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기지개 켠 안철수의 요즘 생각은?

7년 만에 신간 내고 ‘존재감’ 알려… 책 곳곳에 상처와 회한 드러내

“매번 출발선에 서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달리는 도중에 어떤 일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슴 설레며 두려운 마음을 안고 오늘도 나는 출발선에 선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신간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의 마지막 문장이다. 7년 만에 낸 책이다. 그가 마침내 돌아오는 걸까.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이 9월 29일(현지시간) 베를린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안철수 전 의원 지지모임 인터넷 카페 ‘미래광장’ 제공

안 전 위원장의 정계 복귀 시점이 언제일까 하는 문제는 그동안 정치권 안팎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안식년이 지난 8월 말 끝났기 때문에 9월에는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왔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침묵이 계속됐다.

지난 9월 30일, 안 전 위원장은 트위터를 통해 근황을 전했다. “세계 6대 마라톤 중 하나인 베를린 마라톤의 완주메달”이라며 사진도 올렸다. 지난해 7월 중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겠다”고 글을 쓴 뒤 1년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갑작스런 활동 재개다. 그리고 이날 신간에 대한 글도 올렸다. 매체들은 반짝 관심을 보였다. 때마침 갤럽의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3위를 차지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10월 6일, 그는 4개의 트위터 글을 한꺼번에 올렸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대로’ 10월 1일부터는 독일을 떠나 미국 스탠퍼드 법대로 옮겨 방문학자로서 연구를 이어간다고 했다. 책에서 언급한 미래교육 프로젝트 ‘러닝5.0’을 마무리하며 미국으로 옮겨가 미세먼지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출간된 책은 ‘독일을 떠나면서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의미로 썼다’고도 했다. 당분간 ‘귀국은 없다’는 메시지다.

미국에서 진행한다는 미세먼지 프로젝트는 엑스프라이스(XPRIZE) 재단의 클린에어 프로젝트다. 이번에 낸 신간에도 소개되어 있다. 지난 1년 독일에서는 무슨 일을 했을까. 책에서 소개한 마라톤에 도전한 소식은 그의 팬카페 등을 통해 종종 흘러나왔다. 정치권에서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방문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혁신의 현장과 한국 사회의 미래 먹거리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정치 복귀를 염두에 두고 미래의 어젠다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독일 1년 체류 뒤 미국에서 할 일은

이번에 낸 책을 보면 그가 막스플랑크 연구소 세미나에서 했다는 ‘한국에서 네 가지 다른 형태의 조직 설립으로부터 배운 교훈’ 발표가 눈에 띈다. 세미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책 후반부에 언급되어 있다.

“세미나 요청을 받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복기해봤다. (중략)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벤처기업 CEO, 대학교수, 그리고 정치까지 총 다섯 가지의 직업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중략) 그런데 이 다섯 가지 분야가 단순히 내 개인적인 직업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의료와 건강, IT기술, 경제와 경영, 교육, 정치다.”

그는 그 분야들을 묶는 공통점이자 거기에 매달려온 자신의 정체성이 뭔지 고민했는데, 그 답은 ‘문제해결사(problem solver)’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적고 있다. 결국 여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치였고, 사람들의 요구와 사회문제 해결을 생각하며 정치인이라는 직업까지 넘어갔다고 적고 있다.(269~270쪽)

정치와 선거를 달리기 경주(레이스)에 비유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안 전 위원장은 실제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특히 지난 6년간의 정치활동을 곱씹어 복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년 중 가장 중요한 사건,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에 발간한 신간에서 그는 정치영역으로 넘어가 자신이 다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상처와 회한을 군데군데 적고 있다.

“독일에서 보낸 1년간은 나에게는 달리기의 본질과 같은 ‘견뎌내는 삶’이었다. 정치를 했던 만 6년 후에 맞는 연구년과도 같은 시간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중략) 나의 상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사실 왜곡이나 드루킹의 댓글 공격으로 인한 여론조작도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내가 공동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실천했던 희생·헌신·책임 등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는 것이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상황에 큰 상처를 받았다.”(254~255쪽)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이 7년 만에 내놓은 신간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 21세기북스

“‘안철수의 시간’은 이미 끝났다”

결국 지난 대선은 드루킹 일당 등의 가짜뉴스로 자신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가로막혀 패배한 것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8년 치러진 지방선거. 그는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지만 3위로 낙선했다. “내 선거는 승산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믿고 따라온 지방의원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시키기 위해서 지방선거에 나왔고,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패배를 예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와 정치일선에 나선다면 선택받을 수 있을까.

안철수가 보여줄 앞으로의 정치행보와 관련해 유승민 의원과 함께 앞으로 만들어질 ‘제3지대’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더 이상 딛고 설 발판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때 안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함께했던 인사들의 평가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안철수의 시간’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강윤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이 평론가가 말하는 ‘안철수의 시간’은 4년 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중부와 수도권에서 의외로 선전할 때까지였다. “그가 외유를 나간 후 1년 만에 뭐가 바뀌리라 보지 않는다. 그가 기본기나 개인 역량을 축적했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치는 이미 멀리 와버렸다.”

이 평론가는 특히 변화의 주인공이 자유한국당이라고 덧붙였다. 진보와 보수의 양대 축 중 보수의 기둥이 되어야 할 자유한국당이 거의 끝을 보여주면서 무너져버린 것이 현재의 형국이라는 것이다. “특히 ‘조국 국면’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진보와 보수의 구분법은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더 이상 전국단위에서 대규모로 묶어 세울 기제가 되지 못한다. 의제는 세대 간 문제로 넘어가 버렸다.”

과연 그럴까.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2012년이 아닌 조국 수호와 퇴진으로 민심이 양극화된 현 시점이 그의 정치활동의 시작점이었다면 어땠을까.

10월 6일, ‘미국으로 가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는 트위터 글을 남긴 뒤 안 위원장은 다시 침묵에 들어갔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7월 올린 ‘성찰과 배움의 시간을 갖겠다’는 데서 머물러 있다. 정치 복귀 시점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내년 총선 전 귀국 후 교두보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하지만 그 역시 알 수 없다. 항상 그렇듯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