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이미테이션 게임-컴퓨터 세상을 예견한 천재수학자

아이폰을 만든 애플사의 로고는 베어 문 사과다. 스티브 잡스는 어디서 이 디자인을 생각했을까. 애플의 공식 답변은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다. 애플은 부인하지만 신빙성 있는 또 하나의 주장이 있다. 바로 ‘튜링의 사과’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베어 물고는 자살했다.

모튼 틸덤 감독의 <이미테이션 게임>은 컴퓨터를 고안한 앨런 튜링 이야기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 수학자의 기행을 다룬다는 점에서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와 매우 닮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 기계인 ‘에니그마’는 연합군을 괴롭혔다. 24시간 바뀌는 암호를 영국은 좀처럼 해독하지 못했다. 독일은 에니그마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작전 지시를 하달했고, 독일의 잠수함은 대서양에서 연합군의 상선과 함선을 무차별 침몰시켰다. 연합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에니그마를 풀기 위해 수학자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이 투입된다. 튜링은 암호 해독기를 만들기로 한다. 기계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학창 시절, 자신을 이해해줬던 유일한 친구의 이름이다.

하지만 암호 해독기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주변의 동료들도 비웃는다. 단 한 명, 그의 여인이 될 뻔한 여자 수학자인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 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튜링이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그의 부족한 사회성과 함께 ‘퍼스트 무버(first mover)’였기 때문이다.

‘퍼스트 무버’란 신기술을 개발해 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창의적인 선도자를 말한다. 퍼스트무버는 때론 어려움을 겪는다. 이전에 없던 제품과 기술력을 선보이기 때문에 “성공하겠느냐”는 비아냥을 안팎에서 받게 된다. 성공하기 전까진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한다.

퍼스트 무버와 비슷한 개념으로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가 있다. 글자 그대로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 혹은 기업이다. 이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민감하게 잡아내 다른 기업보다 앞서 제품을 선보여 시장을 이끈다. 펭귄들은 처음으로 물에 뛰어들 때 많이 망설인다고 한다. 그러다 한 펭귄이 물에 뛰어들기 시작하면 나머지 무리들도 뒤따라 물에 뛰어든다. 이때 처음으로 뛰어든 펭귄을 ‘퍼스트 펭귄’ 즉 ‘첫 펭귄’이라 부른다. ‘퍼스트 펭귄’은 조직 내에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큰 영향을 주는 구성원을 말하지만 기업 분야에서는 ‘퍼스트 무버’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퍼스트 무버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데다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각인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의 애플, 검색시장의 야후, 워크맨 신화를 이룬 소니 등이 있다. 하지만 퍼스트 무버는 리스크도 크다. 소위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이들과 반대 개념으로는 패스트 팔로(fast follower)가 있다. 퍼스트 무버들이 만들어놓은 시장과 기술을 재빨리 따라가는 기업들을 말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뒤졌던 한국 기업들은 패스트 팔로에 속한다. 패스트 팔로는 시행착오가 적고, 효율성 있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남의 기술을 따라하는 수준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힘들다.

영화 속 경제

튜링은 ‘이미테이션 게임’(일명 튜링 테스트)을 통해 인공지능의 출연을 예고했다. 사람 A가 사람 B와 컴퓨터 B가 준 답을 듣고 사람의 답인지, 컴퓨터의 답인지 구분을 못한다면 컴퓨터 B는 ‘사고하는 컴퓨터’ 즉 인공지능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튜링의 ‘크리스토퍼’(일명 튜링기계)와 그의 논문은 컴퓨터의 시초가 됐다. 튜링은 디지털 컴퓨터 세상에 길을 냈고, 후세는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됐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