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지배구조 개선문제로 시끌

23일 주총 앞두고 ‘회장 퇴진론’ 대두… 황창규 회장 두 번째 위기

3월 23일 ‘슈퍼 주총데이’를 앞두고 있는 KT가 재차 ‘회장 퇴진론’에 맞닥뜨렸다. 황창규 회장으로선 두 번째 위기다. 황 회장은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거센 퇴진 요구에 직면했지만 사법처리 대상에서 벗어나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는 사내 임원들이 회삿돈으로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 정치후원금 문제가 발단이 됐다. 1월 31일 경찰은 KT 본사는 물론 황 회장의 집무실까지 압수수색했다. 황 회장 측은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황 회장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 중이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KT그룹 신년 결의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논란이 커지자 KT는 회장 후보의 자격을 강화하고 이사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등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만들어 주총에 안건으로 올려둔 상태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개편안이 부족하다”며 이사회의 공정한 구성과 투명한 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개선안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어 주총 역시 가시밭길이 예고되고 있다.

불법후원금 조성 의혹도 극복할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사내 임원들이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 정치후원금의 배후에 황 회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 중이다. 경찰은 KT 임원들이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산 뒤 이른바 ‘깡’을 통해 현금화해 정치권에 전달한 사실은 파악했지만, 아직 후원금 제공과정에서 황 회장의 개입 여부나 후원금의 대가성 등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 중이다. 황 회장은 회사 자금으로 후원금이 제공된 것은 인정하면서도 본인과의 연관성에는 선을 긋고 있는 상태다. 황 회장은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원금을 그런 식으로 내는 관행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관행’이라는 단어다. 과거부터 해오던 방식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황 회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국회나 정부 관계자들과 주로 만나는 기업 대관파트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기업 관계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내는 것은 공공연한 관행이다. 한 대기업 대관 관계자는 “보통 성의 표시 차원에서 회사와 연관된 국회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내는 게 일반적”이라며 “다른 대기업들 대부분도 대관에서 후원금을 내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관계자라 하더라도 개인 자격으로 연말정산 시 환급되는 10만원 한도의 후원금을 내는 것은 아무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더 많은 성의 표시가 필요할 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실 10만원씩 후원금을 내봐야 티도 안 나고 의원실에서 크게 반기지도 않는다”며 “회사의 중요한 민원이 상임위에 걸려 있거나 총수 이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등 후원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특수한’ 경우에는 후원금이 개인당 수십만~수백만 원까지 늘어나지만 이쯤 되면 직원 개인돈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후원금에 회삿돈이 들어가게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기업 자금으로 정치후원금을 내는 것은 불법이다. KT 임원들이 ‘상품권깡’을 통해 우회해서 후원금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법적인 방식으로 회삿돈을 가지고 후원금을 내온 게 KT뿐일까. 재계에서는 아닐 것이라고 추정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KT 말고도 찾자고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라며 “KT의 경우 특정시기(2016년 9월쯤)에 너무 많은 후원금을 내다보니 걸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관건은 불법 후원금 조성 및 제공 과정에서 황 회장의 개입 여부와 해당 후원금의 대가성 문제다. 후원금이 집중된 2016년 9월 이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KT 이름이 오르내릴 때이고, 첫 회장 임기 막바지에 있던 황 회장의 연임 문제도 걸려 있던 때다. 결과적으로는 황 회장이 이듬해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에 여러 모로 후원금이 집중된 ‘배경’을 놓고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후원금 문제의 경우 대가성 입증도 어렵고 여러 정치인들도 걸려 있기 때문에 사법처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법당국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황 회장의 거취도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자 KT는 3월 2일 공시를 통해 자체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안을 공개했다. 그간 ‘최고경영자(CEO) 추천위원회’를 통해 회장 후보자를 선발해 주총에서 의결하던 것을 이사회 내 지배구조위원회 및 회장후보심사위원회 등을 거친 뒤 주총에 부치도록 했다. 불투명하다고 지적 받아온 회장 선임과정을 개선했다는 게 KT의 설명이다. 회장 후보자 중 기업경영 경험자는 심사 시 우대하는 조항도 추가됐다. 기업경영과 전혀 관계없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를 일정 부분 막아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시민사회단체 “폐쇄적 이사회도 바꿔야”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KT의 개선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할 통신기업의 CEO가 매번 정치적 외풍에 휘말려 본래의 역할은 못하고 정치적인 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며 “단순히 회장과 이사진들의 교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정부와 국민이 함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해관 KT 새노조 경영감시위원장은 “현재 KT는 사외이사들이 회장을 뽑고, 다른 사외이사들도 뽑는 ‘셀프 추천’ 구조를 갖고 있다”며 “사외이사들과 CEO가 담합할 경우 경영농단이 발생하고 책임경영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석하는 ‘노동이사제’를 KT에 도입해야 한다”며 “노동이사가 감사위원회에도 참여하게 된다면 CEO 리스크를 불러올 만한 불법적인 경영은 사전에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KT와 황창규 회장은 그동안 CEO 리스크의 원인을 정치권의 부당한 간섭 때문이라고 떠넘기면서, 그 대안으로 이사회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안을 개선안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KT 안팎의 신뢰 받는 인사들이 참여하는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지배구조와 경영구조를 명실상부한 ‘국민기업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KT 경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KT 지분 10.34%를 가진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연내 가입할 것이 확실한 만큼 KT에도 이사 선임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 가뜩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의 외압에 흔들린다는 비판을 받는 KT에 정부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15년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과정에서도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의 결정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가 있었다.

KT의 한 전직 임원은 “정권이 바뀌려는 시점마다 내부적으로 새 회장을 옹립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어떻게든 새 권력층에 줄을 서보려는 직원들도 나오는 등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이럴 바에는 아예 회장 임기를 보장하는 방향을 주총에서 논의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KT 관계자는 “노동이사제의 경우 과거에도 주총에 안건으로 올라간 바 있지만 표결에서 통과하지 못했다”며 “주주들이 원하지 않는 사안들을 일각에서 요구가 있다고 해서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