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세일 앤드 리스백’ 넘어야 할 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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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부·은행이 대출 많은 집 매입 후 임대하는 하우스푸어 대책

세일 앤드 리스백(sale and lease back)은 정부나 은행이 하우스푸어의 집을 사들이고 일정 기간 임차해 살게 한 뒤 다시 매입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해 집을 경매로 넘길 위기에 처한 대출자에게 숨통을 터줘 가계부채 연착륙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하우스푸어를 108만 가구 정도로 추정했다.

9월 3일 서울 잠실지역 한 상가의 부동산중개업소들이 찾는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정부 재정 투입하면 도덕적 해이 우려
세일 앤드 리스백에 대한 논의는 정치권과 금융권에서 투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하우스푸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검토 중이고,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지주가 9월 중 독자적인 도입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방안을 짜고 있다.

새누리당이 고려하고 있는 방식은 두 가지다. 우선 각 금융회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배드뱅크’를 세워 이 배드뱅크가 하우스푸어 소유 주택이나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사들이는 방안이 있다. 다음으로 캠코 등 공적기관이 부실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사들이는 방안도 있다.

우리금융은 정부 재정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세일 앤드 리스백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은행이 직접 하우스푸어의 집을 사들이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우리금융 김홍달 전무는 “특수목적법인(SPC) 등을 통해 부동산을 매매하면 취득·등록세 등 세금이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세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금융이 선택한 방안은 ‘처분신탁’이다. 처분신탁은 집주인이 물건의 처분 시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상거래나 법률적인 문제, 적정한 가격 산정 등의 어려움을 대신 맡아서 처리해주는 서비스를 상품화한 것이다. 집주인이 완전히 소유권을 넘긴다기보다 관리처분권만 넘기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처분신탁 방식을 하우스푸어에 대입해보면 어떻게 될까. 거칠게 정리하면 1억원에 매입한 시가 8000만원짜리 집에 5000만원 대출이 끼어 있는 ㄱ씨가 있다고 치자. 그는 8000만원에 집을 팔아 대출금을 갚고 남은 돈으로 월세를 살고 싶지만 집이 팔리지 않아 대출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연체가 길어지면 은행은 대출해줄 때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넘겨 ㄱ씨에게 빌려준 5000만원을 회수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세일 앤드 리스백 제도가 있다면 우리은행이 설립한 부동산신탁회사가 8000만원에 집을 사고 ㄱ씨는 월세를 내며 살던 집에서 계속 지낼 수 있다. ㄱ씨가 은행에서 빌린 돈 5000만원을 제외한 3000만원은 월세 보증금 명목으로 신탁계정에 남겨둔다.

김 전무는 “집주인이 처분신탁을 하면 높은 연체이자가 대출이자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고 은행 입장에선 대출채권이 신탁채권으로 전환된다”며 “은행과 하우스푸어가 ‘윈·윈’하는 구조이지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은행이 집 있는 사람에게 퍼주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소득층의 경우 서민금융 등 별도의 트랙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하우스푸어는 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과 우리금융 방안의 가장 큰 차이는 정부 재정의 투입 여부다. 금융당국은 정부 재정으로 하우스푸어의 집을 사들이는 것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9월 4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세일 앤드 리스백에 대해 “(새누리당 외에) 일부 은행에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정부의 역할은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짜는 것인 만큼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농협경제연구소 임일섭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하우스푸어 문제가 시스템 위기로 확대될 상황이라고까지 볼 순 없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나서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정을 쓰면서 미리 개입하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임 실장은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민간 차원에서 세일 앤드 리스백을 도입할 경우 얼어붙은 주택시장의 정서를 안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뿐 아니라 집 없는 서민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또 하나의 쟁점이다. 금융연구원 윤창현 원장은 “세일 앤드 리스백이 나름의 효과는 있겠지만 정부 재정이 들어갈 경우 최소한 집 없는 이들로부터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하우스푸어 가운데 지원 대상의 커트라인을 어느 수준에서 정할지, ‘하우스리스 푸어’와의 형평성 문제를 어떻게 풀지 등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집 없는 서민들과의 형평성도 문제
정부나 은행이 집을 사들일 때 가격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정할지도 쉽지 않은 문제다. 너무 낮은 가격이라면 하우스푸어가 세일 앤드 리스백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규선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 7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세일 앤드 리스백은 매매가격 결정과 막대한 재원 조달, 매수 범위, 세금문제 등 합의를 도출해야 할 전제조건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세일 앤드 리스백은 금융회사가 시행하기에는 전제조건이 많아 무리”라며 “시행되더라도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세일 앤드 리스백은 자칫 은행이 상대적으로 상황이 덜 심각한 하우스푸어로부터 돈을 먼저 받고 빠지는 양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하우스푸어의 집에 2·3순위 담보가 설정돼 있으면 집을 파는 게 쉽지 않아 세일 앤드 리스백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진짜 심각한 하우스푸어의 문제는 건드리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결국 이 문제는 손실을 어떻게 분담하느냐인데 정부가 재정으로 집을 사들인 다음 금융회사에 손실을 분담시키면 구조조정이 되겠지만 정권 말기에 이런 방식이 추진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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