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문재인 포비아’의 실제 파급력은

문 후보 거부 고정층 존재하지만 실체에 대해서는 의견 분분

공포증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속성이 있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인 두려움이라는 점이다. 공포의 대상은 알거나 짐작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광장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처럼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익숙한 상황에 대해서도 공포를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공포가 과도하고 합리적이지 않게 일어나면 정신건강상의 문제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공포증(포비아)은 선거전략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신질환과는 거리가 멀지만 비슷한 점은 있다. 과도하고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조장한다는 점, 그리고 치료방법 중 하나가 노출 요법이라는 점이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 직접 노출되는 강도를 조절하면서 두려움을 줄여나가는 노출 요법을 거치면 ‘별것 아닌 것을 두려워했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것이다.

현재 대선국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공포증은 ‘문재인 포비아’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유력 대권주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결합시킨 명칭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항마로 떠오르면서 그간 이어져오던 ‘문재인 대세론’에 위협을 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문재인 포비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강구도가 자리잡으면서 기존의 ‘반문’ 진영에서 내놓던 ‘문재인 포비아’ 전략도 다양해지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월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선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정치권 전략과 유권자들 느낌은 차이

구분해야 할 것은 문 후보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이 내놓고 있는 문재인 포비아 전략과 실제 일부 유권자들이 느끼고 있는 문재인 포비아 현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에서부터 장기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보수진영을 비롯해 중도와 제3지대 등의 정치세력에서 ‘반 문재인’ 구호를 내걸고 있는 것은 정치적 전략의 하나다.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 확정되기 전 개헌 프레임 대결에서 문 후보를 향해 개헌에 미온적인 패권주의 세력이라는 비판을 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안보와 대북관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 과거 참여정부 시절의 실정에 대한 책임론 등을 내세워 문 후보를 압박하고 반문 진영의 연대를 꾀하는 전략도 문재인 포비아 전략의 한 단면이다.

4월 13일 한국기자협회와 SBS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안보문제가 토론의 주요 주제가 되면서 문 후보를 향한 공세는 이어졌다.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먼저 간다는 사람이 나라를 담당하면 이 나라의 미래가 있겠느냐”며 문 후보를 비판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이날도 “‘집권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 그 말을 취소하는 건가”라고 물으며 공세를 이어갔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도 “노무현 정권이 북한 김정일에게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 투표하기 전에 먼저 물어본 건 사실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문 후보의 안보관을 비판했다.

문 후보가 대선주자 중 선두권에서 달리고 있는 만큼 정치권 내부에서 공포증 전략의 주된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실제 유권자들 사이에서 ‘문재인 포비아’로 지칭할 만한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여부다. 한국갤럽이 4월 4~6일 휴대전화 RDD 조사(집전화 RDD 보완) 방식으로 전국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월 1주 정례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주요 대선주자들을 놓고 호감 여부를 묻는 질문에 문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는 46%로 호감도 48%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이 응답률은 홍준표 후보의 비호감도 77%, 유승민 후보의 58%보다는 낮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35%보다는 높은 수치다.

여론조사 결과만으로는 해석 어려워

비호감의 정도로만 봐서는 보수진영의 대선후보들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고, 거부감이 반드시 공포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재인 포비아의 실체가 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다만 문재인 포비아라고까지 지칭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유권자층의 동향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실마리는 잡을 수 있다.

특히 보수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고령층의 표심 이동이 대표적이다. 한국갤럽이 4월 들어 실시한 두 차례의 정기 여론조사에서 첫째 주 조사 결과와 둘째 주 조사 결과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유권자들의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두 번의 조사 모두에서 60대 이상 응답자의 지지율 1위는 안철수 후보였으나 쏠림현상이 더욱 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4월 1주 조사에서 47%의 지지를 받았던 안 후보는 다음주 조사에서 53%의 지지를 얻어 고령층 내부에서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문재인 후보에 대한 60대 이상의 지지율은 16%에서 11%로 떨어졌다.

60대 이상에서 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점차 낮아지는 현상은 ‘문재인 포비아’의 단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연령대에 따른 변수 외에 지역 변수를 고려하면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가장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인 대구·경북에서의 표심 이동을 봐도 문재인 공포증이라고 할 만한 흐름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4월 1주 조사에서 대구·경북 지지도 1위는 안철수 후보(38%)가 차지했고, 그 뒤를 문재인·유승민 후보가 각각 15%의 지지를 받아 추격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1주 사이에 조사 결과는 급변해 유승민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본거지인 대구·경북에서 단 1%의 지지만을 받아 14%포인트나 급락했고, 홍준표 후보 역시 같은 기간 이 지역에서의 지지율이 14%에서 8%로 떨어졌다.

반면 안철수·문재인 두 후보는 나란히 지지율이 각각 10%포인트씩 올랐다. 같은 기간 전국에서의 두 후보 지지율 상승폭이 똑같이 2%포인트씩이었다는 점을 보면 유독 대구·경북에서의 변동폭이 크다. 이 지역에서는 그간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높았던 만큼 양강구도가 점차 자리잡아가면서 표심 이동도 빠르게 진행된 셈이지만, 보수 표심의 움직임이 반드시 문 후보를 기피하는 정서 때문에 안 후보에게로만 향했다고 보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런 추세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여론조사업계 내부에서의 해석도 분분하다. 문재인 포비아가 존재하지만 실제 파급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정반대의 의견과 공존한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문재인 후보를 향한 고정적 지지층이 있는 만큼 문 후보를 거부하고 찍지 않으려는 고정층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하기 어렵다”며 “적어도 실제 문재인 포비아가 반문 진영 정치인들이 언급하는 정도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문재인 포비아라는 표현이 너무 나간 걸 수도 있지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나름의 전략적 투표를 하는 표심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