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쓴다는 대포폰 합법인가 불법인가

전기통신법에 애매한 처벌 규정… 경찰, 대포폰 제공자와 범행 악용자에 주로 적용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는 ㄱ씨(48)는 업무용 휴대전화로 타인 명의의 ‘대포폰’을 사용한다. 허가를 받은 사업장이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행업이라는 업무 특성상 본인의 신분을 드러내고 휴대전화를 쓰기가 꺼려지기 때문이다. ㄱ씨는 한 선불폰 업자로부터 2~3개월마다 20만원을 내고 명의가 변경된 대포폰을 공급받는다. 누구 명의의 휴대전화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알려고 들지는 않는다. ㄱ씨는 “받아온 대포폰 대부분이 외국인 명의로 알고 있다”며 “좀 꺼림칙하긴 해도 나쁜 일에 쓰는 건 아니니 그냥 쓰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대포폰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 등이 모두 범행 또는 공모 과정에 대포폰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현행법상 대포폰 사용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애매한 상태지만 청와대에서조차 공공연하게 대포폰을 쓰는 것으로 확인되자 대포폰 사용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해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에는 이른바 ‘최순실 관련법’으로 대포폰 사용자를 처벌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제출됐다.

경찰에 압수된 대포폰. / 경향신문 자료사진

‘효도폰’도 엄밀히 보면 ‘대포폰’

헌법에 보장된 ‘통신 비밀의 자유’를 들어 대포폰 사용 처벌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휴대전화 사용자가 ‘누구’인지 반드시 확인토록 돼있는 현행 규정 자체가 개인의 통신 자유와 정보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규정하는 단어 자체가 없다. 일각에서는 타인의 동의를 얻어 개통한 휴대전화는 차명폰,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은 대포폰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통신업계에서는 차명폰과 대포폰을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다. 자식이 노부모에게 제공하는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도 엄격히 보면 ‘선의’의 대포폰이다.

지금은 휴대전화 가입 시 가입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게 당연한 절차처럼 돼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휴대전화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던 시절에는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타인 명의의 전화 개통이 가능했고, 본인 확인이 필요없는 선불폰도 공공연하게 통용됐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짜 주민번호’로 휴대전화 개통도 가능해 2000년대 초반에는 이통사 간 실적쌓기 경쟁 속에 가짜 명의의 휴대전화가 대량 개통되기도 했다.

가짜 명의 휴대전화로 통신시장이 교란되고, 명의 도용 휴대전화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면서 주민번호 등을 통한 본인 확인 절차는 갈수록 강화됐다. 이통사들도 적극 협조했다. 가짜 명의 개통으로 실적을 올릴 때는 좋았지만, 막상 가입자들의 신원이 명확지 않다보니 휴대전화 개통 후 요금 체납이나 미납 시 이를 회수하는 데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과거 이통사들이 주민번호 수집에 열을 올렸던 이유는 순전히 체납 요금 등 채권 추심 목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는 전국 이통사 대리점에 주민등록증의 진위 여부를 즉석에서 가려주는 판독기도 보급됐다.

2014년 10월에는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라는 논란 속에 대포폰 근절 등을 명목으로 이른바 ‘휴대전화 실명제 의무화’ 조항이 전기통신사업법에 추가됐다.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 위탁해 통신 가입자의 주민번호나 가족관계 정보 등을 수집해 ‘부정가입 방지시스템’을 구축한 뒤 이통사들이 이 정보를 이용해 신분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조항이다.

본인 확인 강화조치가 꾸준히 마련됐지만 대포폰은 암암리에 계속 판매돼 왔다. 현재도 인터넷을 통해 선불 사업자 등으로부터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은 20만~25만원, 스마트폰은 40만~50만원이면 대포폰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대포폰 공급은 주로 명의를 도용하거나 급전이 필요한 신용불량자 및 노숙자, 채무자 등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명의를 사들인 뒤 명의 한 개당 많게는 수십 개의 전화를 개통해 유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업자들은 개인 명의를 적게는 30만~40만원에 매입해서 개통된 대포폰은 대당 수십만원에 유통시키기도 한다. 통상 명의 한 개당 개통 가능한 휴대전화는 이통사별로 3~4대로 제한돼 있지만, 각 이통사나 본인 확인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알뜰폰 업체 등을 돌며 개통하다 보면 명의당 수십 대 개통도 가능하다.

“대포폰 사용만 해도 처벌해야”

한 휴대전화 판매업자는 “사망자나 외국인의 명의를 이용해 개통하는 경우도 있고, 영세한 판매점의 경우 사업자 스스로 본인 명의의 대포폰을 만들어 단골 등에게 돌리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감사원 감사 결과 정부의 본인 확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명의 9만2561건, 폐업법인 명의 2만3727건 등 11만6288개의 휴대전화가 여전히 개통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11월부터 본인 확인이 미흡한 휴대전화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본격적인 대포폰 사용자 처벌규정이 도입된 것도 2014년 10월부터다. 기존에도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타인 사용의 제한)에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이를 타인의 통신용으로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처벌조항이 있었지만 대포폰 제공자를 겨냥한 규정이었다. 정부는 법개정을 통해 제32조 4항(이동통신 단말장치 부정이용 방지 등)에 ‘자금을 제공 또는 융통하여 주는 조건으로 다른 사람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이용하는 행위나 이를 알선·중개·광고하는 행위’를 금지 규정으로 추가해 이 같은 행위가 적발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신설된 대포폰 사용자 처벌조항은 주로 대포폰을 범행에 악용하다 적발된 범죄자에 한해 ‘사후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도 대포폰 사용자만을 수사하기보다는 대포폰을 만들어 불법적으로 유통하는 ‘제공자’ 검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조항 자체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적용 여부가 불분명한 사례도 있다. 법에서 명시한 ‘자금을 제공 또는 융통하는 조건’ 없이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사용했을 경우에는 법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 등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등 10명은 “현행법의 처벌조항이 미비하다”며 지난해 12월 대포폰 사용자를 현재보다 더 구체적으로 규정해 처벌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존 처벌조항인 제30조에 제공자뿐만 아니라 사용자도 처벌 대상으로 추가하는 게 주요 골자다. 처벌 기준도 높여 제32조 4항을 위반해 대포폰을 공급하거나 이를 사용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대포폰 중에는 요금대납 등을 목적으로 가족이나 친척 등에게 본인 명의로 개통된 전화를 제공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이 때문에 개정안에서는 대포폰 사용이 가능한 예외 사유에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법정대리인 및 친생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친양자 입양된 자에게 제공하는 경우’를 신설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예외 사유 이외 대포폰 사용자는 불법적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처벌받게 된다.

범죄에 악용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 대포폰 처벌 강화의 주된 논리다. 보이스피싱이나 휴대전화 불법대출 등 금융사기나 성매매, 불법도박 등의 범행 대부분이 대포폰을 통해 이뤄진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이 적발한 대포폰 관련 범행 건수도 2014년 259건(대포폰 1만1490대)에서 2015년 325건(1만9354대), 2016년 1~7월간 408건(2만1480대)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의 한 휴대전화 매장

본인 확인 정책 강화 등으로 휴대전화 명의 도용으로 인한 피해규모가 감소추세에 접어든 것도 대포폰 처벌 강화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미래창조과학부 자료를 보면 휴대전화 명의 도용 피해규모는 2013년 5200건(피해액 27억8700만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4년 3341건(19억7100만원), 2015년 1332건(8억2200만원) 등으로 감소 중이다. 대포폰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 본격화되면 명의 도용 사례가 더욱 감소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전망이다.

“통신 비밀 자유 보장돼야”

오픈넷 등은 대포폰 사용자 처벌을 강화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8조를 위배하고 개인의 정보인권을 침해한다며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국민들이 본인의 신원이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통신할 자유가 있다는 게 이들이 제시하는 논리다. 대포폰이 불법행위나 범죄에 일부 이용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포폰을 쓰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무조건 처벌하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문제제기다.

대포폰 사용자를 처벌하기 앞서 범죄수사 등을 명목으로 수사기관이 국민들의 통신기록이나 통신자료를 무차별적으로 뒤지는 등 이미 정보인권 침해가 심각한 국내 현실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4~2015년간 수사기관에 제공된 통신자료는 이통3사 합계 3360만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자료란 휴대전화 가입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와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이 담긴 정보로 법원의 영장 없이도 수사기관이 이통사에 요청해 받아볼 수 있게 돼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기지국을 통째로 ‘터는’ 수사방식이 만연돼 있다”며 “통신자료 제공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 비해 본인 확인 강화 등 일명 ‘휴대전화 실명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정부 정책에도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일정액을 내고 심(SIM)카드만 구매하면 별도의 본인 확인 절차 없이 기존 휴대전화에 꽂아 이용이 가능하다.

범죄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도 반론이 있다. 멕시코에서는 심카드 구매 시 의무적으로 본인정보를 등록하도록 하는 ‘심카드 등록제’를 도입했다가 범죄예방 등에 별 효과가 없자 3년 만에 폐지했다.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도 유사한 제도의 도입을 고려했다가 취소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유럽연합(EU) 내에서 일부 국가가 시행 중인 ‘심카드 등록제’를 확대하자는 건의가 나왔지만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심카드 등록제가 범죄수사 등에 특별한 편익을 가져다 준다는 근거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처벌규정이 되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에 대한 위헌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제30조의 경우 2002년 헌법재판소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친구에게 전화기나 컴퓨터를 빌려주는 행위 등 통신을 매개하는 모든 행위가 금지행위에 해당하게 될 우려가 있어 죄형법정주의에서 도출되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는 “위헌 판결 후 금지행위의 예외조항을 추가해 제30조가 다시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규제하는 범위가 넓어 위헌요소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전기통신사업법의 위헌요소에 대한 헌법소원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래부 전영수 통신이용제도과장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가 종료되면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