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감기>-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인포데믹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악화되면서 새삼 부각되는 한국 영화가 있다. 김성수 감독의 <감기>다. 2013년 개봉됐을 당시 311만명의 관객을 모았지만 <7번방의 선물> <설국열차> <변호인> <베를린> 등 1000만 영화에 밀리며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이 여러모로 이번 메르스 사태와 닮은 꼴이어서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시놉시스는 이렇다. 컨테이너 박스에 숨어 평택항으로 밀입국하려던 동남아인들이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죽은 채 발견된다. 이들을 죽인 것은 변종 조류독감이다. 변종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분당 전역으로 확산된다. 환자들이 기침에서 내뱉는 비말(침)을 통해 사람들은 급속히 감염된다. 한 번 감염되면 절반은 죽는 죽음의 병이다. 사람들이 잇달아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질병관리본부는 분당 전역을 격리조치시킨다. 원인도 모른 채 격리된 40만명의 사람들은 마침내 폭동을 일으킨다. 바이러스 전파를 우려한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내세워 이들에게 발포를 명령한다. 한국 대통령이 거절하자 미군은 분당을 폭격하기 위해 미군 전투기를 발진시킨다. 한국 대통령은 수도방위사령부에 연락, 지대공미사일로 미군 전투기 격추를 명령한다.

영화 속 한국 정부는 변종 조류인플루엔자라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내용을 즉각 공개하지 않는다. “공식 발표를 먼저 하는 게 맞다”는 분당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총리는 “인간이란 게 위기상황에서는 절대 침착해질 수 없다”며 “오히려 발표 보고 난리 치면 그게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다”며 일축한다.

위기상황이 닥치면 위기 자체도 무섭지만 몰라서 느끼는 공포감이 더 크다. 공포감은 각종 뜬소문이나 괴담으로 인해 더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인포데믹스라고 한다. 인포데믹스는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s)의 합성어다. 인포데믹스로 사람들이 동요하면 정부는 침착한 대응을 하기 힘들게 된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다 보면 경제나 정치·안보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포데믹스를 정보전염병 혹은 21세기의 흑사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2003년 5월 미국 컨설팅 업체인 인털리브리지의 데이비드 로스코프 회장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인포데믹스’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07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인포데믹스가 화두가 되면서다.

인터넷 사회에서는 인포데믹스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퍼져 나간다. 특히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한 전파 속도가 빠르다. 라인과 카카오톡의 위력도 대단하다.

금융위기 때 인포데믹스는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은행이 약간의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그 은행은 곧 망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면 예금자들은 순식간에 은행으로 몰려들며 뱅크런이 일어난다. 은행이 예금자들에게 예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은행은 파산이다. 국제경제에서도 통용된다. 그리스가 위험하다더라, 스페인이 위험하다더라 등의 미확인 루머로 인해 해당국은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폭락할 수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도 이런 식으로 투기자본에 당했다.

영화 속 경제

인포데믹스는 정보 통제로 인해 공공조직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때 잘 나타난다. 믿을 만한 정보가 없으니 불안하고, 헛된 루머에 쉽게 현혹된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그렇다.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며 독점하자 온갖 루머들이 온라인 세상을 가득 메웠다. 세상 모두가 아는 ‘D병원’의 실명을 좀처럼 공개하지 않았던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하기’ 식 대응이 부른 참극이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