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노믹스’에 대한 이한구의 따끔한 충고

“한국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답습”…

부채증가에 의한 경기부양 위험성 지적

“일본식 장기불황, 제대로 분석했나? 한국 경제는 일본식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고 있다.”

10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 최경환 경제팀에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겠다”며 각종 확장정책을 퍼부었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는 여당 동료의원의 이 같은 지적이 뼈아파 보였다.

이 의원과 최 부총리는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이다. 이 의원은 행시 7회 출신으로 재무부 이재과장을 거쳤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캔자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고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을 지냈다. 2000년 16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들어왔고 현재 4선이다. 2004년에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으로 당시 노무현 정부의 부채와 부동산 대책 등을 공격하는 선봉에 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었고 현 새누리당 경제혁신 특별위원장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당 공무원연금개혁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 부총리 경제정책 문제점 따져물어
최 부총리는 행시 22회로 예산청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을 지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2002년 이회창 대통령후보 경제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17대 국회의원이 됐다. 현재 3선이다. 한나라당 정조위원회에 오래 있었고 국회 기재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 간사도 했다. 두 사람 다 대표적인 ‘친박’의원이다. 다만 이 의원은 당내 경제브레인으로 주로 활동한 반면 최 부총리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감투가 많다.

이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53페이지에 달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에는 최 부총리 취임 이후 펼친 경제정책의 문제점이 조목조목 담겨 있었다. “최 부총리의 정책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고 있다”는 내용은 이 보도자료의 핵심 메시지였다. 이 의원은 국감장에서는 직접 말하지 않았다. 그저 “제가 정책방향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은 보도자료에 나와 있으니 잘 읽어보시라”며 훈수를 뒀을 뿐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한 수 가르쳐줄 테니 잘 배워라’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이 의원은 최 부총리보다 10살 많다. 행시 기수로도 한참 차이가 난다.

이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을 “정부, 가계, 기업의 ‘부채 증가에 의한 성장정책’”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막대한 빚을 내서라도 가계, 기업의 가용재원을 총동원해서 자산시장 활성화와 인위적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보고서는 이어 “고통스러워도 미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요동치는 국제금융시장 위기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정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며 “경제활성화 법안과 관련해서 야당의 협조를 요청하고 구조개혁과 관련해서 기득권 세력의 양보를 얻어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야당과 계속 대립하면서 주요 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에 있는 최 부총리로서는 아픈 부분이었다.

‘잃어버린 20년’이란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온 20년간의 장기침체를 말한다. 그 불황은 1991년 3월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에 기록했던 주가와 부동산 가격 등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기간 막대한 재정을 퍼부으면서 재정상태만 급속도로 악화됐을 뿐이다.

‘잃어버린 20년’은 2000년 이후 활력을 잃기 시작하던 한국 경제에도 오랜 화두였다. 최경환 부총리의 생각도 같았다. 그는 임명과 함께 “이대로 가면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른다”며 “지금이 경제를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진단은 달랐다. 최 부총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해 너무 오래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 컸다고 봤다. 즉 심리적 위축이 경기회복을 방해했다는 의미다.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가계는 소비를 하지 않으니 소비가 늘 수 없다는 논리다. 최 부총리는 이런 현상을 ‘이력효과’라고 표현했다. 이력효과란 낮은 경제성장이 몇 년 계속되면 경제주체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결과 실제성장률도 떨어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최 부총리는 10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위싱턴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면 결국은 긴축경영이 된다”며 “그게 바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아니냐”고 말했다.

“인위적 부양정책은 오래 못 간다”
최 부총리가 인위적 경기부양에 매달린 것은 이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과감하게 돈을 풀어 경기 불씨를 되살려 경제주체들이 자신감 있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체감경기를 살리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부동산이었다. 각종 대출규제를 완화해서라도 부동산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취임과 동시에 제시한 첫 번째 처방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였다. 정부의 확장재정도 같은 맥락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출범 8일 뒤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 발표를 통해 41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내년도 예산안도 ‘최대한 확장편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업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른바 가계소득 증대 3종세트를 냈다. 기업소득환류세제, 근로소득증대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는 이런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한국은행은 두 차례 금리를 내리면서 최 부총리에게 화답했다.

이들 정책은 공통점이 있다. 가계와 정부와 기업에서 돈을 끌어내 경기 확장에 투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한구 의원은 이 부분을 짚었다. 이 의원은 “제2기 경제팀은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상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일본의 잘못된 정책마저 답습하고 있다”며 “일본식 장기불황의 핵심은 엔고 상황에서 경제체질을 개선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정공법을 택하는 대신 재정을 확대하고 금리를 인하해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 하다 위기를 자초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한국 경제의 빚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주요국은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를 줄이고 있지만 한국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가계부채는 1200조원을 넘어섰다. 매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큰 폭으로 손질하면서 박근혜 정부 내 균형재정은 거의 무너졌다. 2014년 검토해본 2015년 국가부채 전망치는 2012년 당시 검토했을 때보다 88조9000억원이 더 늘어났다. 이 의원은 “2년 만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지표를 어떻게 믿느냐”며 “이제는 정부가 재정을 잘 관리하겠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반박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예측을 함에 있어 경제구조 변화를 제대로 반영 못한 게 있다”면서도 기본적인 해법에는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 마구 돈을 퍼부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쓸 데 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부총리가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 결과는 시차를 생각할 때 내년 상반기는 돼야 성적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한구 의원의 주장처럼 한국 경제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지, 최 부총리의 반박처럼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인지는 그때 판가름난다. 한국 경제의 운명도 그 결과에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