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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는 애플TV의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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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삼성도 ‘스마트TV’ 일제히 공개

[특집]아이패드는 애플TV의 ‘징검다리’?

아이패드 다음으로 스티브 잡스는 무엇을 내놓을까.
9월 1일(현지시간)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대에 선 스티브 잡스는 우선 애플의 운영체제, iOS에 바탕한 기기가 1억2000개나 전세계적으로 팔렸다는 수치로부터 키노트를 시작했다. 하루에 팔리는 기기는 23만대다. 게임센터와 아이팟 신제품에 대한 소개에 이어 애플이 준비 중인 음악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핑(PING)’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한 가지 더’ 소개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 가지 더’(one more thing)의 한 개(thing)에는 삭제표시가 붙었다. 대신 취미 내지는 호사를 의미하는 ‘hobby’라는 문구가 나왔다. 그냥 “애플이 취미로 내놓은 제품” 정도의 가벼운 의미로 들으라는 의도로 보였다. 그리고 그 제품은 ‘애플TV’였다.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으로 공개한 ‘애플TV’의 의미는 남다르다. 많은 IT전문가들은 아이팟으로부터 시작한 컴퓨터제조업체 애플의 ‘외도’의 최종 종착지를 ‘애플TV’로 봤다.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만들 때부터 스티브 잡스의 목표는 “전기플러그를 꼽으면 TV가 나오는 것처럼 쉽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지난 세기가 낳은 이 엔터테인먼트의 총화, TV와 컴퓨터가 최종 결합한 상품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지향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이번에 내놓은 애플TV는 정확히 말해 브라운관 또는 패널이 달린 완성 가전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TV셋톱박스에 가깝다. iOS 4.2에 있는 ‘에어플레이’를 사용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되는 것이 새로운 특징이다. 사실 애플TV는 이번에 처음으로 나온 제품이 아니다. 종전 299달러에 판매되던 애플TV는 혁신적인 기능을 가진 기기로 대체하면서도 가격은 99달러로 대폭 낮췄다. 스티브 잡스의 신제품은 이번에도 성공할까.

삼성도 독일박람회에서 스마트TV 선 봬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으로 대표되는 태블릿PC는 또한 OS 진영의 싸움이기도 하다. 흔히 폐쇄형 전략을 쓰고 있는 애플의 iOS와 개방형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 간의 전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삼성의 갤럭시S와 갤럭시탭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동시에 대립전선은 아이튠즈를 기반으로 하는 애플의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 마켓의 싸움이다. OS 진영 간의 싸움은 해당 운영체제에 기반한 스마트TV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바로 애플TV와 구글TV의 싸움이다. 이를 테면 구글이 최근 내놓은 음성검색서비스 ‘구글보이스’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구글TV를 염두에 둔 리모컨 대체를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라는 것이다.

실제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 다음날,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의 가전제품 박람회 ‘IFA2010’에서는 소니가 내놓은 구글TV가 발표되었다. 삼성은 갤럭시탭 이외에도 ‘스마트TV’를 내놓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소니나 삼성이 내놓은 제품이 원래 우리가 상상하던 스마트TV의 모습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드디어 한계에 부딪힌 것일까.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이번에 나온 애플TV가 전적으로 스트리밍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향후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콘텐츠를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이 구글이나 애플의 우선적 목표”라고 풀이한다. 삼성이나 소니의 하드웨어 제조능력은 여기에 복속된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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