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분노의 질주-마약왕에게 ‘포획’ 당한 브라질 경찰

자동차는 남자들에게 로망 중의 하나다. 거친 자동차 엔진 소리는 남자들의 심장을 설레게 한다. 2001년 시작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자동차 액션 영화 중 최고봉이다. 최근 <분노의 질주:더 세븐>이 개봉돼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다섯 번째 시리즈인 <분노의 질주:언리미티드>(2011)도 물량과 규모 면에서 타 시리즈에 뒤지지 않는다. 저스틴 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다섯 번째 이야기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간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이감 중이던 도미닉은 전직 FBI 요원인 브라이언과 여동생 미아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다. 브라이언은 애인인 미아와 함께 브라질로 숨어들지만 무일푼이다. 브라이언은 열차로 운송되는 슈퍼카를 털어 돈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받고 공모에 참여한다. 그런데 하필 이 슈퍼카는 리우의 마약왕 레이에스의 차다. 차에는 레이에스의 불법 회계장부가 저장된 칩이 숨겨져 있다. 레이에스가 불법적으로 벌어 금고에 숨겨놓은 돈은 1억 달러(약 1100억원). 레이에스 부하들의 공격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도미닉은 레이에스의 금고를 털기로 한다. 그때 미국 정부요원 홉스가 도주한 도미닉과 공범자인 브라이언을 체포하기 위해 브라질에 파견된다.

홉스는 브라질 경찰에 지원을 요청하는데, 그가 지명한 경찰은 신참 여자 경찰인 니베스다. 경찰이었던 남편이 빈민가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자 경찰이 된 여인이다. 홉스는 베테랑 경찰 대신 니베스를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매수가 안 된 유일한 경찰 같아서.”

마약왕 레이에스는 뇌물을 줘 많은 경찰들을 매수했다. 경찰이 뒷배를 봐주니 겁날 게 없다. 레이에스는 도미닉 일당이 자신의 금고를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돈을 경찰서 내 금고에 맡긴다. 그동안 자신이 매수했던 경찰들이 총출동해 그의 금고를 지킨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브라질 경찰은 레이에스에게 ‘포획’됐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조지 스티글러는 1971년 <규제의 경제이론>이라는 논문을 통해 ‘포획 이론’을 발표했다. 포획 이론이란 보호를 필요로 하는 개인과 기업이 정부를 설득, 자기들에게 유익한 각종 규제정책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시장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거나 높은 전문성을 띤 산업분야에서 일어나기 쉽다. 이 이론에 따르면 기업들은 정부 규제를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특정 규제를 환영하는 경우도 많다. 독점적인 이익 창출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폭넓게 포획 이론의 의미를 확장하면 정부가 이익집단의 로비 등에 설득당해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형태도 포함된다. 각종 자격증 제도가 대표적이다. 의사나 변호사 혹은 회계사 같은 전문가 집단의 경우 너무 인원이 많으면 경쟁이 치열해 수익을 남기기 힘드니 신규 인원 선발을 제한해 달라는 요구를 종종 한다.

정부가 기업에 포획당하는 이유는 규제기관인 정부는 규제를 당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존재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가 어업인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토교통부가 건설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융감독기관도 금융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금융사의 이익을 보전해 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국 포획 이론은 정부의 각종 정책이 항상 공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경제

레이에스에게 포획당한 브라질 경찰은 미국 경찰인 홉스를 방해하면서 직접 도미닉 일당 검거에 나선다. 레이에스는 경찰뿐 아니라 유력 정치인들도 상당수 돈으로 포획했다. 그 결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을 하려면 레이에스의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가 된다. 이런 사회라면 시장경제가 제대로 꽃피기도 어렵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