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추경’ 약이냐, 독이냐

박근혜 정부, 10조원 넘는 추경 두 번째… 메르스 피해복구·경기 부양 ‘두 마리 잡기’

또다시 구원투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이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빚내서 돈을 풀기로 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 15조원 이상의 재정보강을 추진하겠다”며 “추경, 기금 변경, 공공기관 조기투자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재원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7월 초 상세한 추경안을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3년 17조3000억원을 추경을 통해 풀었다. 그러니까 3년간 두 번이나 추경을 편성하는 셈이다. 역대 정부에서 10조원 넘는 추경을 두 번 편성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처음이다. 지난해에도 추경은 피했지만 46조원에 이르는 돈을 풀었다. 이런 부담 때문에 당초 기획재정부는 올해 추경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메르스 피해가 확대되자 슬그머니 인위적 경기부양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부는 이참에 메르스 피해복구뿐 아니라 추가 경기 부양에 나선다.

6월 2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업 중심의 민간경제연구원 환영 일색
추경을 하면 확실히 성장률이 올라간다. 국내총생산(GDP)은 생산과 소비와 함께 정부 구입, 순수출을 합해 구한다. 정부 구입에는 공무원 월급과 정부가 지출한 것이 모두 포함된다. 숫자로 표시되는 GDP는 정부가 재원을 쓴 만큼 올라간다. 정부는 15조원 이상을 추경하면 0.2~0.3%포인트가량 실질 GDP 성장률이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생각하는 성장률 마지노선인 3.0%를 지키게 된다. 정부가 재수정한 올해 성장률 목표치는 3.1%다.

문제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점이다. 추경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결국은 국채를 발행해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시절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출범과 함께 대규모 추경을 단행하면서 당시 세웠던 중장기 계획은 1년도 못 가 엉망이 됐다. 2017년 균형재정(들어온 세수입만큼 재정지출을 해 재정이 적자가 나지 않는 상태)을 이루겠다고 한 약속은 휴지 조각이 된 지 오래다. 때문에 추경이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이로울 것이 없다는 주장도 많다. 추경은 두 얼굴을 갖고 있는 셈이다.

기업 중심의 민간경제연구원은 환영 일색이다. 추경을 하면 상당액이 기업지원으로 들어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성장률 3%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2조원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편성하려는 ‘15조원+α’도 적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수준의 세수결손이 발생하면 올해도 10조원가량이 부족하고, 그만큼 예정된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세입추경을 해서 10조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최근 경기가 좋지 못해 예정된 사업을 모두 하더라도 올해 성장률은 2.6%에 그친다는 것이다. 0.4%포인트 추가 성장을 해야 성장률 3.0%에 이르게 되는데, 0.4%포인트 추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12조원의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투자해야 한다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주장했다. 새로 만들어 투입하는 돈 12조원을 세출경정이라고 부른다. 홍준표 연구위원은 “GDP 성장률이 계속해서 낮은 상태로 갈 경우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잃게 돼 성장잠재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며 “충분한 규모의 추경을 해야 시장도 자신감을 갖게 돼 경기회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추경은 경기부양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추경 편성 효과가 크면 세수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재정건정성 악화 우려가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깜깜이 추경’이라는 국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추경안을 서둘러 공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6월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추경 편성 여부와 규모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추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열흘도 안 돼 ‘15조원+α’를 부랴부랴 발표했다. 경기부양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시장에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둘러 규모부터 발표한 추경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추경이 제대로 쓰이지 않아서는 효과가 적고, 되레 돈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2001년 이후 추경 편성된 상황을 분석해보면 성장률이 ‘반짝’ 상승한 뒤 추락하는 일이 반복됐다. 2009년 28조4000억원에 달하는 ‘슈퍼추경’으로 2010년 실질성장률이 6.5%를 기록했지만 추경을 편성하지 못한 2011년 3.7%, 2012년에는 2.3%로 급락했다. 대규모 추경에 따른 부담으로 공격적인 확대재정을 더 이어가지 못하면서 경기가 위축된 것이다. 이는 2013년 추경을 재편성하는 결과로 빚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역대 두 번째 규모인 17조3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성장률은 2013년 2.9%, 2014년 3.3%로 확대됐지만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올해 다시 2%대로 추락이 예상되자 정부는 또다시 15조원이 넘는 추경을 긴급 투입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장기적으로 이로울 것 없다” 주장도
성장은 단기에 그쳤지만 재정수지는 꾸준히 나빠졌다. 추경이 있는 해는 어김없이 재정수지가 빨갛게 변했다. 2008년 슈퍼추경 때는 관리재정수지(국민연금 등 연금수지를 제외한 재정수지)도 역대 최대인 43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2013년 추경 때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0조원을 넘어섰다. 또 추경을 위해 막대한 국채를 발행하면서 국가채무도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2008년 309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슈퍼추경 이후인 2009년 359조6000억원으로 50조6000억원이나 늘어났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도 28.0%에서 31.2%로 3.2%포인트가 뛰었다. 2013년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443조1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2013년 489조8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2014년 현재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35.7%까지 높아졌다.

이런 패턴은 ‘잃어버린 20년’의 단초가 된 1990년대 일본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일본은 경기침체를 탈출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퍼부었다. 지금의 한국처럼 성장률이 떨어지고 인구 고령화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SOC)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여기에 사회복지비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재정지출이 대폭 확대됐다. 세수입은 적었다. 성장률이 낮아지고 물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수록 실제 재정지출과 실제 조세수입 간 격차가 커졌다. 이는 일본의 재정수지를 급속히 악화시켰고, GDP 대비 60%대였던 ‘재정건전국’ 일본의 국가부채가 250%에 육박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성장률이 3.0%가 되거나 2.9%나 되거나 큰 의미가 없는 만큼 성장률 방어를 목적으로 추경을 해서는 안 된다”며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손쉽게 추경을 편성하면 재정건전성이 훼손되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 개혁 문제가 뒤로 밀리는 부작용이 빚어질 수 있는 데다, 추경 효과도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