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백전백패 야당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나

야권 ‘언론·방송 환경, 지역·계층·세대 등 유권자들 성향 보수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 분석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기울어지고 있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한 후 야권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목소리다. 여권이 가질 수 있는 각종 선거 프리미엄에다 언론·방송 환경, 그리고 지역·계층·세대 등 유권자들의 성향이 보수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 환경이라는 것이다.

재·보궐선거 직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권 정치인의 수뢰 의혹이 터져나와 새정치연합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 환경이었다. 하지만 투표함을 열면서 환호는 새누리당 당사에서 터져나왔다. 야당 당사에서는 선거 승리의 환호가 끊긴 지 오래됐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겨우 일방적인 패배를 면했고, 4월 선거까지 포함해 재·보궐선거 때마다 야권은 참패했다.

재·보궐선거 개표가 진행된 4월 29일 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선거개표 상황실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선거 개표 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가 굳어지는 가운데 텅 빈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회의실에서 방송사들이 선거방송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울어진 운동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경기와 비슷하다. 보수세력은 위쪽에, 진보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세력은 뻥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언급한 당시의 정치 환경은 보수적인 언론과 사회지도층의 여론 형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다 보수성향의 정당이 인구가 많은 영남에 지역기반을 두고 있고, 중도 진보성향의 정당이 인구가 적은 호남에 지역기반을 두고 있다는 여건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권력기관 수장들이 보수 일변도의 인사로 채워지면서 야권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체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구조” 한탄
그렇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과연 더욱 기울어지고 있는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 측 한 관계자는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때만 해도 정말 발에 땀이 날 정도로 신나게 뛰었고, 그때 상대였던 한나라당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상황이 거꾸로 변해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구조”라고 한탄했다. 4월 재·보궐선거의 전략을 맡았던 새정치민주연합 전략기획위원장 진성준 의원은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도 경험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제 구조화된 토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 위원장은 “여권이 누릴 수 있는 각종 프리미엄에다 언론 환경, 그리고 경제계의 분위기 등이 결국 야권에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지역선거의 토양에서 비롯됐다면 기울기의 양상은 세대별 선거로 확산됐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지역적 조건에 더해 연령구조의 변화도 추가됐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보수성향이 많은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20~30대의 젊은 유권자보다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야권에 불리한 조건이 됐다. 윤 센터장은 “최근 보수 중심의 미디어 특히 종편(종합편성채널)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선거가 없는 기간에는 미디어의 여론이 야권에 우호적이었다가 선거에 접어들면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면, 최근에는 선거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권력 없는 야당이 상시적으로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윤 센터장의 주장이다.

진성준 새정치연합 전략기획위원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라면서 “예전에는 보수언론에 맞서 야권에서 SNS(소셜네트워크)가 위력을 발휘했지만, 이제는 보수 쪽에서도 SNS에서 야권과 대등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여기에 종편이 가세하면서 크게 기울어 버렸다”고 말했다. 　

보수 쪽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여의도연구소에서 여론조사 업무를 책임졌던 허병기 전 부소장은 “지금까지 선거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한 정당에 일방적으로 표를 몰아주지 않는다”며 “대선에서 51대 49로 대등한 결과가 나오는데, 이를 기울어져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허 전 부소장은 “기울어진 운동장 이야기는 결국 야권에서 유권자들의 동정표를 얻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면서 “50대 이상 유권자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해서 모두 보수성향의 표가 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종편이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보수표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잘못하면 야권의 미숙한 선거전략을 회피하려는 변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초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이진복 연구위원은 ‘이기는 혁신의 길: 온 국민 정치’라는 보고서에서 ‘특히 1997년 DJ가 이룬 최초의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와 비교하면 오늘날은 오히려 호조건임’을 전제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보다) 새정치민주연합 자신의 실력 부족을 탓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운동장 탓만 하면 더욱 기울어진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선거에서 완벽하고 평탄한 운동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가령 원정경기에서는 상대 진영의 응원 분위기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야권이 SNS에서 보수에 비해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고 문화예술계에 수많은 우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진성준 새정치연합 전략기획위원장은 “대선 같은 큰 선거에서 DJP연합이나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등을 통해 잠시 이길 수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선거 토양이 야권에 불리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야권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기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제기된다. 윤희웅 센터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야권이 기울어진 운동장만 이야기하면 대중 신뢰도 확보의 실패와 선거 캠페인 실패, 선거전략의 미숙을 변명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기울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황태순 평론가는 “야권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선거전략을 수정해야지,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하는 것은 변화의 기회를 오히려 가로막게 된다”고 비판했다.

윤 센터장은 “최근 선거에서 나타난 영남에서의 지역주의 완화, 진보성향 486세대의 50대 진입 등이 야권에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될 수 있다”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야권이 정책·전략·신뢰를 담으면 야권에 유리한 시소로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