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식 펀드는 왜 왕따가 되었나

재테크 상품 부동산으로 몰려… 2008년 금융위기가 트라우마

코스피지수가 ‘북한 리스크’로 잠시 주춤하기는 하지만 올해 상반기 박스권을 뚫고 2400선까지 올라섰다. 올해 상반기에만 18% 상승해 전 세계 주요 국가 중에서도 눈에 띄는 수익률이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라면 주식투자는 물론 소액으로 매달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펀드 상품에도 관심도가 높아져야 하지만,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코스피지수만큼 펀드자금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펀드 하면 고개를 가로젓는다. 2017년 한국 사회에서 재테크 상품은 ‘부동산’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들고 있던 적립식 펀드는 어쩌다가 재테크계에서 ‘왕따’가 되었을까.

직장인 한모씨(37)는 “적립식 펀드가 한창 유행할 때인 2005년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적립식 펀드로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면서 “친구들을 만나면 ‘너도 미래에셋 펀드 들었냐’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7년 적립식 펀드 열풍 절정

적립식 펀드는 매달 일정 금액을 넣으면 주식시장의 상승과 하락에 상관없이 평균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2005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펀드는 한국의 적립식 펀드 역사를 설명해주는 상품이다. 미래에셋의 적립식 펀드 상품 출시 이후로 한국의 기본적인 재테크 상품은 은행의 적금과 펀드로 양분됐다고도 말할 수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적립식 펀드를 들기도 했다. 2005년 7월 노 전 대통령은 8000만원을 적립식 펀드 8개에 1000만원씩 나눠 투자했다. 그 다음달 노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과 주식 중 누가 이기나 봅시다, 나는 주식에 겁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같은 ‘적립식 펀드’ 열풍은 2007년 절정에 달했다. 2007년 10월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박현주 회장은 지역과 자산에 관계없이 투자하는 ‘인사이트 펀드’를 출시했다. 적립식 펀드에 대한 기대감이 한창 고조됐을 때 펀드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 내놓은 ‘야심작’이었다. 고객들은 앞다퉈 인사이트 펀드로 몰려들었다. 당시 보름 만에 3조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 7월 코스피지수는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했다. 적립식 펀드 열풍으로 자금유입은 계속됐고, 시장에는 3000포인트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축포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거대한 파고가 불어닥쳤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쳤다. 2000선을 돌파한 지 1년여 만에 그래프는 고꾸라졌다. 2008년 10월 코스피지수는 900선까지 떨어졌다. 한국 시장뿐 아니었다. 전 세계 모든 주식시장이 휘청거렸다.

바로 이 시기가 펀드시장의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한창 사람들이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고 열풍이 대중화될 무렵에 엄청난 손실을 안긴 것이다. 특히 거의 중국에 몰아서 투자하다시피 한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는 2008년 마이너스 50% 수익률을 기록했고, 박현주 회장은 2012년 1월 투자자들에게 사과하는 내용으로 일간지 광고를 냈다. 인사이트 펀드가 원금을 회복한 건 7년이 지나서였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분석부장은 “2005~2007년 적립식 펀드 투자 붐이 일었을 때 불행하게도 주가가 급락했다”면서 “사람들의 투자행동은 ‘부동산 불패 신화’처럼 학습효과에 의해 좌우되는데, 적립식 펀드는 반토막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다시 투자할 엄두를 못 내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이후 개인들은 점차 주식시장을, 펀드시장을 떠났다. 2007년 말 공모펀드에서 개인고객 비중이 82%에 달했지만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46.6%, 즉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적립식 펀드 투자가 외면받는 배경에는 ‘트라우마’라는 근원적 원인을 제외하고도 ‘실탄이 없다’는 커다란 이유도 자리잡고 있다. 우선 사람들은 덜 벌고 덜 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6월 말 발표한 ‘가계소득 및 소비지출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9만9000원으로 전년에 비해 0.6% 증가했지만, 물가상승분을 감안한 실질 가구소득은 0.4% 감소했다. 실질 가구소비지출도 1.5% 감소했다.

14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도 투자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전국 약 2만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6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가구당 평균 부채는 6655만원이다. 남는 돈이 생기더라도 빚 갚는 데 쓰지, 투자할 여력은 없는 셈이다.

투자할 돈 없고 투자해도 수익률 낮아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수익률이 높지 않은 것도 큰 이유다. 특히 주식형 펀드의 경우 올해 상반기 수익률을 보면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주식형 펀드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 보인다. 펀드 평가사 에프엔가이드 자료를 보면,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골라 담는 액티브펀드가 15.0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오히려 지수를 따라가며 운용하는 인덱스펀드(21.55%)가 더 높은 성과를 보였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외면하는 이유는 아직 시장이 상승한다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금융회사들이 좋은 수익률을 안겨주지 못해 불신을 자초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7년간 1800~2200선에서 박스권을 형성했다. 박스권에서 탈피하지 못한다 하여 ‘박스피(박스권 코스피)’라는 별명도 붙었다. 증권업계에서는 박스피 탈피를 기점으로 다시금 ‘개미’들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지만, 투자 여력이 여전히 그대로이고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긍정적이지 않다. 과연 ‘개미’들은 다시 펀드시장으로 돌아올까.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