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안전법은 왜 악법이 되었나?

의류·잡화까지 인증서 보유 규정 확대… 제조·유통·수입업자들 반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도 요즘 손님이 뚝 떨어졌는데, 민생경제 살린다면서 되레 죽이고 있습니다. 누굴 위한 법인지 묻고 싶네요.”(동대문시장 상인 강모씨)

“법이라는 게 무섭네요. 안전요? 저 역시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법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에서 나온 족쇄에 불과합니다.”(해외구매 대행업자 안모씨)

1월 28일 시행에 들어간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안전법)을 두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소상공인들의 숨통을 틀어막는 ‘민생악법’으로 지목되면서 해당 법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전면 개정이 불가피한 처지가 됐다.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을까.

전기안전법은 기존에 분리돼 있던 ‘전기제품 안전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을 통합한 것이다. 2015년 8월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고, 그해 마지막 날 국회 문턱을 통과했다.

한적한 서울 남대문시장 의류매장 앞을 한 소비자가 걸어가고 있다. 영세 의류업체들은 전기안전법 시행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고 반발 중이다. /김정근 기자

영세상인들, 거액 인증 비용에 울상

법의 도입취지 자체를 문제삼기는 힘들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안전 관리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전거나 온수매트 같은 융·복합 제품이 증가하는 현실도 감안됐다.

전기안전법은 전기·유아용품에만 한정됐던 안전확인 KC(국가통합인증마크) 인증서 보유 규정을 의류·잡화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발이나 의류, 액세서리처럼 사람의 피부에 닿는 모든 생활용품에 대해 KC 인증을 받도록 한 것이다. KC 인증 없이는 제조, 수입, 판매, 구매대행, 판매중개를 할 수 없게끔 규정하고 있다. 제품별 KC 인증서를 매장에 의무적으로 비치해야 하며, 인터넷 판매자는 홈페이지 등에 게시해야 한다. 의류 제조·판매업자의 경우 원단이 다르다면 품목별로 모두 인증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비용부담이다.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의류·잡화 등 생활용품을 다루는 소규모 유통·수입업자들까지 모든 취급 제품에 대해 품목별로 20만~30만원을 들여 인증을 받아야 한다. 자체적으로 안전검사 장비를 갖춘 대기업과 달리 중소업체들은 외부기관에 한 달에 수백만원 또는 수천만원의 비용을 내고 인증을 받게 되면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전기안전법이 대기업의 지위를 한층 강화하고, 영세상인들의 씨를 말리는 악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패션 1번지’인 동대문시장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는 상인들의 저항이 거세다. 생산원가가 뛰는 데다 공장 주문부터 매장 배송까지 3~4일이면 끝나는 시스템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동대문시장의 한 상인은 2월 6일 한국패션산업그린포럼 간담회에서 “전기안전법을 따르면 시험분석을 보내고 라벨을 맞춰야 하는 등 10일이 흘러간다”고 말했다.

해외 브랜드를 소량·다품목 형태로 들여와 온라인 쇼핑사이트 등에서 판매하는 병행수입업자나 해외구매 대행업자들은 그야말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병행수입·구매대행 품목은 수백 가지이지만 수량이 적어 KC 인증을 위한 비용이 추가되면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되는 셈이다. 공병주 한국병행수입업협회장은 “해외에서도 의류제품에 대해서는 이러한 인증제도가 없다”며 “업계 현실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개정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판매업체에 제품 인증·게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소리”라며 “전기안전법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온라인 쇼핑사이트로 수요를 내몰아 국내 사업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역시 전기안전법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제조업체의 비용부담 증가는 곧 판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가가 나날이 오르는 데다 의류 등 생활용품 가격까지 덩달아 뛰면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질 것이라며 전기안전법에 반발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논란이 일자 정부는 의류 등 문제가 된 품목의 KC 인증서 게시 및 보관 의무를 1년간 유예했다. 그래도 반발을 잠재우지 못했다. 특히 현장에서는 실제로 단속이 벌어지거나,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KC 인증이 없으면 입점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전기안전법의 직접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인터넷 카페 ‘전기안전법 폐지를 위한 모임’(전폐모)은 청와대를 비롯해 한국소비자원과 국가기술표준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온라인쇼핑협회는 최근 국가기술표준원과의 긴급회의 자리에서 전기안전법의 부당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누리꾼들도 포털사이트에서 전기안전법 폐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법적 공방까지 일 조짐이다. 병행수입업자와 해외구매 대행업자 등 수입유통업자들은 “전기안전법이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이르면 이달 말 헌법소원을 낸다. 인터넷 카페 ‘전폐모’를 운영하는 안영신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장은 “법무법인과 수차례 논의한 끝에 헌법소원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현재 헌법소원 청구인을 모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법 폐지가 힘들다면 소상공인의 처지를 고려한 법 개정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반발 움직임… 개정 불가피

정치권에서도 전기안전법 개정 및 폐지 촉구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법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고, 국민의당은 지난 8일 동대문 밀리오레를 찾아 중소 상공인들의 애로점을 들었다. 다음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민의당 간사인 손금주 의원은 국회에서 ‘전기안전법 논란 끝장토론회’를 열고 “전기안전법이 소비자 안전을 강화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사업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부분 때문에 많은 우려를 낳는 것이 사실”이라며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이라 해도 문제점을 외면하거나 책임을 회피할 순 없다”고 말해 법 개정 의지를 보였다. 바른정당은 2월 진행 중인 임시국회에서 전기안전법 개정을 추진하고, 필요 시 폐지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서 “정부와 국회가 법 제정 과정에서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고, 행정편의적인 ‘낡은 규제’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며 “세계를 무대로 소량 생산하는 미래 한류산업을 제한하는 나쁜 규제”라고 비판했다.

‘1년 유예’로 급한 불을 껐다고 판단했던 정부도 이젠 두 손을 든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개선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 장관은 “제품 안전체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제조자와 수입자, 또 판매자의 부담이 확대된 부분이 있다”며 “소비자 보호라는 당초 취지를 살리면서도 특히 소상공인에게 과도하게 이행부담이 되는 부분은 실질적으로 그 이행을 제고할 방안이 뭐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도가 중요한 제품에 대해선 안전인증을 하고 있는데 섬유라든가 가방이라든가 하는 생활용품의 경우 좀 규제를 달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며 “관련 업계, 소비자단체, 전문가들, 필요하면 의원들과 협의해서 법 개정을 포함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강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반발에 못 이겨 개선 의사를 밝히고 나섰지만, 애초 업계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안전 그물망을 짜보자는 뜻에서 전기안전법을 만든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소상공인에게 치명타를 안기고 소비자에게도 부담을 가중시킬 게 불보듯 뻔한데도 불구하고 입법과정에서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전혀 하지 않은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정부가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등 미온적 자세를 취한 것이 되레 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고영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god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