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정국’

손잡은 민주당과 야3당 속마음 제각각… 한국당은 협상용 엄포로 여겨

‘여소야대가 아니라 여소야야 정국.’

3월 국회의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 논란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가 표현한 ‘패스트트랙 정국’의 현 구도이다. ‘민주당 대 야4당’이 아니라 ‘자유한국당 대 여+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구도를 말한다. 선거제 개혁법안을 둘러싼 패스트트랙 지정 추진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한국당 패싱’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3월 11일 국회 본청 귀빈식당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문 의장,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당의 지방일정으로 불참했다. / 연합뉴스

여당인 민주당은 전체 298석 중 128명(42.95%)의 국회의원(문희상 국회의장 제외)이 있다. 과반 기준인 149석에 21석이 모자라는 ‘여소’다. 무소속이지만 친여 성향의 의원인 손혜원·이용호·손금주 의원까지 포함해도 과반에는 한참 못 미친다. 여당인 민주당은 선거제 개혁안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결국 민주당안을 내세워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손을 잡았다. 선거제 개혁안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기세다. 정개특위는 일반 상임위처럼 입법권을 갖고 있다. 정개특위에는 18명의 위원이 있다. 민주당이 8명, 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 2명, 비교섭단체 2명이다.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위원장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서는 재적의원 5분의 3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한국당을 제외한 12명이 동의하면 선거법은 패스트트랙 지정이 가능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민주당은 야3당을 제외하고 한국당과 손을 잡고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며 “불과 3개월 만에 이제는 야3당과 손을 잡고 한국당을 제외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통상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는 야당이 연합해 여당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려 했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제1야당인 한국당이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근의 ‘패스트트랙 정국’을 잘 표현해준다.

민주당은 개혁입법 통과의 고리로

민주당과 야3당이 패스트트랙을 염두에 두고 협상을 하지만 셈법은 제각각 다르다. 야3당은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선거제 개혁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내년 총선에서 소수정당이 의석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완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가까운 법안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한국당이 바른미래당을 설득해야만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의석이 걸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선거제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서 개혁법안 통과의 고리로 삼을 생각이다. 그동안 한국당 때문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던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한 것이다. 3월 7일 의원총회 후 밝힌 패스트트랙 지정 계획 법안은 당초 10가지였다. 선거제 개혁안 외에 공직자비리수사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등 사법개혁안,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국민투표법, 국가정보원법, 행정심판법, 권익위원회를 국가청렴위원회로 바꾸는 부정 방지 및 권익위 설치법, 국회법 등이다.

민주당의 설명에 따르면 국회법 개정에는 패스트트랙에 소요되는 날짜를 줄이는 안이 포함돼 있었다. 패스트트랙은 말이 패스트트랙이지, 최장 330일이 지나야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기 때문에 ‘슬로트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기간을 줄이는 법이라면 패스트트랙을 진짜 패스트트랙으로 만드는 법안인 셈이다.

하지만 야3당과 협상에 들어가면서 ‘패스트트랙 공세’는 곧바로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야3당이 정작 관심을 갖고 있는 선거제 개혁 이외의 다른 법은 숫자를 최소화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키를 가진 바른미래당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지난해 12월 국회 교육위에서 지정된 ‘유치원 3법’ 패스트트랙에도 바른미래당의 동의가 결정적이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낸 원안을 임재훈 바른미래당의 수정안으로 바꾸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유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가운데)가 3월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바른미래당 유의동 원내수석부대표. / 연합뉴스

키를 쥔 바른미래당 반발 만만찮아

결국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에 걸고 싶었던 10개의 법안 중 3월 13일까지 남은 것은 선거제 개혁안 외에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뿐이었다. 세 법안은 공교롭게도 한국당의 반대 때문에 민주당이 국회 통과에 애를 먹은 법안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 측은 “패스트트랙을 해야만 하는 현재 국회 상황을 봐야 한다”면서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주고받는 협상이 아니라 받는 협상만 원하고 있고, 모든 법안이 통과하는 길목인 국회 법사위에는 판사 출신의 한국당 소속 법사위원장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이 ‘모 아니면 도’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협상이 거의 없는 국회의 ‘강(强) 대 강’ 대립상태를 그대로 나타내준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유치원 3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에서 보듯이 국민들은 패스트트랙에 대해 한국당이 딴죽만 건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서 “한국당이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에 지정되기 전에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한국당이 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당에서는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해 여전히 여권이 꺼낸 ‘협상용 카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당의 한 재선의원은 “엄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까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룰은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다른 한 중진의원 역시 “어떻게 제1야당을 빼놓고 선거제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하느냐”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제1야당을 빼놓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룰을 마무리짓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국당이 생각하고 있어 민주당도 쉽지 않은 국면”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참사법과 유치원 3법에 이어 세 번째로 패스트트랙 지정을 앞두고 있는 선거제 개혁안은 아직도 많은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되더라도 한국당과 협상의 여지는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최장 기간인 330일 동안 얼마든지 협상을 해 수정안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앞두고 있는 공수처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같은 개혁법안도 마찬가지다. 선거제 개혁안처럼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할 때까지 수많은 협상을 거쳐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