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한라 지주회사체제, 시장반응 냉담

만도가 보유한 현금 빠져 나갈까 우려 때문에 증시 호응 못 얻어

한라그룹 계열사인 자동차부품회사 만도가 4월 7일 이사회를 열고 투자사업 부문과 제조사업 부문으로 기업을 분할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만도의 제조사업 부문은 국내외 공장을 중심으로 자동차부품 생산 및 연구개발(R&D)에 주력하게 된다. 투자사업 부문인 가칭 한라홀딩스는 향후 지주회사로서 자회사 투자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쉽게 말해 한라그룹이 만도를 쪼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은 지배구조 개선으로 받아들여져 시장에서 호응을 얻게 된다. 하지만 만도 이사회 의결 하루 뒤인 4월 8일 만도 주가는 하한가까지 떨어진 11만5000원을 기록했다. 다음날인 9일 만도 주가는 11만9500원으로 3.9% 반등했지만, 10일에는 다시 11만9000원으로 떨어졌다. 왜 한라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시장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지주회사 전환은 한라 지원 목적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주회사 전환의 주목적이 한라(옛 한라건설)에 대한 지원을 쉽게 하는 데 있고, 그 결과 만도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한라 지원 등에 쓰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만도 브라질 공장. / 만도 제공

만도는 지난해 4월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통해 자금난에 빠진 한라를 지원하면서 순환출자를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만도 지분 13.41%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만도 주주총회에서 신사현 대표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또 경제개혁연대는 정몽원 만도 회장 등을 신용공여 금지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현재 공정위는 만도의 행위가 부당지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라는 지난해 만도로부터 운영자금 3435억원을 우회적으로 지원받았지만 4281억원(연결 기준)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한라는 당시 “국내 부동산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대손충당금 설정과 관련 손실의 선반영으로 인한 일회성 비용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라는 올해의 경우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주력사업 부문인 건설업황이 단기간 내에 개선될지는 여전히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다.

한라그룹 본사. / 경향신문

한라 입장에선 보유하고 있는 만도 지분(17.29%)을 처분하는 것이 재무적인 어려움을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한라→만도→마이스터→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에서 맨 꼭대기에 있는 한라의 만도 지분이 시장에 팔리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한라그룹이 이 같은 진퇴양난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이은정 회계사는 4월 9일 발표한 ‘한라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효과 평가’ 보고서에서 “만도가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와 제조회사인 새로운 만도로 쪼개지면서 한라가 보유하고 있는 만도 지분을 한라홀딩스에 합법적으로 매각할 수 있게 돼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라, 만도 지분 매각하면 자금 확보 가능
한라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게 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한라홀딩스) 및 그 자회사들(만도, 마이스터 등)은 상호간의 지분관계를 공정거래법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 현재 한라가 보유하고 있는 만도 지분은 매각을 해야 한다. 한라는 만도가 쪼개지면 한라홀딩스와 새로운 만도의 지분을 모두 갖게 된다. 공정거래법은 자회사가 지주회사의 지분 및 또 다른 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 처분이 불가피한 것이다. 반면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는 새로운 만도 지분 20%를 소유해야 한다. 정리하면 한라가 보유한 새로운 만도 지분을 한라홀딩스가 현금으로 매입하면 한라에 대한 합법적인 자금지원이 되는 셈이다.

만도 분할계획을 보면 한라홀딩스에 상당한 규모의 현금성 자산이 분배되고 상대적으로 부채는 적게 배분된다. 이 때문에 한라홀딩스로서는 새로운 만도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이 충분한 편이다. 이은정 회계사는 “한라는 이번 지주회사 전환으로 보유하고 있는 만도 지분을 한라홀딩스 등에 매각함으로써 현재 기준으로 4200억원의 현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만도가 보유하고 있던 여유 현금 중 상당수가 한라홀딩스에 돌아가고 이 자금이 한라 지원에 쓰이는 것이므로 만도 주주로선 매우 억울한 상황이다. 한라그룹 내 캐시카우(수익 창출원)인 만도가 이번에도 ‘희생’을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라그룹이 간신히 되찾은 캐시카우 만도에 지주회사 전환의 부담을 지우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 한라그룹에서 떨어져나온 만도는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렸다가 2008년 다시 한라그룹에 편입됐다.

이은정 회계사는 “이번 지주회사 전환으로 새로운 만도가 지분 매입을 통해 한라를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며 “하지만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는 지금까지 만도가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이전받아 한라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한라를 지원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더구나 지주회사의 주된 수입원은 자회사 상장, 배당, 각종 수수료 등인데 향후 한라홀딩스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우량 자회사인 만도 등으로부터 배당은 물론 브랜드 사용료 등의 명목으로 수익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지환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