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점포 통폐합으로 ‘홍역’

인터넷과 모바일 거래 늘면서 고객 이탈… 직원들 콜센터로 내몰려

한국씨티은행이 두 달 넘게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3월 말 영업점의 80%를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씨티은행은 인터넷과 모바일로 은행 거래를 하는 비중이 늘어나자 수익이 떨어지는 영업점을 통·폐합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점포 통·폐합 여파로 고객들이 이탈하고 있으며, 점포 통·폐합으로 직원들은 콜센터로 내몰리게 생겼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업점 126곳을 25개로 줄이기로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 갈등은 비단 씨티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 거래가 활발해지고 인터넷 전문은행마저 등장한 상황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영업점을 경영전략상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견과 고객 보호 차원에서 영업점 통·폐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맞부딪히고 있다.

씨티은행은 지난 3월 말 현재 126곳(기업금융센터 7곳 제외)의 영업점을 25개로 대폭 줄이는 안을 발표했다. 서울에 있는 지점 49개를 13개로, 지방 지점 21개는 4개로 통합할 계획이다. 제주 지점은 아예 없어진다.

한국씨티은행이 영업점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힌 가운데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씨티은행 청담센터 앞을 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청담센터의 경우 ‘행당역, 성수동, 구의동, 압구정, 압구정중앙, 압구정로데오, 청담, 신사동, 역삼동, 테헤란로, 의정부, 상계동’ 등 약 14개 영업점이 합쳐지게 된다. 쉽게 말해 경기 의정부 지점을 이용했던 고객은 은행 갈 일이 있다면 37㎞ 떨어진 청담동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다. 길이 막히지 않더라도 차로 40분 걸리는 거리다. 영업점을 없애면 자동화기기(ATM)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어 여기서도 고객 불편이 예상된다.

이 계획안은 3월 말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은행 고객들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된 때는 지난 5월 중순과 6월 초 두 차례 문자메시지를 통해서였다. 고객들은 “진짜 은행이 없어지나. 그러면 이 동네에서 어느 지점까지 가야 하느냐”며 항의전화를 했다. 영업점 폐점 소식에 화를 내며 거액을 해지하는 경우도 잇따랐다.

노조 측은 지난 4월과 5월 고객이 8700여명 이탈했고, 수시입출금과 정기예금은 4470억원 정도 줄었으며, 특히 1000만원 이하 고객들은 4월과 5월 한 달 사이에 2만여명 줄었다고 주장했다.

전세자금 대출상품 중단 문제도 불거졌다. 씨티은행이 오는 9월부터 기존 전세자금 대출을 연장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데 이 역시 영업점 통·폐합과 같은 선상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씨티은행은 앞서 지난 3월부터 신규 전세자금 대출상품을 중단한 바 있다.

전세자금 대출 연장 상품의 경우 연장계약서를 원본으로 받아야 하는 등 비대면만으로는 하기 힘든 업무다. 이 상품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고객들이 먼 거리를 이동해서라도 지점을 직접 찾아와야 해 민원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 측은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시중은행의 규정상 만기가 1년 이상 남아있어야 타행 상품으로 갈아타기가 가능한데 대부분 만기 1~2개월 전에야 거래 은행에 대출 연장을 요청하는 실정”이라며 “씨티은행이 만기 연장을 중단하면 기존 고객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세자금 대출 연장 불가가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이용자의 권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은행법 24조 위반이라고도 덧붙였다.

씨티은행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일단 고객 이탈 부분은 수시입출금예금과 정기예금 잔액이 지난해 말 11조6000억원에서 5월 말 11조8000억원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전세자금 대출 상품 관련해서는 영업점 축소와 상관없이 위험관리 차원에서 중단했으며, 타행으로 ‘갈아타기’ 문제도 전세자금 대출이 은행권 공동상품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쉽게 대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노사갈등이 격화되는 이유는 결국 구조조정 문제다. 영업점 통·폐합으로 전체 직원 3500여명 가운데 800명이 갈 곳을 잃는다. 씨티은행은 이들을 공모과정을 거쳐서 고객가치센터·고객집중센터·여신영업센터·자산관리(WM)센터로 보낼 계획이다. 고객가치센터·고객집중센터는 전화와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로 고객에게 상품을 소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노조 측은 “비대면 영업이라는 말로 미화하고 있지만 결국 영업점 직원을 콜센터로 보내는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콜센터 ‘직행’이 아니더라도 결국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같은 고민

씨티은행의 갈등은 정치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금융노조 및 씨티은행지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2명은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씨티은행의 점포 폐쇄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중심 정책에 전면 역행하는 것으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씨티은행이 지점을 줄이면서 내세운 명분은 ‘디지털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씨티은행은 모바일 등 인터넷을 통한 금융거래는 2006년 14%에서 2016년 52%로 증가했지만 점포를 통한 거래는 같은 기간 38%에서 5.5%로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박진회 씨티은행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2016년 말 전체 금융거래 중 모바일·인터넷뱅킹 비중이 52%로 11년 전의 14%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며 “거래비중이 5.5%에 불과한 대면 점포에 임원의 40%가 배치돼 있는데, 이런 점포 인력을 전문 자문사 등으로 키우는 변신을 타행들보다 앞당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내심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입출금·자금이체 거래의 창구 이용 비중은 10.9%에 불과하다. 반면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거래는 42.1%, CD·ATM 35.7%, 텔레뱅킹 11.3%로 나타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오프라인 영업점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거기서 얻어지는 수익을 단편적으로 비교한다면 지점을 줄이는 게 맞기는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은행 영업점(특수은행 포함)은 7103개였다. 2012년에는 7698개였던 점을 감안하면 4년 만에 7%가량 감소했다. 올해에도 300개가량 지점 통·폐합이 예고된 상태라 영업점 감소세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지점 축소가 시대적 흐름이지만 부작용을 고려해 대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준범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은행 영업점 미래상’ 보고서에서 “단순거래는 모바일, ATM 등 비대면채널로 유도하는 대신 직원들은 본연의 금융상품 역할에 주력해야 한다”면서 “금융 포용성 차원에서 고령층·소외지역 거주민 등 취약계층의 은행 서비스 이용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역의 점포망 유지, 비대면채널 활용 교육 계획 등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