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미래 먹거리는 부동산?

금융당국, 내년 1분기까지 최대 3곳의 부동산신탁사 인가 예정

“‘역시 신한이 하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0월 31일 부동산신탁 회사인 아시아신탁 인수를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기존 신탁사 인수를 통해 이미 부동산신탁 시장에 진출해 있는 KB금융지주를 제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시장 호황이 이어지면서 부동산신탁 시장은 부동산펀드와 함께 금융권의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꼽혀 왔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데다 대출이자 의존도를 낮추고 비은행 부문 수익을 강화할 수 있다. 업권 특성상 고액 자산가도 많아 우량고객을 확보하게 된다. 금융당국도 올해 최소 1~2개를 포함해 내년 1분기까지 신규로 최대 3곳의 부동산신탁사를 인가하기로 하면서 금융권의 부동산시장 진출은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연세대 경영관에서 열린 ‘금융업 진입규제 개편방안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KB금융·하나금융·신한금융 3강 구도

부동산신탁업은 부동산 소유자에게서 해당 부동산의 관리·임대·운용·개발·처분 등의 권리를 위탁받아 수수료 이익을 내는 사업이다. 부동산신탁 시장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수익성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1개 부동산신탁사의 연간 순이익은 5047억원으로, 시장규모는 2013년(1223억원)에 비해 4배 이상 성장했다.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7.6%(428억원) 증가한 총 285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최근 5년간 취득수수료(매출)는 연평균 21%씩 성장해 지난해 말 1조원을 돌파했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금융당국의 지주사 전환 인가를 받은 우리은행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은행법상 자기자본의 20%만 출자할 수 있지만, 우리금융지주가 내년 1월 재출범하면 자기자본의 130%까지 출자할 수 있다. 현재 1조원 수준에서 최대 9조원대의 실탄을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은행은 부동산신탁을 비롯해 보험, 증권 등 기존에 취약했던 비은행 분야에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손태승 우리은행장도 지난해 12월 22일 취임 당시 “(지주사로 전환되면) 부동산신탁사나 자산운용사부터 인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11월 7일 “내년 초 지주사 전환을 계기로 부동산신탁업 인가를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기존 신탁사를 인수할 수도 있다”며 “여러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기존 신탁사를 인수하게 될 경우 인수 대상으로는 우리은행이 지분 6.54%를 보유한 국제자산신탁 등이 거론된다. 2000년 설립된 국제자산신탁은 지난 5년 평균 시장점유율이 6.1%로 국내 11개 신탁사 중 8위다.

신한금융은 앞서 10월 31일 신규 수주액 규모 업계 5위인 아시아신탁 지분 100%를 인수키로 했다. 우선 지분 60%를 1934억원에, 나머지 지분 40%는 2022년 이후 인수한다. 신한금융의 부동산신탁사 인수로 KB부동산신탁(KB금융), 하나자산신탁(하나금융)과 함께 금융지주의 3강 구도가 만들어졌다. 신한금융은 아시아신탁의 당기순이익이 282억원으로 KB부동산신탁(364억원)과 하나자산신탁(319억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룹의 보유자산, 자금력, 영업채널, 고객기반, 인지도, 신뢰도 등을 총동원해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구상이다.

김지완 BNK금융그룹 회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은행 중심 성장으로는 한계에 달한 만큼 비은행 계열사 외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보험과 부동산신탁사 등 아직 진출하지 않은 영역에서 M&A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NH농협금융은 지난 7월 100% 출자 자회사인 NH농협리츠운용을 출범시킨 데 이어 최근 SH공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로 부동산신탁사를 만들어 공익성이 담보된 개발사업 위주의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9·13 이후 시장 전망 불투명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9·13 부동산대책을 전후로 급격히 경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미국의 잇따른 금리인상에 이어 한국은행도 금리인상을 저울질하고 있어 향후 부동산경기의 하강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동산신탁과 함께 부동산 관련 ‘그림자 금융’으로 불리며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펀드 역시 글로벌 부동산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내놓은 금융브리프 ‘국내 부동산 그림자 금융 관련 리스크 점검 및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국내 부동산시장의 지역별 양극화 지속, 관련 규제 강화, 금리인상 등으로 인해 향후 부동산펀드와 부동산신탁사의 수익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업권의 자산건전성이 저하되고 재무 레버리지(차입)가 확대되는 등 관련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 만큼 부동산신탁사는 시공사 분양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국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동산신탁 시장 등의 흐름을 면밀히 파악하고 과열에 따른 부작용과 위험요인을 사전에 줄이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내년 하반기 중에 기존 금융통계시스템과는 별도로 부동산신탁과 펀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관련 시장은 300조원에 달할만큼 거대하지만 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부동산 금융시장의 흐름과 동향, 경기 하락으로 인한 영향 등을 분석한다. 또 과도한 부동산 투·융자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전에 충당금 적립률을 높이는 등 건전성 규제도 강화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또 신규 부동산신탁업 임원 등 자격요건에 대한 심사를 예비인가가 아닌 본인가 때 예비인가를 받은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임원 등의 자격요건이 별도 배점 없이 법령 등의 준수 여부를 심사하는 항목이고, 다수의 예비인가 신청에 따른 임원 등의 인력수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고려한 조치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6~27일 예비인가 신청을 받는다.

<안광호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