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특검 도입” 여야 입장 바뀌었네

새누리당 “빨리 털고 가자”… 새정치연합은 상설특검법 한계 지적

“특검을 도입하자!” “특검은 시기상조다!”

여의도 정가에서 ‘○○○게이트’라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야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거의 예외 없이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야당의 몫이었고,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는 여당의 몫이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서는 여야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오히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특검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영문을 몰라 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알고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공수가 뒤바뀐 듯한 두 당의 속사정과 계산을 들여다 보자.

경향신문을 통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녹취록이 공개되자, ‘특검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낸 곳은 공교롭게도 여당이었다. 4월 12일 새누리당의 소장파 모임이었던 미래연대·수요모임·민본21 소속 의원 30여명이 국회 사랑재에 모였다. 이들 중 일부가 특검 도입을 주장했다. 특검 요구의 공식적인 목소리는 현직 의원 소장파 모임에서 나왔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는 4월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성완종 파문과 관련해 특검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후 친박을 제외한 비박·소장파 의원들의 입에서도 특검 이야기가 줄곧 흘러나왔다.

반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특검 도입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새정치연합의 친박권력형 비리게이트 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특검 도입은 이르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통과된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이 도입되면 범위나 기간·독립성 측면에서 야당이 원하는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서 새롭게 꾸린 특별수사팀에 10여명의 검사가 투입되는 마당에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이 도입되면 고작 5명이 투입될 뿐”이라고 말했다.

4월 8일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 이준헌 기자

여당, 야당 거부 이유 흘리며 압박
특검 도입과 관련해 4월 13일 이후 여의도의 분위기는 이상하게 돌아갔다.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상설특검법은 이런 사건을 위해 만든 것”이라면서 “조속히 특검 도입에 나서야 한다”고 여야에 촉구했다. 야당의 한 축인 정의당에서 특검을 요구했지만 다른 한 축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특검에 대해 입을 굳게 닫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4월 14일 “야당이 특검을 요구할 경우 언제든지 받겠다”고 말했다. ‘야당이 특검을 요구할 경우’라는 단서가 미묘한 표현이었다. 여당에서는 실제로 특검을 원하는데,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야당이 먼저 도입을 주장하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특검을 요구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여당 의원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도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설도 그 중 하나다. 게다가 성완종 전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두 차례나 특별사면을 받은 데에는 친노쪽의 배려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진짜 속마음은 내년 총선을 향해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어떡하든 조기에 진화해야 한다. 리스트 정국이 총선까지 이어지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야당과 접전을 벌여야 하는 수도권의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이 파문이 해결되길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도 “의원총회를 열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야당이 특검에 대해 미온적인 것은 이 사안을 질질 끌고 가서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총선을 두고 속앓이를 하듯,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에서 역제의로 들어오는 특검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검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야당도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 서영교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새정치민주연합이 특검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상설특검법에 의한 특검으로는 이런 큰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 수 없다”고 말했다. 상설특검법이 아닌 별도의 특별법에 의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호준·박범계, 정의당 서기호·김제남 의원(왼쪽부터)이 2013년 12월 국회 의안과에서 ‘범정부적 대선 개입 사안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밀어붙인 상설특별법이 오히려 족쇄
이런 가운데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출국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면서 특검에 대한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박 대통령은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진실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야당이 특검을 요구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나서서 특검 도입을 거론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완주 의원은 “지금 이완구 총리의 퇴진이라든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친박 실세 의원의 수사가 중요한데, 자꾸 특검 운운하는 것은 여론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특검을 놓고 속앓이를 하는 것은 검찰 개혁을 위해 야심차게 밀어붙인 상설특검이 오히려 야당에 족쇄가 됐기 때문이다.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국회가 만든 특별검사추천위원회(7명의 위원)에서 2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한 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하게 된다. 야당의 입김이 최대한 반영돼도 대통령이 여당 성향의 특별검사를 임명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60일의 수사기간도 대통령의 승인이 있어야 연장이 가능하다.

상설특검법은 국회 법사위원장이었던 박영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법안이다. 대형 게이트 때마다 특검 도입을 피하려고 했던 여당에 맞서 아예 상설로 특검을 도입하자는 취지였다. 때문에 박 의원(당시 법사위원장)은 2013년 12월 31일 상설특검법 제정에 대한 여당의 구두약속을 받은 후에야 예산관련법을 통과시키는 등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 상설특검법은 여야 협상 과정에서 야당이 여당의 큰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면서 ‘무늬만 상설특검’으로 변해 버렸다.

‘무늬만 상설특검법’이 만든 첫 번째 아이러니는 세월호 진상규명이었다. 여당에서는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을 주장했다. 야당으로서는 상설특검법이 가진 한계를 체험한 첫 번째 사례였다. 결국 상설특검법을 따르되 추천위 구성은 별도의 합의를 해야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은 “예전 같았으면 이런 대형 게이트에서는 특검을 놓고 여야가 협상을 벌였는데, 이제는 상설특검법이 야당에 족쇄가 되어 버렸다”고 한탄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