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창조경제 말아먹는 박근혜 정부

사이버 사찰ㆍ검열로 선도적인 IT기업 해외진출 발목 잡아… 단통법 무턱대고 몰아붙여 시장 왜곡도

6억명을 넘는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세계 인터넷 기업들이 노리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검열이 상시화된 중국 정부의 인터넷 정책 앞에서는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도 힘든 싸움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장의 특성을 이용해 정부 검열에 적극 협조하며 검색시장을 필두로 IT산업 전 영역에서 성장한 업체가 바로 바이두다. 중국 인터넷 인구 중 70%인 4억명 이상이 이용할 정도로 텃밭을 가꿔놓은 바이두이지만 해외의 화교 네트워크에도 불구하고 해외진출 실적은 예상에 비해 부진하다. ‘세계 최악의 검열기관’이라는 중국 정부의 파트너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휴대전화 판매점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도 끊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사찰과 검열은 이웃 중국의 일만은 아니었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국내에서 잘 나가던 선도적 IT기업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결과는 한국에서도 비슷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9월 16일 국무회의 발언이 나올 때만 해도 이 발언이 정보통신업계에 만들어낼 나비효과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박 대통령 발언 이틀 뒤인 9월 18일 대검찰청 15층 중회의실에서는 대검과 법무부를 비롯, 안전행정부·경찰청·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기관 5곳에 포털·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업체 4곳까지 모두 17명이 모인 대책회의가 열렸다.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에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 IT업체가 참석한 이유는 달포 가까이가 지나서야 밝혀졌다. 회의에서 논의된 유언비어·명예훼손 상시점검 방안에는 포털사와 핫라인을 구축해 “유언비어·명예훼손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된 논제와 관련된 특정 단어를 입력·검색하여 실시간 적발”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명예훼손 형사처벌 제도는 권력자가 검찰을 통해 비판세력의 입을 막는 데 동원될 수 있어 유엔 인권위원회를 포함해서 국제 인권기구들이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처럼 해외에서는 자취를 감춘 명예훼손죄가 이제는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틈도 없이 검찰과 민간업체의 손에서 적용되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대통령 한 마디에 카톡ㆍSNS 상시 감시
카카오톡 등 SNS에까지는 검찰이 손을 뻗지 않는 듯 보였다. 검찰은 대책회의가 열린 8일 뒤인 9월 26일 SNS에 대해서는 고소·고발이 있을 때만 모니터링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닷새 만인 10월 1일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계정이 이미 수사기관에 의해 압수수색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정 부대표와 ‘단체카톡방’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면식도 없는 단톡방 참가자들의 개인식별정보가 수사기관에 넘어간 것이다.

올해 초에는 철도파업 당시 양성윤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박세증 철도노조 조합원이 ‘SNS 친구들’을 털리는 일이 벌어졌다. “유명인들의 명언을 공유하는 방에 들어갔다. 얼굴 모르는 수백명의 사람들한테 ‘여러분들 명단이 저 때문에 수사기관에 넘어갔습니다’라고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며칠을 고민했다.” 박씨는 수사 후 4~5개월이 지나서야 날아온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요청 집행사실 통지서’를 보이며 “통지서에도 나오지 않은 사찰활동은 얼마나 더 이뤄졌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지서에는 자신의 통신사실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정보 및 통신내역까지 기록돼 있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검열 및 사찰 의혹은 시민들의 카카오톡 ‘탈출’에 불을 붙였다. “사실 평범한 내 카톡까지 설마 일일이 들여다보겠나 싶은 생각은 들지만 카톡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정부 때문에 아예 계정을 지워버렸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윤민식씨(28)는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 말 한 마디에 헌법에 나온 권리와 자유가 흔들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씨처럼 카카오톡을 이탈한 인원만 50만명이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카카오톡을 지우진 않았지만 텔레그램으로 이동한 사용자만 150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박 대통령의 9월 국무회의 발언보다 더 앞선 시점으로 거슬러올라가 찾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이전부터 이어져온 정부와 집권세력의 인식이 표출된 결과라는 것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급감한 휴대전화 매출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일방적이고 원칙 없는 시장개입도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인식에 기인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 잘 모르고 있다. 단통법만 해도 보조금 차별 철폐라는 명분에만 포획된 결과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무작정 밀어붙여 시장을 오히려 왜곡한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견제 목소리를 제한하는 것은 단말기 유통시장의 유일한 경쟁수단인 보조금을 제한하는 것과 같다”며 “그 결과는 통신사 등 특정 이익집단이 담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들이 발표한 보조금 고시에 따르면 최신 기종인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4에는 8만∼11만원 안팎의 적은 보조금이 제공되면서 단통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판매가격이 오히려 상승했다. 애플의 아이폰5s는 이통사 2년 약정을 걸고 보조금을 받았을 때의 할부원금보다 애플 공식 온라인 매장에서 공기계 새 제품을 사는 것이 더 저렴한 이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휴대폰 단말기 시장도 중국산만 ‘살 판’
사실상 단말기 유통까지 책임지고 있는 이통사들의 조처에 소비자들은 중고나 외산 단말기를 사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국내 제조사 단말기와 프로세서나 디스플레이 등 핵심적 기능은 비슷한 수준의 중국산 제품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 업체 화웨이의 신모델 X3가 34만원대, 샤오미의 전략모델 Mi3도 33만원대에 판매되는 등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국내 제조사를 대체하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반면 일선의 이동통신 판매점은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긴 가운데 영업비용을 고스란히 날리는 실정이다.

“창조경제라고 그랬잖아요. 하다 못해 손실을 창조하더라도 대기업 통신사나 말단 영세 판매점이나 같은 비율로 감당하게 해야지, 손해는 점주들만 보게 생긴 꼴 아니냐고요.” 서울 종로의 이동통신 판매점주 김일두씨(45)는 이대로라면 종업원들을 내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도 가게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업자 창조하는 창조경제지, 뭐.” 한탄을 뱉으면서도 김씨는 정부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며 꼬집었다. “앞날을 내다보지도 않고 한쪽으로만 치우쳐 반대의견을 듣지 않으면 결국 나라든 가게든 말아먹는다는 걸 가르쳐주니 고맙네요. 근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