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3대 리스크가 밀려온다

하반기 세계 경제, ‘강한 달러, 고유가, 무역분쟁’ 트럼프 삼위일체의 늪 속으로

한때 3000까지 갈 것으로 기대됐던 코스피가 2200선으로 물러섰다. 더 후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코스피만의 문제는 아니다. 2만6000선을 넘어섰던 다우지수도 2만4000선으로 내려앉은 지 오래다. 유럽과 중국 증시도 좋지 않다. 글로벌 증시가 나빠진 것은 돌발변수가 컸다. 트럼프발 무역전쟁이 전세계 증시를 뒤흔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래의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이벤트’에 참석했다. / AFP연합뉴스

‘강한 달러, 고유가, 무역분쟁’이라는 병존하기 어려운 트럼프 삼위일체(Trump Trinity)가 하반기 세계 경제를 불확실성의 늪으로 끌고가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면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 신흥국들은 금융불안에 빠질 수도 있다. 남미·아프리카·아시아의 신흥국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위기에 빠질 경우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도 장담하기 어렵다.

올 초만 해도 세계 경제 전망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2016년 3.2%까지 성장했던 세계 경제는 지난해 3.8%로 성장률이 높아졌다. 올해는 3.9%(국제통화기금 전망 기준) 성장이 예상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등을 시작했던 2011년(4.3%)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조정했다. 미국은 2.2%에서 2.9%로, 유로존은 1.9%에서 2.4%로, 일본은 0.7%에서 1.2%로 각각 높였다. 글로벌 교역량이 증가했고, 글로벌 산업생산·산업투자가 확대됐으며, 미국의 감세정책으로 미국 내수경기가 좋아진 것이 배경이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완만히 둔화되고 있다. 미국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서 긴축으로 서서히 무게추가 쏠리는 것이 감지된다.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해 12월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미국은 2개월 연속, 유로존은 6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글로벌금융여건지수도 평년수준인 100 안팎에서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아르헨, 남아공, 터키 등 신흥국 불안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등 취약국은 상반기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꺾일 것 같다는 전망이 많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 6.9% 성장에서 올해 6.6%, 내년 6.4%로 둔화될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보고 있다.

하반기 가장 뜨거운 이슈는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성장, 무역수지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미국 국채를 선호하는 수준에서 강 달러가 유지되기를 원한다. 일반적으로 원화 약세로 인해 환율이 오르면 한국 수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대로 외환시장이 움직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신흥국들에서 자금이 급격히 유출되고 신흥국 경제가 나빠질 경우 강 달러 속도가 매우 빠를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재정수지가 나빠지면 되레 약 달러가 될 요인도 크다. 달러화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세계 경제에 큰 리스크 요인이 된다. 현대경제연구원 측은 “달러화 강세와 약세 요인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달러화도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고유가도 하반기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유가는 수급 불균형에 원유 선물시장의 투기적 선물거래가 더해지면서 지난 2년 사이 2.8배가 상승했다. 영국 북해지역에서 생산되는 브렌트유의 경우 2016년 배럴당 26달러에서 올해는 74달러까지 오르고 있다. 6월 22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증산을 결정했지만 예상보다 규모가 작아 가격이 다시 뛰고 있다. 중동 정세도 여전히 불안하다. 이란의 핵프로그램 재개,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사우디 핵개발 시작 등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여기다 시리아와 예멘의 혼란, 알제리·이집트·리비아의 정치불안 가능성도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의 석유 생산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가 상승은 석유자원이 없는 신흥국들에게는 수출 감소와 경상수지 적자의 요인이 된다. 또 통화가치 절하와 겹칠 경우는 경기침체 속의 물가인상, 즉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도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미·중 무역전쟁

가장 큰 리스크는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국에 계속해서 통상압력을 넣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베트남 등 G2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들과 터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가 큰 국가들이 특히 미·중 통상압력에 취약하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전쟁을 확대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까지 탈퇴하면 전세계적으로 연간 최대 2조 달러어치의 상품·서비스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며 “이는 연간 20조 달러가량인 전세계 교역(전세계 수출 합계 기준)의 10%가 통상전쟁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또 “통상전쟁이 전면적으로 확대되면 세계 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침체에 빠질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 EU의 GDP는 4%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단기간에 무역전쟁이 완화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무역전쟁에서는 단 한 번도 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를 잘 모르지 않나 싶다”며 “하반기는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수 있는데, 무역전쟁으로 인해 더 악화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최근 미 금리인상·달러 강세, 무역전쟁, 고유가 등 글로벌 리스크가 계속될 경우 중남미 5개국(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유럽·아프리카 3개국(터기, 남아공, 루마니아), 아시아 2개국(말레이시아, 인도) 등 10개국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취약 10개국’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어려운 글로벌 경제여건 하에서도 아직까지는 양호한 실물경제와 경제주체들의 낙관론이 이를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리스크가 장기화되고 실물경제 둔화로 이어진다면 비관론이 확산돼 금융시장도 높은 변동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