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번호 도입’ 더 강해진 여론조사

휴대전화 가입자 대상 개인정보 유출 없이 조사…

여야 모두 후보 선정 주요 방법으로 채택

올해 4·13 총선에서 여론조사는 더욱 세졌다. 여야의 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지난 19대 총선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250여석에 이르는 지역구 가운데 우선추천 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구의 후보를 여론조사를 통해 뽑게 된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250여석의 지역구 가운데 20% 전략공천 지역을 제외한 곳에서 후보를 뽑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특히 올해 총선에서 여론조사는 안심번호를 도입하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무기를 탑재했다. 이전 유선전화 여론조사보다 더욱 정확한 휴대전화 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안심번호 여론조사는 이동통신사가 실제 전화번호가 아닌 임시로 생성한 가상번호를 여론조사기관에 제공해 휴대전화 가입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 없이 안심하고 여론조사에 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층의 의견이 여론조사에 대폭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안심번호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는 안심번호 선거 여론조사의 장점으로 ‘높은 응답률로 선거 조사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을 손꼽았다. 기존 여론조사가 유선전화 이용자인 여권 지지층에 편중돼 있었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와 개표 결과가 괴리됐지만 이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서치뷰는 여론조사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 외에 안심번호가 선거 자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았다. 리서치뷰 안일원 대표는 “안심번호 도입으로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일단 각 정당 후보 경선에서는 정치 신인이 재선·3선 의원을 꺾는 이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여론조사는 조직 동원이 가능했지만, 안심번호 도입으로 후보자가 전화번호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직 동원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 신인들에게는 유리한 여론조사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층 의견 반영… 높은 응답률 기대
기존 유선전화 여론조사에 아예 참여할 수 없었던 유권자들이 대거 후보 선출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다. 안 대표는 “안심번호가 전면적으로 활용되면 안심번호 여론조사에 참여한 유권자들은 자신이 뽑은 후보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총선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주변 여론을 확신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20대 총선이 총선으로서는 처음 사전 투표제(전국 선거에서는 2014년 지방선거부터 도입)를 실시하기 때문에 여기에 안심번호 도입을 더한다면 19대 총선보다 5% 정도 투표율을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19대 총선은 54.2%의 투표율을 보였다.

안심번호 도입 자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색다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당은 유선전화 여론조사를 통해 여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 되면 이를 통해 대세론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이번 총선부터는 여당이 사실상 우군이었던 여론조사의 지원을 잃게 될 것으로 분석된다. 야당은 휴대전화 가입자들이 대폭 여론조사에 응함에 따라 유리한 조사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여당과 접전을 펼치는 구도로 몰아갈 수도 있다.

안심번호 도입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일정 부분 높일 것이라는 전망에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안심번호 도입이 곧바로 정치문화를 바꿀 것이냐는 예상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전망이 더 많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안심번호가 여야 간 대결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당내 후보 경선에서 도입되기 때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정치 신인에게는 기존 유선전화 여론조사보다는 조금 유리해지겠지만,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뒤엎을 만큼의 파괴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 을에 출마할 예정인 더불어민주당의 강희용 부대변인은 “말로는 국민참여 경선이지만 사실은 인지도 싸움이기 때문에 후보 경선에서는 현역 의원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는 “지금 지역구에서는 여론조사가 많이 실시돼 유권자들에게는 여론조사 피로도가 높다”면서 “유선전화 방식보다 참여폭이 더 넓어지더라도 응답률이 떨어져 개선의 폭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엄 대표는 “정치 신인에게는 안심번호가 도입되더라도 여론조사는 ‘벽’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신인들에게는 당원 투표 경선도 힘들지만 안심번호 여론조사도 현역 기득권과의 대결에서는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엄 대표는 이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표현했다. 엄 대표는 “안심번호 여론조사가 정착하기에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면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당초의 도입 목적을 달성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신인·야당 쪽에 다소 유리할 듯
이 같은 부정적인 전망에 대해 안심번호 도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안심번호와 함께 이뤄져야 할 후보자에 대한 정보공개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안일원 대표는 “각 당에서 유권자에게 후보에 대한 변별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후보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기존 유선전화 여론조사에서는 후보자의 경력 두 가지를 불러주고 유권자의 즉흥적인 답을 유도했는데, 이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안심번호 도입 자체가 ‘친노’ 후보들에게 유리하다는 논란도 있다. 참여정부 때의 경력만으로도 지지율 10%를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당내에서 떠돌고 있다. 안일원 대표는 “물론 친노 후보들이 SNS 상에서 유리한 점이 있지만 지금 여당도 SNS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면서 “이미 SNS는 2002년 대선 이후 정치권에서 화두가 돼 왔는데, 이런 기회가 친노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노에게만 유리한 방식이 아니라 SNS 소통을 하는 후보라면 모두에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여론조사 자체가 후보를 결정짓고, 판세를 좌우하는 수단이 되는 데 대해서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조차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여론조사로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를 천박하게 만든다”면서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국민이 모든 영역의 전문가이고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가 어떤 것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전지전능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엄경영 대표 역시 “여론조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생각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여론조사를 후보의 결정 기준으로 삼게 되면 여론조사를 빙자한 조직 대결이 되는 것이고, 안심번호를 도입하더라도 또 한 번의 위장을 하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당내 경선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유능한 사람을 뽑고 심판을 받는 것이지, 당이 제대로 못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그렇게 되면 여론조사를 민주주의의 도구로 악용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