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본격적 재가동 나선 진보 통합논의… 조직 간 연대 넘어 ‘공동의 목표’ 세워야

“진보세력의 혁신과 결집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겠습니다.”

6월 4일 정의당 천호선 대표, 노동당 나경채 대표, 국민모임 김세균 대표, 노동정치연대 양경규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모였다. 이들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2015년 안으로 더 크고 더 강력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가시화해낼 것입니다. 또한 각 단위별로 진보 재편과 결집에 대한 책임 있는 논의를 거쳐 9월을 전후해 구체적 성과를 국민들께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는 대중조직과 시민사회, 그리고 각계 인사들을 포함해 진보정치를 통해 대한민국의 근본적 변화를 원하는 모든 분들이 이 길에 함께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재·보선 때 생긴 감정의 골 다소 완화
정의당,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는 지난 4·29 재·보선을 앞두고 연대를 모색해 왔다. 첫 단추를 꿴 시기는 좀 더 거슬러올라간다. 지난 1월 30일 나경채 노동당 대표 당선이다. 당시 나경채 당대표는 정의당과의 통합 및 진보 결집을 유일한 공약으로 내걸었다. 나 대표의 당선이 진보 결집의 신호탄이었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4자 회의 테이블도 활발하게 움직였고, 지역 단위에서는 선거 연대가 이뤄질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재·보선에 임박하면서 4자 회담에 균열이 생겼다. 정동영 전 장관이 관악을에 출마하면서다. 관악을은 재·보선 최대 격전지였다. 정 전 장관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재·보선에서 국민모임과 공동대응을 하기로 했던 진보정당들의 행보도 조금씩 달라졌다. 정의당은 관악을 단일화를 매개로 다른 지역에서도 단일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한 반면, 당대표가 관악을 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노동당으로서는 정 전 장관의 출마가 달갑지 않았다. 당시 노동당 내에서는 정 전 장관의 출마와 관계 없이 나경채 당대표의 독자 완주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4자 연대의 테이블을 감안해 나 대표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4자 연대는 가까스로 깨지지 않았지만 신뢰에는 금이 갔고, 진보 통합의 전망도 밝지 않게 됐다.

국민모임 김세균(왼쪽부터), 노동당 나경채, 정의당 천호선, 노동정치연대 양경규 대표가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선언을 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 연합뉴스

재·보선이 끝난 지 한 달쯤 지난 6월 4일의 4자연대 공동 기자회견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 통합을 본격적으로 재가동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동영 전 장관이 국민모임에서 이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선거 기간 벌어진 마찰과 감정의 문제도 다소 완화됐다.

정의당에서는 4자 연대의 흐름을 가속화하기 위한 일정들을 잡았다. 정의당은 당 상무위원회가 ‘진보 재편에 관한 당 방침의 건’을 확정하고 전국위에 이를 상정했다. 오는 7월 새롭게 선출될 정의당 대표는 2016년 총선을 이끌게 된다. 정의당이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가 모인 4자 테이블에서 가장 몸집이 큰 만큼 진행 중인 진보세력 통합에서도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유력한 ‘양강’으로 거론되고 있는 노회찬 전 대표와 심상정 의원은 모두 진보 결집을 통한 총선 승리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난관은 남아 있다. 진보정치가 세부 정파 조직을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정파 간 차이를 극복해 뜻을 모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노동당은 2015년 노동당 정기 당대회를 열어 2016 총선 기본방침 등을 결정한다. 6월 28일 개최되는 노동당 정기 당대회의 쟁점 안건은 ‘2016년 총선 기본방침 승인의 건’과 ‘당원 총투표 부의의 건’이다. ‘당원 총투표 부의의 건’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당원 총투표로 결정해 추진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재 노동당 대의원 조직 구성상 진보 결집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더 많다. 노동당 관계자는 “사실 지금 4자 연대를 한다고 해도 진보 결집이 신선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마저 깨지면 진보 결집의 모양새가 더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노동당이 4자 연대에서 이탈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1987부터 2014년까지 진보정치운동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논문 <한국 진보정치운동의 궤적>(손우정)은 “다양하게 분화된 진보조직이 운동정치 장에서는 물론 제도정치 장에서 독자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는 없다”고 진단하며 “진보정치운동의 궤적이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어떤 제도화 전략을 구사했건간에 성공은 이질적인 진보정치운동들의 단결로써 가능했고, 실패는 이 단결이 해체된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선거 때 뭉쳤다 분열하는 악순환 막아야
지은이는 진보가 일시적인 결집으로 승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전망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과제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이질적 조직 간 연대나 통합이 추상적인 수준에서라도 ‘공동의 목표’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원내 진출’이라는 공동목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각 진보정치 세력들 간에는 ‘공동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

현재 진행되는 진보 결집은 ‘제1야당 교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지난 4·29 재·보선에서도 드러났듯이 ‘제1야당 교체’가 진보 결집에 흡입력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리더십이다. 민주적 리더십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정파간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결국 분당으로 귀결된 것은 특정 정파들을 아우르는 통합 리더십이 진보정치에서 구축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진보 결집의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있지만, 진보 결집이 선거 때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뭉쳤다가 선거 이후 각자의 실리에 따라 분열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진보정치의 패턴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남은 셈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