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쇼크, 반도체 하락 서막인가

애플, 실적 전망치 대폭 낮춰… 중국의 본격적인 경기 둔화 의미

미국 애플사가 새해 벽두부터 실적 전망치를 대폭 낮추면서 전세계 정보통신(IT)·반도체 업계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애플의 실적 부진은 미국과 함께 ‘세계의 시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본격적인 경기 둔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스마트폰 시장의 쇠퇴를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시장에 던진 충격이 크다. 가뜩이나 고점론에 시달리던 반도체산업의 업황 둔화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월 4일 미국 애플 주가가 전 거래일 대비 9.22% 떨어진 수치가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한 전광판에 표시됐다. / AFP연합뉴스

애플은 2019년 첫 회계분기(2018년 4분기) 매출 전망치를 당초 890억~930억달러에서 840억 달러로 4~10% 낮췄다. 그러면서 중국 시장에서의 아이폰 판매 부진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애플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영업이익 중 중국 비중은 28%다.

삼성 지난해 연말 수출 대폭 하락

지난해 12월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7을 기록해 2016년 7월 이후 처음으로 기준치인 50 이하로 하락했다. 보통 PMI가 50 이하로 떨어지면 경기가 위축됐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중 무역분쟁 속에서 비교적 견고한 흐름을 보였던 중국 수출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기 시작했다. 한국투자증권 정희성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와 올 1분기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각각 전년 대비 6.4%, 6.1%까지 지속적으로 둔화될 전망”이라며 “특히 올 1분기는 내수소비와 부동산 투자, 대외교역 등 전분야에 걸쳐 경기 둔화 압력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인민은행의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 24조원 규모의 우한시 철도사업 승인 등 경기부양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애플 실적 부진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또 다른 이유는 스마트폰 시장의 쇠퇴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아시아 공급 체인 형성과 수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스마트폰은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서 수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이었다”며 “스마트폰 시장의 둔화는 아시아 수출과 관련된 빅사이클(주기적 순환변동)이 저물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반적인 스마트폰산업 부진 속에 중국 업체들의 약진, 애플과 삼성의 부진이 데이터상으로도 확인된다. 글로벌 핸드셋 조사기관인 SA에 따르면 2018년 11월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같은 달 대비 6.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국 화웨이와 샤오미의 출하량은 각각 39.4%, 24.2% 증가한 반면 삼성전자는 -3.1%, 애플은 -10.1% 등 역성장했다.

일각에선 애플의 부진이 제품 혁신은 없고 가격만 올렸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콩 소재 투자분석업체 CLSA는 최근 보고서에서 아이폰 평균판매단가는 852달러(약 95만7000원) 수준으로 1년 전보다 최소 7% 이상 상승했고, 이는 아이폰 판매 총량의 20%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주요 투자기관들은 애플의 올해 아이폰 출하량 전망치와 목표주가를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미국 증시에서 최근까지 1위였던 애플의 시가총액 순위는 4위까지 내려앉았다.

애플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구매 업체다. 애플의 실적 전망치 조정으로 관련 업종들도 줄줄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바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독점 공급하는 삼성디스플레이, 액정표시장치(LCD)를 납품하는 LG디스플레이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블룸버그와 국내 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6%), LG디스플레이(32%), SK하이닉스(13%), LG이노텍(55%)의 전체 매출에서 애플 관련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50%대에 이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외 회사들도 연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 하반기엔 반등 예상’ 낙관론도

가뜩이나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고점론’이 제기되면서 올해 실적 전망이 밝지 않은 터였다. 반도체 경기의 고점 논란은 최근 1~2년간 지속돼 왔으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 IT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축소하고 국내 반도체 제조업 장비 수입이 급감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연결기준)은 전 분기보다 38% 넘게 줄었다. 사업부문별 성적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이 42% 넘게 줄어든 것으로 증권가에선 추산했다.

반도체는 투자나 수출 등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약 30% 성장률을 기록하며 전체 수출을 견인했다. 단일품목 최초로 1000억 달러 수출 달성이라는 신기록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88억6000만 달러로 전년 같은 달보다 17.1%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192억6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6% 감소하면서, 2016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D램 수출도 77억6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1.1% 줄었다. 시장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반도체 경기가 식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가격은 지난해 10월 10% 이상 하락한 데 이어 11월에도 1.64% 떨어졌다. 시장에선 올 1분기에 메모리 가격이 저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의 발달로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수출 증가세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메모리 반도체 관련 하락 등 영향으로 수출증가율은 한 자릿수(9.3%)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10년 정도를 주기로 한 업황 사이클이 있는 업종인 데다, 대규모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후발업체들이 단시일 안에 국내 업체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은 수요와 공급 모두 소수 몇몇 업체들이 주도하다보니 원래 가격 변동이 심하다”면서 “세계 1·2위인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경우 그간의 구조조정을 모두 견디면서 살아남은 업체들이기 때문에 업황이 다소 꺾이더라도 견딜만한 체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일본, 대만 반도체 업체들이 난립한 가운데 벌어진 ‘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삼성전자는 막강한 현금동원력을 바탕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올해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되는 ‘상저하고’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박성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상반기까지 수요 부진의 영향으로 D램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며 “신규 컴퓨터중앙처리장치(CPU) 출시로 인한 서버 수요 회복 등을 감안하면 하반기 업황 반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주영 산업부 기자 young78@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