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대선 최후의 승부처는 ‘투표의지’

19대 대선이 양강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백중세가 이어진다면 승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결국 어느 후보의 지지층이 실제로 투표장에 많이 가느냐에 따라 최후의 승자가 가려질 전망이다.

한 헬스장 입구에 적힌 글이다. ‘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체육관에 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방금 그걸 해내셨습니다.’ 대선후보들과 각 후보 캠프의 말로 바꾸면 이렇다. ‘선거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지지자를 투표소에 오게 하는 것입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더라도 지지자들이 선거일에 투표소에 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물론 열성 지지자들은 독려 없이도 알아서 투표를 한다. 문제는 갈까말까 망설이는 유권자들, 누구를 찍을까 고민 중인 유권자들이다. 어느 정도는 투표할 생각도 있고, 누구는 거르고 누구는 찍어야 할지 고민도 한 이들을 이불 밖으로 끌어내 투표소로 이끌어야 한다. 더 많이 불러내는 후보가 양강구도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지금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후보(문재인·안철수) 다 지지층을 확대하는 과정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별다른 일이 없다면 선거일까지 한 달간 지지율은 정체된 상태로 있고 지루한 공방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대선 양강구도를 이끌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간의 경쟁이 정체국면으로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두 후보에게 몰린 약 75%의 지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가운데 15% 안팎의 유권자들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고정 지지층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어느 후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10% 안팎의 유권자들이 남는다.

4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헌법개정특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개헌에 대한 의견 발표를 마친 뒤 각자 인사를 나누며 퇴장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아직 지지후보 결정 못한 10%의 유권자

문·안 두 후보가 백중세를 선거 당일까지 이어간다고 보면 결국 박빙의 승부는 투표시간 마지막까지 한 표라도 더 모은 후보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 지점에서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가 중요해진다. 여론조사에서 투표 참여 여부를 물으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4주 전 여론조사에서 ‘꼭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88%에 달했지만 실제 투표율은 그보다 낮은 75.8%였다. 한국갤럽의 4월 2주 정례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문항 응답률은 90%로 나왔다. 이 가운데서도 또 10%는 아직 지지후보가 없거나 유보 중이라고 답했다.(4월 11∼13일 실시 휴대전화 RDD 조사·집전화 RDD 보완/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들 부동층은 각 선거캠프의 첫 번째 공략 대상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동층이 아무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 이들 유권자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 후보 지지층 안에도 말 그대로 떠다니며 움직이는 부동층(浮動層)이 상당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이번 대선의 특징이다. 특히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유권자들 가운데 이전에는 부동층으로 분류되었던 지지자 비율이 높다. 이들이 안 후보를 지지하게 묶어주는 열쇳말 가운데 하나는 ‘반 문재인’ 정서다. 말 그대로 문재인 후보가 싫은데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게 하려면 가장 유력한 경쟁후보인 안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뭉친 집단이다.

반대편 문 후보 쪽 지지자들의 성향은 다르다. 이전부터 문 후보를 지지해온 고정 지지층의 규모가 크다. 이들의 힘이 ‘대세론’이 지나간 뒤에도 문 후보를 여전히 선두 그룹에서 버티게 하고 있다. 고정 지지층이 강하기 때문에 투표 의지도 그만큼 높다. 따라서 문 후보가 마지막에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안 후보 지지자들은 문 후보가 싫어서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 후보의 고정 지지층만큼 투표 의지가 강하지 않고, 결국 여론조사상의 지지율과 다른 선거 결과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선거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서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날 여지도 여전하다. 현재의 5자 구도가 어떻게 재편될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가장 강력한 전선인 문재인 대 반문재인 전선은 선거 막판까지 유지될 공산이 높다. 때문에 유권자의 투표 의지는 다시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문재인 대 반문재인 선거로 가면 지지층의 투표 의지를 최대한 결집시키는 후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특정 후보가 싫어서 투표하겠다는 의지보다는 특정 후보를 지지해서 나오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대체로 강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문 후보가 다소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4월 13일 한국기자협회와 SBS가 공동으로 주최한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원내 5개 정당 대선후보들이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지지층 투표의지가 다소 강해

투표 의지가 대선을 좌우한다는 점은 세대 변수를 감안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전까지의 대선과는 달리 보수진영 후보가 대선에서 힘을 못쓰는 전례 없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최근의 선거로 올수록 세대 대결구도가 점점 더 극명해지는 추세와 대비되는 상황이다. 보수성향이 강한 고령층 유권자들이 이념 성향에 맞는 후보 대신 차선의 당선 가능성 높은 후보를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된 최초의 선거인 셈이다. 현재로서는 이들 보수·고령층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안 후보 지지층으로 흡수됐지만 대선 결과는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미국 대선이나 브렉시트 결정을 이끈 영국 국민투표 결과에서 보듯 여론조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샤이 보수’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샤이 보수’가 부동층으로 선거 판세에 파급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에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샤이 보수’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문·안 두 후보 중 어느 쪽에 유리할지를 따져보면 서로 다른 분석이 맞섰다. 최창렬 교수는 “‘샤이 보수’는 말 그대로 탄핵정국에서 자기가 보수라고 말하기 어려워했던 유권자들인데, 이들의 표는 결국 당선 가능성과는 상관 없이 보수정당 후보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업체의 관계자도 “과거의 대선을 돌아볼 때 보수성향 표심은 대체로 자기 표가 사표가 되더라도 찍고 싶은 후보를 찍는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며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과 홍준표 후보 지지율이 아무리 떨어져도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실제 선거에서는 이들 보수 표심이 예상보다 더 크게 결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안 후보 지지층으로 흡수된 보수성향 표심이 별다른 동요 없이 그대로 안 후보에 대한 표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안 후보가 ‘적폐’ 세력으로 지칭되는 박근혜 정권과는 전혀 다른 세력이기 때문에 보수와 중도, 진보를 가리지 않고 지지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또 부동층과 고정 지지층을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투표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는 선거라는 점도 작용한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단지 문재인 후보에 반대하는 투표라고 해서 투표 의지가 약해질 것이라는 관측은 설득력이 약하다”면서 “계절과 연휴 때문에 전반적으로 투표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소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전 정권 심판을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투표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고령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 못지않게 청년층 유권자의 표심 역시 대선판도를 좌우할 중요한 변수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주도적으로 나선 연령층이면서 그간 보수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대해 가장 큰 반감을 갖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치러진 20대 총선 투표율을 보면 2030세대 투표율은 19대 총선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20대 전반 투표율은 45.4%에서 55.3%로, 20대 후반은 37.9%에서 49.8%, 30대 전반도 41.8%에서 48.9%로 상승했다. 지난 총선에서 처음 실시된 사전투표도 청년층의 참여율이 높았다. 계절과 연휴 변수에 따른 투표율 저하가 사전투표로 상쇄되고, 박빙의 승부가 진행돼 투표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청년층의 표심도 대선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4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서로에서 영등포구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샤이 보수’의 표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했거나 지지후보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 이하 연령층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4월 2주 정례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를 묻는 문항에 지지후보가 없거나 유보 중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0대 이하(14%), 60대 이상(12%), 50대(11%)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 지지후보 순위를 보면 20대 이하와 30대·40대에서는 문 후보가 안 후보를 크게 앞섰고,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안 후보가 문 후보를 크게 앞섰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과 야당 지지로 갈라졌던 세대 대결구도가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두 후보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맞춤형 부동층 잡기 전략을 선보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문 후보로서는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강한 청년층 내의 부동층 유권자들을 적극 공략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이들 세대의 투표 의지를 강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반대로 안 후보는 고령층과 보수 지지층 유권자들이 ‘반 문재인’을 넘어 안 후보에 대한 적극적 지지로 이어지도록 투표 의지를 강화하는 전략을 내세우는 것이 유리하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정치학)는 “특정 후보에 반대하는 태도가 투표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치더라도 투표율로만 따지면 고령층 유권자의 투표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은 안 후보에게 이점”이라며 “기본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세대라는 점을 감안해 세대에 맞는 전략으로 표심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가 보수성향 유권자들에게로 지지층을 확대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외연 확장이 주춤하다는 지적을 받는 문 후보로서는 안 후보에게 넘어간 지지층을 다시 흡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양강구도를 형성하면서 지지층이 고정되기 시작한 현 시점에서는 상대편 후보 표 한 표를 내 표로 끌어와 두 표의 효과를 얻는 ‘반집 승부’를 준비할 때가 된 것이다. 이 경우 이념적 지향의 차이 대신 ‘반문 정서’가 지지표 이탈의 주된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열성적인 고정 지지층의 요구에만 맞춘 ‘문재인 좋아요’ 식의 캠페인은 독이 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형식 소장은 “문 후보는 안 후보처럼 보수 표를 끌어올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부동층 표와 안 후보 지지 표를 끌어오는 전략만이 남아있다”면서 “앞으로도 이어질 검증국면이 안 후보에게는 다소 불리하게 작용하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문 후보와 안 후보 모두 ‘문재인 좋아요 대 문재인 싫어요’로 요약할 수 있는 ‘문 대 반문’ 구도를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4월 13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잇따라 열리는 TV토론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등 현 시점에서 단정하기 어려운 변수들 또한 기존의 ‘문 대 반문’ 구도에 묶일 경우 표심을 얻는 확장성보다는 기존 지지층의 요구에 갇히는 폐쇄성이 더욱 드러나게 만들 수 있다. 한 정치컨설팅업체 관계자는 “(문과 안) 양쪽 다 TV토론을 기점으로 그간 활용해 왔던 프레임을 버리고 새로운 프레임을 장악하려는 여론전에 불을 붙이고 있다”면서 “문 후보로서는 ‘반대세력에 당하는 희생양’이라는 지지층 내부의 이미지를, 안 후보로서는 ‘문재인만 아니면 다 된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