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과거 남북정상회담보다 진일보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이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차이점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은 세 번째 대통령이다. 올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 의장대의 사열을 받게 되면서 북녘 땅을 밟은 역대 대통령은 모두 북한으로부터 국가원수로서의 공식 최고예우를 받은 셈이 됐다. 그런데 이번 3차 정상회담에서는 이러한 대접을 넘어선 성과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와 함께 9월 18일 평양국제공항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와 함께 9월 18일 평양국제공항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 대통령의 연설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진행된 과거 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달라진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지점이다. 여기에는 남측 지도자를 남북관계의 대상을 넘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 이어지는 창구로 본 복합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대북문제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 같은 예상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이 합의문에 담긴 점으로 볼 때 우리 정부를 통해 미국에 전하는 북한의 메시지에는 더 진전된 내용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이 주창하고 있는 ‘중재자론’에 대해 북한도 어느 정도 성과를 인정하고 기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2000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당시에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2001년 초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로 교체되며 대북정책 방향을 급선회한 결과 김대중 정부가 맡을 수 있는 북·미 간 관계개선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3차 정상회담 이후 열린 유엔총회에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사를 전달함에 따라 남한 정부는 북·미 양국 모두로부터 관계를 조율할 수 있다는 신뢰를 받은 셈이다.

북한도 ‘중재자론’ 성과 인정

한편 과거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처럼 문재인 정부도 정권 출범 초기 북한과의 관계가 상당히 경색돼 있었다는 점은 공통적인 면으로 거론된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이후인 1999년 9월 당시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지금의 남북관계는 최악”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로 정상회담 성사를 쉽사리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노무현 정부 역시 2002년 6월 발발한 연평해전 사태로 시작된 남북관계의 냉각기가 지속되던 중에 정권 출범을 맞았다. 남북관계의 위기를 임기 중 정상회담으로 돌파해 개선시킨 성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관계 악화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 시기 동안의 냉각기와 북·미 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 속에서 정권이 출범한 현 정부 역시 극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맞은 점에서는 과거와 비슷하게 냉탕에서 온탕으로 이동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의 결과가 비핵화를 주제로 하는 북·미관계의 조율 못지않게 한반도의 평화를 진척시킨 남북관계 당사자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평화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도 많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보면 비핵화보다는 사실 전쟁이 없는 한반도에서 평화가 일상화되는 군사적인 긴장완화가 핵심이고, 그래서 부속합의서까지 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
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