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숨비소리, 또 들을 수 있을까

귀어귀촌 바람에 해녀에 대한 관심 늘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지정 추진

‘호오이 호오이~’

멀리 해수면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린다. 숨비소리다. 숨비소리란 해녀들이 1~2분간 숨을 꾹 참으며 잠수한 뒤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다. 그러면서 몸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급히 들여마신다.

머지않아 더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숨비소리의 명맥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귀어귀촌 바람에 해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1월에는 유네스코가 제주해녀의 인류무형문화유산 지정을 결정한다. 제주시는 지정을 자신하고 있다. 만약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제주해녀에 대한 국내외 관심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녀의 98.5%인 4348명은 50세 이상
강권용 해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해녀는 단순히 물질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해녀는 여성, 자연, 노약자, 생태계, 공동체 등 다양한 가치를 갖고 있고, 이런 점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가치와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잠수어업인은 총 4415명이다. 이 중 남성 6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해녀다. 해녀들은 물에 들어가 소라, 전복, 성게 등을 따온다. 1970년 해녀는 1만4000명이 넘었다. 산업화 바람은 제주 어촌에도 어김없이 불어왔다. 1980년 7804명으로 줄어들더니 2000년에는 5789명으로 줄어들었다. 2010년 5000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그 수는 매년 줄고 있다. 고령화는 더 심각하다. 해녀의 98.5%인 4348명은 50세 이상이다. 50세 미만은 67명(1.5%)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20년 뒤면 사실상 해녀의 명맥은 끊길 것으로 예상됐다.

5월 30일 제주 한수풀 해녀학교 8기 학생들이 첫 실습을 위해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 박미라 기자

제주해녀 명맥잇기가 시작된 것은 이 같은 위기감에서였다. 제주시와 정부가 해녀 살리기에 본격 나선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분위기는 좋다. 귀어귀촌 바람이 불면서 해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해녀를 양성하기 위해 올해 개교한 ‘법환잠녀마을 해녀학교’는 20명 모집에 35명이 신청했다. 이 중 30명을 선발했는데, 제주도 외 거주자가 6명, 3년 미만의 정착주민이 9명이나 된다. 제주도 외 거주자는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와 수업을 듣는다. 신청자가 젊은 것도 징조가 좋다. 30명 중 30~40대가 80%다. 20대도 2명이 있다.

8년째 운영 중인 ‘한수풀 해녀학교’에도 해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2008년부터 3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10여명은 진짜 해녀가 됐다. 올해 8기 모집에서도 240명이 몰렸고 이 중 69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8명은 외국인이다.

과거 해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주도에서 배 곯지 않고 먹고 살려면 물질이 불가피했다. 경력 30년이 넘은 제주해녀 강애심씨는 “내 나이 32세에 시어머니께 끌려나와 울면서 물질을 배웠다”고 말했다. 맨몸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바다는 위험하기도 했다.

‘한수풀 해녀학교’ 졸업생 300명 배출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해녀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해녀들은 연평균 1800만원, 특상군(가장 기량이 뛰어난 해녀)은 연 5000만원까지도 벌지만 가계를 부양하기 위해 해녀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보다는 해녀와 바다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거나 노후에 용돈을 벌기 위해 해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추후 바다 근처로 귀어를 생각 중인 사람들 중에서도 해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식이든 해녀는 거칠고 힘든 이미지에서 밝고 즐거운 이미지로 바뀌어가고 있다. 해녀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도티마이씨(33·베트남)는 “TV에서 해녀가 해산물을 잡는 것을 봤는데 참 신기해서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출신인 박은실씨(32·여)는 “제주도에 연고 없이 혼자 내려왔는데 어촌계에 가입이 된다면 생업으로 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해녀는 정부의 필요에 따라 정의가 달라졌다. 1960년대 정부는 ‘해녀쇼’를 여는 등 단순한 볼거리로 대접했다. 1970년대에는 해녀를 전통민속으로 취급했다. 1980년대 접어들자 해산물 생산을 하는 산업역군으로 봤다. 21세기가 되면서 해녀는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제주해녀문화를 세계무형문화제로 등재하기 위해 지난 3월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만약 선정된다면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종묘제례 등에 이어 한국의 18번째 세계무형문화유산이 된다.

정부가 해녀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추천한 이유는 해녀 공동체 때문이다. 약자를 돕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 의식은 인류가 간직해야 할 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해녀는 대상군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대상군은 나머지 해녀들의 작업을 안전하게 이끌고 공동체의 화합을 조율한다. 마을 앞바다 수심 얕은 곳은 ‘할망바당’이라고 부른다. 나이가 많은 해녀만이 들어가 수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곳으로 복지 차원의 바다다. 처음 바다에 들어가는 신입 해녀에게는 같이 들어간 선배 해녀들이 그날 잡은 해산물 중에 가장 크고 좋은 것을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게석’이라 부르는 관행이다. 해녀들은 물질을 해서 얻은 수익 중 일부는 기금을 조성해서 공익을 위해 썼다. 마을 안길을 정비하거나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데, 혹은 책·걸상을 바꾸는 데 아낌없이 돈을 내놨다. 해녀들은 만장일치제의 전통을 갖고 있다. 갈등사항이 생기면 자유토론을 거친 뒤 조직 모두가 합의해야 일을 진행시켰다. 끝내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원로 대상군의 의견을 따랐다. 어장 관리도 공동으로 했다. 모든 해녀는 마을 앞바다의 잡초를 베어내고 정리하는 ‘개닦이’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강 연구사는 “제주해녀가 사라지면 물질 기술과 바다에 대한 지식, 해녀의 합리적 공동체 운영의 지혜가 영원히 사라진다”며 “제주해녀를 되살리는 것은 제주의 명물을 되살린다는 의미뿐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가 잊고 있는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