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곁을 떠난 사람, 남은 사람

안 대표 ‘뜨거운 맹세’ 식 패거리 혐오… “정치적 변환점마다 스태프 물갈이” 증언도

“(바른정당과) 통합을 반대하는 명분을 모르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말이다. 바른정당과 통합을 반대하는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에 결합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작 궁금한 것은 ‘안철수의 생각’이다. 안 대표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통합 스케줄을 진행하는 것일까.

지난해 12월 2일.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미래’로 이름을 바꿔 새로 출범했다. 혹자는 이 조직을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과 같은 정당 부설 조직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라고 소개하지만 엄밀히 말해 국민의당과는 무관한 조직이다. 국민의당 홈페이지 상 조직도에도 ‘미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언론은 이날 출범한 ‘미래’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정책자문그룹으로 소개했다. 안철수 대표는 ‘미래’의 고문을 맡고 있다. 이날 안 대표는 ‘미래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스피치했다. 이 동영상은 ‘미래’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다.

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당무위원회의에서 통합을 반대하는 장정숙 의원(가운데 뒷모습)이 안철수 대표에게 당무위원회 개최 적법성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안철수가 생각하는 통합 ‘명분’은

강연에서 안 대표는 자신에게 “정치는 다섯 번째 직업”이라고 이야기했다. 의사와 컴퓨터 프로그래머, 회사 경영자와 같은 그의 전 직업과 정치의 공통점은 우리 사회 문제 해결에 집중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문제라는 것을 규정해야 한다. 문제에 대한 정의만 제대로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법은 거기서 나온다.”

기득권 양당체제와 진영논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안 대표의 논리는 근거가 있다.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집권당인 민주당의 전국적인 지지와 얼핏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는 다당제에 대한 선호 역시 일정한 세를 얻고 있는 게 확인된다. “분명히 중간지대에 대한 수요는 있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밭은 있는데, 거기에 작물을 뿌려서 키울 수 있는 역량을 안 대표 또는 통합정당이 가지고 있을까.”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의 말이다. 윤 실장은 안 대표가 제5의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걷고자 나섰을 때 함께 한 초창기 멤버다. “한때 가까이서 본 입장에서 요즘 이야기되는 것처럼 사람을 깔아뭉개거나 무시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MB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2012년 당시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MB 쪽에 있던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것은 일부 맞는 말이지만, 이명박 쪽 사람들이 한나라당 개혁파나 쇄신파와 일부 겹치고 맥이 닿는 것이 사실 아니었나.”

2012년부터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MB 아바타’와 같은 의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안 대표가 ‘셀프디스’ 형태로 언급하면서 오히려 커졌다. 윤 실장은 “요즘 인터넷을 보면 워낙 괴물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그런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쉴드’ 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덧붙였다.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두 권의 책이 남아있다. 하나는 이유미씨가 쓴 <안철수와 함께한 희망의 기록 66일>이라는 책으로, 캠프에 공식 참여한 인사들 대부분의 명단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문준용씨 제보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그 이유미씨다. 다른 한 권은 역시 공평동 캠프 시절 상황실장을 역임한 금태섭 의원이 지난 2015년 펴낸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라는 책이다. 금 의원의 책을 통해 ‘캠프 밖 비선그룹’이 폭로됐다.

안 대표의 최근 통합 행보에도 ‘비선그룹’이 있어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대선국면에서는 어느 후보도 다 마찬가지다. 비선캠프가 없다면 오히려 말이 안 된다. ‘2012년 안철수’에 그런 모습이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벌써 5년이다. 그동안 정치를 통해 온갖 경험을 쌓았다. 지금은 자기 중심이 확고하다고 말할 수 있다.”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2012년 공평동 캠프 시절부터 지금까지 안 대표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힌 홍석빈 우석대 교수는 “안 대표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스탠스에 변함이 없다”며 “스펙트럼이 다른 색안경을 끼고 보면 물체가 달라 보이는 것처럼 그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문제”라고 말한다.

<주간경향>은 2012년부터 안철수 곁에 있다 떠난 많은 사람들을 접촉했다. 대부분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떠난 입장에서 아쉬운 소리를 덧붙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 인사는 안철수의 ‘매몰참’에 대해 그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허영 더불어민주당 춘천지역위원장의 사례를 들었다. “당시 춘천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결정하고 발표까지 했는데도 국민의당 중앙당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그 혼란 결과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된 것 아닌가.” 허 후보는 안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했지만 국민의당 창당 때 따라 나가지 않고 당에 잔류했다. 이 인사는 “지역에서 단일화 합의까지 했는데도 돌려보낸 걸 보면 괘씸죄가 작용하지 않았겠느냐”고 풀이했다.

안 대표의 최측근으로 최근까지 수년간 보좌했던 인사와 뒤늦게 연락이 닿았다. “중요한 정치적 변환점마다 주변 스태프들이 대규모로 물갈이됐다. 그런데 그게 충분한 사전설명이 없었다. ‘어느 날 보니까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가 없더라’는 것이 매번 반복된 것이다.” “왜 안 대표를 떠난 사람들이 ‘시니컬한 반응’을 보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이 인사의 풀이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철수 ‘비선’ 논란의 실상

가까이에서 안철수를 지켜본 이 인사는 흥미로운 증언도 내놓았다. 이른바 안철수 비선 논란을 일으킨 박경철 원장 등과의 관계도 밖으로 알려진 것과 실상은 달랐다는 것이다. “(안 대표가) 화를 낸 적이 있다. 연락 안한 지 오래되었는데 연락한다고 언론에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먼저 화를 내고 헤어지자는 쪽은 박 원장이었다.” 이 인사는 안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진 ‘불신’은 단일화 협상 때까지 거슬러간다고 덧붙였다. “후보직 사퇴 전날인 11월 22일 단독회동에서 안 대표는 당시 문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하면 민주당에 입당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때 문 후보가 한 말은 ‘입당할 생각 마라. 밖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마라’는 것이었는데, 안 대표는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게 너무 억울하고 분했던 것 같다.”

이 인사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안 대표가 국정원 해킹사건 진상위원장을 맡았었다. 당시 당대표가 문 대통령이었는데, 회의 자리에 참석해서도 신문 스크랩한 것만 보면서 위원장에게 눈길도 안 주는 것이었다. 모멸감을 느낀 것 같았다. 회의에서 나와서 얼굴이 벌게져서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쳐다도 안 보고 말이야’라고 화내기도 했다. 그런 관계가 너무 위태로웠다.” 홍영표 의원은 2012년 대선 비망록에서 안 대표의 민주당 입당 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당시 기자의 취재파일을 보면 이 주장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단독회동이었으니 두 사람만이 알 일이다.

안철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조정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안 대표가 정치를 해온 과정을 보면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은 사실이다. DJ나 YS처럼 카리스마로 이끄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목표와 내 목표가 일치하니 같이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의 합리적인 태도를 상대방에게도 요구한다. 합리성을 넘어서 앞으로도 뒤를 봐주겠다든가, ‘뜨거운 맹세’ 식의 패거리를 혐오한다. 그게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는 덕이나 정이 없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의리가 없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 아닐까.” 국민의당 내분사태와 관련해서도 조 교수는 “실제적으로 당을 나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안 대표가 내걸었던 새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윤태곤 실장은 “새정치를 기치로 내걸었다면 그것을 정교하게 만들고 콘텐츠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안 대표가 걸어온 길을 보면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 반정립의 길만 걸었던 것 같다”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면 기회일텐데, 통합의 대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해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안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도식 당대표 당무 비서실장은 “당대표를 할 때는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 연락을 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어려워지고 소원할 때도 있는 것 아니냐”며 “2012년 이후 여러 가지 큰 정치적 일정에서 만남이 있고 헤어짐도 있었지만 대부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고된 이별, ‘국민의당’ 간판은 누가 지킬까

“결국 묻지마 영남 보수행이 아니냐.” 1월 9일,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연기 ‘국민의당지키기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홍보단장의 말이다. “안 대표의 바른정당 통합행보는 국민의당을 영남 보수에 팔아먹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운동본부에 참여하는 의원은 18명 내외다. 이들 중 이상돈·장정숙·박주현 의원 세 명은 비례대표다. 이들을 제외하면 15명이다. ‘독자행동’ 다시 말해 밖으로 나가 창당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안 대표는 경향신문 인터뷰 등에서 “비례대표는 국민의당이라는 당을 보고 찍었기 때문에 출당 등의 조치는 있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운동본부 측은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며, 당대표가 국민의 뜻에 반하는 선택을 하려는 만큼 개개인의 정당 당적 선택권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다.

분열은 깊다. “통합은 더 큰 통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지 분열을 야기하는 통합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당 보좌진협의회장을 역임한 박도은 보좌관이 지난 1월 2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그는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또 지방선거를 이기기 위한 공학적 접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보좌진협의회장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안철수 측에 서 있는 김관영 의원 보좌관이다. 그는 보좌관직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10여년 넘게 ‘정치적 동지’였던 의원과 보좌관이 갈라서는 것이다. 그는 갈등의 근거로 5·18 광주 정신을 대하는 태도, 햇볕정책과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방식, 검찰개혁과 재벌개혁에 대한 인식, 개헌과 선거제도 시각 차이를 주장했다.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북이 이미 당의 노선이나 규약에 핵 보유를 명시한 마당에 10년, 15년 전의 이야기를 그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당내 노선논쟁에서 안 대표 쪽에 서 있는 김근식 경남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안 대표는 햇볕정책의 진화가 필요한데, 그 기초는 튼튼한 안보와 굳건한 한·미동맹에 바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DJ-노무현 정부 때의 관점을 고집하는 현 정부에서는 비핵화 견인에 대한 답이 없다.”
“호남의 시각은 이미 분열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안 대표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에 서 있는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의 말이다. 그는 바른정당과 통합을 반대하는 시각이 ‘친노 좌파적’ 스탠스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도 호남 인사를 적극 기용하는 등 배려하는 것은 사실이다. 친노와 호남이 결합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문재인 정부도 잘 안다. 그런데 정권이 실패하게 되면 그 책임은 호남이 다 뒤집어쓰게 되어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 과거가 아닌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그는 안 대표도 다르지 않았지만 통합을 계기로 보다 중도적인 길을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의 이연기 단장의 진단은 정반대다. 지방선거를 넘어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살아남으려면 남북문제나 사회개혁 문제보다 지금의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 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남에서조차 이명박-박근혜 유산의 청산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 흐름 속에서 연명해보겠자는 그룹과 손 잡을 때인가”라고 덧붙였다. 신철우 정치컨설턴트는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노선의 차이까지 내재되어 있던 차이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결국은 갈라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