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제폰으로 ‘호갱’ 벗어나볼까

단말기 직접 구입 후 통신사 골라 가입… 중저가 모델로까지 선택 폭 넓어져

이동통신을 개통하려면 우리는 통신사 대리점으로 간다. 먼저 휴대폰을 고르고 대리점 직원에게 요금제를 권유 받는다. 휴대폰과 통신서비스를 묶어서 ‘구매’해야 하는 한국 통신시장에서는 내 통신비에서 휴대폰 할부금이 얼마이고 통신요금이 얼마인지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서울 송파구의 한 휴대전화 판매소 / 연합뉴스

이 휴대폰과 요금제가 내게 적합한지 따지기도 쉽지 않다. 워낙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간혹 대리점에서 고가 스마트폰을 권유하고 고가 요금제를 석 달 이상 쓰는 게 유리하다면 그렇게 선택한다. 그렇게 2년 약정에 묶여 휴대폰 할부이자를 5.9%나 내는지도 모르는 소비자들도 다수다. 통신시장에서 ‘호갱’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렇게 복잡한 시장 환경 때문이다.

휴대폰과 통신서비스를 묶어서 구입하던 독점적 통신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자급제폰 시장이 본격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급제’란 온·오프라인에서 공단말기를 구입한 뒤, 소비자가 통신사를 골라 통신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이다. 단말기 구매와 통신서비스 가입이 분리된 형태다.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는 공단말기를 살 경우 제조사가 통신사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10% 정도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분석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자급제 비율은 8% 수준으로 전 세계 평균 61%에 크게 못 미친다.

중국 제품들도 자급제 시장 뛰어들어

문재인 정부가 통신비 인하 드라이브를 걸고 정부가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를 열어 논의하면서 자급제폰 출시 발판을 마련했다. 2월 논의를 마친 협의회에서는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했던 단말기 완전자급제처럼 법으로 강제하는 방식 대신 자율적으로 자급제를 확대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플래그십 모델에 대해서도 자급제 단말을 출시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후 실제로 3월 삼성전자의 ‘갤럭시S9’ 시리즈 ‘자급제폰’이 통신사용 폰과 동일한 가격으로 나왔고, LG전자의 ‘G7씽큐’도 출시 시점에 자급제폰을 내놓았다.

자급제폰은 중저가 스마트폰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9에 이어 갤럭시 A시리즈와 J시리즈 일부 기종을 자급제 단말기로 출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A·J시리즈까지 자급제 폰으로 내놓으면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모든 가격대 제품이 자급제 단말기로 나오는 셈이다. 출고가 100만원 안팎의 프리미엄 라인(갤럭시 S9)과 40만~50만원대 중가 라인인 A시리즈, 저가 보급형인 J시리즈까지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게 됐다.

LG전자도 이르면 6월에 자급제 스마트폰 X2를 20만원대에 출시할 계획이다. X2는 이통사를 통해 출시되지 않으며 LG베스트샵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이제 저가부터 중저가 시장에 이르기까지 자급제 단말기 가격이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외산폰의 무덤’인 한국에서 중국 스마트폰 이용률이 올라갈지도 주목된다. 중국의 화웨이도 이르면 8월 자급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X3, Y6, P10라이트 등 보급형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유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대표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본격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도 있다. 샤오미도 지난 5월 Mi A1을 29만원대 자급제 폰으로 내놓았다.

요금제, 기간 등 내맘대로 선택 가능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자급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형 자급제 모델이 출시되면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고 궁극적으로는 단말기 경쟁이 일어나 통신비 인하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자급제폰을 하이마트 등 전자제품 양판점이나 오픈마켓에서 구매할 경우 신용카드 청구할인, 포인트, 포인트 혜택 등을 받아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통신비용도 줄일 수 있다. 지난해 9월 20%에서 25%로 높아진 선택약정할인제도도 자급제 시장을 부추겼다. 자급제폰으로 통신요금을 25% 할인받을 수 있고, 통신사 약정할인을 이용할 경우 부과되는 5.9%의 할부수수료(보험료)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월 1만~2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말기 구입비와 통신요금을 최대한 줄이고 싶은 소비자가 20만원대 스마트폰을 구매한 뒤 알뜰폰에 가입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사들도 무약정 요금제를 개편하면서 약정이 끝난 이용자들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 그동안 자급제폰 이용자들은 이통3사와 약정을 맺고 요금할인 혜택을 받거나 약정 없이 더 많은 돈을 내고 통신서비스를 이용해야 했지만 이통3사가 무약정 요금제를 개편하면서 데이터 혜택을 늘렸다.

아예 이통사 약정에서 자유롭고 싶고 2년 약정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자급제폰을 사서 무약정 요금제에 가입하면 된다. 약정이 없기 때문에 19개월 이용해도 35개월 이용해도 된다.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길어지면서 2년 이상 쓰는 이용자들은 처음부터 자급제폰을 사고 무약정 요금제에 가입해서 쓸 수 있는 만큼 쓰는 것도 알뜰한 방법이다. 물론 휴대폰과 통신서비스를 ‘원스톱’으로 가입하는 게 편리하다면 자급제폰은 귀찮은 방법일 수도 있다.

자동차나 정수기처럼 휴대전화도 ‘리스’해서 사용하는 시대도 열렸다. SK텔레콤은 글로벌 투자업체 맥쿼리와 제휴해 스마트폰 렌털 서비스 ‘T렌탈’을 6월 시작했다. 이용자는 월 렌털료를 내고 24개월간 빌려 쓴 뒤 반납하면 된다. 24개월 만료 전에 중고폰의 가치를 지불하면 소유도 가능하다. 하지만 렌털 계약 해지에 따른 부담금이 발생한다. 또 렌털 기간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파손하면 일반 할부 구매처럼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2년마다 교체하고 중고폰 처리가 귀찮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처럼 통신사 약정으로 구입하고 2년이 지난 뒤 중고폰으로 비싸게 팔 수 있다면 렌털 서비스가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2년마다 교체하는 이용자, 중고폰 처리를 어려워하는 이용자의 경우에는 렌털 서비스가 유리하다. 실제 SK텔레콤 조사 결과 스마트폰 교체주기는 24∼25개월이었고, 중저가폰은 이보다 긴 27∼28개월로 나타나 프리미엄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좀 더 자주 휴대폰을 교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프리미엄 스마트폰 교체주기가 길어지는 추세인 만큼 2년 이상 스마트폰을 쓰고 싶은 이용자는 이통3사 대리점에서 스마트폰과 통신서비스를 동시에 구매하거나 자급제폰을 사서 이통3사의 무약정 요금제를 이용하거나 알뜰폰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임아영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laykn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