했다. 사업장 밀집도를 줄이기 위해 전체 인원의 절반을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로 전환하고 노동자 간 간격을 2m(최소 1m)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비말 감염 차단을 위해 노동자 사이에 투명 칸막이와 가림막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지침에 담았다.

그런데 현장 상황은 정부 지침과 거리가 멀다. 김윤희(가명·50)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 콜센터 4년차 상담사다. 건보 콜센터는 전국 12곳으로 공단은 민간위탁을 통해 콜센터를 운영한다. 코로나19 이후 1339 질병관리본부 상담 업무가 내려온데다 건보의 대면방문 업무가 줄면서 콜센터 상담 업무가 급증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상담과 상담 사이에 대기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기시간이 사라졌다. 노동강도는 강해졌지만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 지침과 거리 먼 콜센터 현장 상황

김씨와 옆 동료 사이의 거리는 1m가 되지 않는다. 설치된 가림막은 ‘반쪽짜리’다. 마주보는 앞사람과 사이에만 가림막이 있을 뿐 양옆에는 칸막이가 설치되지 않았다. 상담사들은 지난 4월부터 가림막과 칸막이의 추가 설치를 요구했지만 건보 측은 답하지 않았다. 지침에서 권하는 직원 절반 이상 유연근무 시행 지침도 지켜지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현재까지 건보 콜센터 상담사 한 명당 순환근무(재택근무) 일수는 평균 7일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8월 31일에도 2.5단계 거리 두기가 시행됐을 때도 사측은 상담사의 20% 정도만 순환근무를 지시했다.

수도권의 한 신선물류창고에서 마스크를 쓴 노동자들이 배달물량을 받으려고 줄 서 있다. / 경향DB

순환근무도 노동자들의 자리배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주먹구구로 이뤄진다. 김씨는 양옆 동료와 나란히 순환근무에 들어갔다가 함께 복귀한다. 사실상 거리 두기를 위한 순환근무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김씨는 “이런 문제를 원청에 얘기하면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니 위탁업체에 말하라’고 하고 위탁업체에 말하면 ‘권한이 없으니 원청에 말하라’고 서로 떠넘긴다”며 “아무리 위험을 호소해도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 국면에서 대표적인 필수노동자로 주목을 받은 배송·택배 등 배달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일터는 여전히 위험하고 불안정하다. 특히 먹거리를 배달하는 라이더는 사고 위험과 감염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라이더는 사실상 플랫폼 업체의 업무 지시와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자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플랫폼은 배달량을 늘리기 위해 라이더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물량을 소화할 것을 유도한다. 이른바 ‘번개 배달’로 웃돈을 얹거나 프로모션을 내걸어 과속 배달을 조장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속과 신호 위반은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올 상반기에만 이륜차 사고로 253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사망자 226명보다 11.9% 증가한 수치다.

플랫폼은 평점과 별점 제도를 통해 라이더의 업무 능력을 평가한다. 평점을 빌미로 쉽게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라이더들은 언제든 일터에서 밀려날 수 있는 불안정 노동에 시달린다. 미디어는 코로나 국면에서 물리적 거리 두기를 가능케 하는 핵심 인력으로 라이더를 조명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디지털 특고’일 뿐이다.

신희주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의 필수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대책은 전무하다. 이들 대부분은 가입할 노조가 없어 목소리를 낼 통로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관심사는 자영업자 지원과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특정 대상과 주제에 몰렸을 뿐 필수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업무와 직종, 근무 형태에 따라 노동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맞춤형 보호 대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