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민심 화두는 ‘증세·전세·취업’

연말정산으로 촉발된 세금정책과 전세난·취업 한파가 뜨거운 이슈

18일부터 시작되는 5일간의 긴 설 연휴에는 민심도 움직인다. 대형 선거가 없는 올해 설 민심의 화두는 경제다. 정부는 “지난해 취업자 수가 53만명 증가해 2002년 이후 최대였고, 주택거래량도 2006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며 지난해 경제운용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민심의 평가도 과연 그럴까. 경제로 촉발된 민심은 자칫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 설 민심을 좌우할 3대 경제이슈를 짚어본다.

◆증세를 할 것이냐, 복지를 줄일 것이냐
올해 연말정산에서 추가로 세금을 토해내야 할 납세자는 이달에는 추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나눠서 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2월에 일시불로 냈다. 예를 들어 이번 연말정산에서 6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예전에는 2월 월급에서 일시불로 빠져나갔지만, 올해는 3~5월에 각각 20만원씩 월급봉투에서 빠져나간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2월 납부를 피한 것은 설 연휴 기간 민심을 우려해서다. 추가 세금 납부로 헐거워진 월급봉투를 갖고 고향에서 가족들을 만나는 직장인들이 정부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조삼모사’로 급한 소나기부터 피하자는 심산이다. 정부가 이 같은 궁여지책을 마련할 정도로 연말정산으로 촉발된 세금 반발은 정부와 여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증세와 복지를 놓고 당청간 엇박자도 연출되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선되면서 “세금 부담과 복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히자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논의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면서 반박했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 “나는 한 번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던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내가 (대통령 발언을) 잘못 전달한 것 같다”며 급히 말을 주워담았지만 야당은 발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법인세 인상도 여론이 팽팽하다. 지난해 세수를 살펴보니 소득세는 53조원이 걷힌 반면 법인세는 42조원 걷히는 데 그쳤다. 법인세는 지난해 목표치보다 3조3000억원이 덜 걷힌 반면 근로소득세는 5000억원이 더 걷혔다. 그 전 해에 걷힌 세수와 비교해봐도 법인세는 2.7%가 적게 걷혔지만 근로소득세는 무려 15.5%나 늘어났다. 기획재정부는 “연말정산 조정과 고소득자 세율 인상으로 연봉 5500만원 이상에서 늘어난 세금”이라고 밝혔지만, 연봉 5500만원 이하 중산·서민층도 개별적으로는 상당한 세부담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알 봉투만 쥐어짜느냐’는 불만이 확산되면 법인세 인상 여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전세, 어디까지 오를까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올해 부동산 얘기는 빠지기 어려워 보인다. 당장 설 끝나고 불어닥칠 전세난이 걱정이다. 한국은 홀수 해에 전세가격이 치솟는 경향이 있다. 서울과 인근 경기지역에는 전세가격이 2년 만에 1억~2억원이 오른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웬만한 중산층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방도 만만찮다. 대구 등 일부 광역시는 서울 못지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가율)이 70.0%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3억원짜리 집이면 평균 전세가격이 2억1000만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지역별로는 지난해 4분기 수도권의 전세가격이 1년 전보다 3.7% 올라 비수도권(2.4%)보다 더 가팔랐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올 1분기에도 지속될 것 같다는 점이다. 수도권의 올해 1분기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000년 이후 분기 평균(3만7607가구)을 크게 밑도는 1만9549가구에 그친다. 특히 서울은 2199가구만의 물량이 있어 평균치(1만1504가구)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 ‘전세대란’이 우려되는 이유다.

전세가율이 70%까지 치솟는 것은 집 사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지금 잠시 반짝하더라도 결국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있다. 또 저금리여서 이자가 얼마 안 되니 집주인은 전세금 자체를 올리고 싶어한다. 지난해 4분기 전국의 실질 주택 매매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3% 오르는 데 그쳤다. 전세 상승률의 절반이다.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 중에는 매매로 돌아서는 모습도 감지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주택거래량이 7만9320건으로 지난해 1월과 비교해 34%나 늘어났다. 통계가 작성된 2006년 이후 1월 거래량으로는 최대치다. 주택경기가 좋았던 2007년 1월(7만8798건)보다도 많다. 하지만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거래량이 13%가량 줄어들었다. 특이한 것은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거래가 29%,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 거래가 25% 늘었다는 사실이다. 전세난에 쫓긴 세입자들이 기존 전세금으로 집을 구하려다 보니 아파트보다 싼 주택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추가적으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살 여력은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서울 송파구의 한 모델하우스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 연합뉴스

◆취직 안 되는 우리 아이, 한숨만 높아진다
자녀의 취직 여부는 가족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청년실업률(15~29세)은 9.2%에 달했다. 1년 전 같은 달(8.7%)보다 0.5%포인트나 뛰었다. 2년 전인 2013년 1월(7.5%)과 비교해 보면 격차는 더 크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은 “경기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니 그 기대감으로 구직을 하러 청년들이 많이 나왔고,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에 나서면서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통계상 ‘실업자’가 되려면 직접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은 특별히 고용지표가 악화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경기가 개선된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거나 갓 졸업한 청년들이 느끼는 취업 한파는 다르다. 설 연휴에 아예 고향을 가지 않겠다는 청년들도 많다. 친척들의 잔소리도 피하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설문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37.8%가 설 연휴에 고향에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그냥 푹 쉬고 싶어서’(23.6%)가 1위였고, 2위가 ‘결혼, 취업 등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였다.

문제는 기업들이 경기전망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올 신규채용을 줄일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올해 신입사원 채용계획을 확정한 18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31%의 기업이 채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채용을 늘리겠다고 답한 곳은 18%에 불과했다. 채용규모도 지난해보다 2.3%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취직 못한 자녀가 있는 가정의 한숨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