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빠진 ‘심심한 국감’ 박근혜 정부 일하긴 하나

역대 정부 집권 2년차 국감 땐 핵심 경제정책 놓고 여야 공방전…

이번엔 ‘먹고 사는 문제’ 구체적인 사업 실적 없어 ‘맹탕’

집권 2년차. 정부의 국정기조 아래 각종 사업과 정책들이 박차를 가할 때다. 정치는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룬다. 정부 국정기조의 핵심은 당연히 경제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각 정부는 자신만의 경제적 비전을 제시하고 국정 초반에 이를 뒷받침할 정책을 밀어붙인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국정기조 아래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경제발전 방향 아래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는 지식기반경제를 새로운 경제모델로 삼고 ‘벤처산업 육성’을 단행했다. 그러다 보니 집권 2년차의 국정감사는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과 이를 둘러싼 여야의 공격·방어전인 경우가 많았다. 2009년 국정감사는 4대강 살리기의 위법성과 타당성을 집중 추구하는 ‘4대강 감사’였다. 2004년은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여야가 설전을 벌였다. 1999년 국정감사는 정부의 벤처·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허와 실을 따져 묻는 자리였다.

2014 국정감사 첫날인 7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위 국정감사장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 그러나 2014년 국정감사의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정부의 사업 및 정책들의 타당성을 둘러싼 공방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모델과 그를 실현하는 사업에 대한 공방보다는 ‘사이버 검열’ 문제가 이번 국정감사의 핵심이 됐다. ‘경제’보다 ‘통치’ 문제가 불거진 집권 2년차 국정감사 풍경은 박근혜 정부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여의도에서는 여느 해보다 ‘심심한 국감’이라는 말이 돈다. 국정감사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정부 사업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심심한 국감’ 배경에는 ‘일을 잘하는 정부’가 아니라 ‘일을 하지 않은 정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처럼 정부의 국정기조 아래 어떤 사업이 타당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지 따져 묻는 자리가 아니라, 사업 자체가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전 국감 풍경과 달라도 너무 달라
물론 박근혜 정부도 역대 정부처럼 경제적 비전을 제시하는 국정기조가 있다. ‘창조경제’와 ‘통일대박론’이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이를 구현할 세부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여당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10월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었다.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은 ‘통일대박론’을 구현할 핵심 국정과제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사업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안한 것이다. 부산-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즉 유라시아 철도 사업을 핵심으로 한다. 북한을 지나는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여 해양과 대륙을 잇고 유라시아 경제권과 아·태 경제권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제시하고 통일대박론의 핵심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배정된 2014년도 예산은 0원이다. 예산이 전혀 책정되지 않다 보니 다른 사업에 배정된 예산 10억원을 끌어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마저도 구체적인 사업 실적은 전무하다. 이 중 한·러 정상이 체결한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국내기업 3개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2100억원을 투자했다. 외교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2월 ‘남-북-러 3각 협력 TF’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원유철 의원실에 따르면 TF는 당초 계획보다 인원 지원도 미흡하고 실제로 진행한 일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부처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2013년도 10월이다 보니 다음해인 2014년도 예산에 이를 반영할 시간이 촉박했다고 했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추경이나 다른 방법 등으로 예산을 책정할 수도 있었다. TF 인원 지원문제도 그렇고 사업 진행에 큰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창조경제ㆍ통일대박론 세부 정책 안 보여
10월 6일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드러났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가 통일시대 기반 구축인데 실제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정부 부처의 대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통일대박론’ 기반 구축의 하나인 남북 과학기술협력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 과학기술협력 사업은 1999년부터 추진돼 왔다. 남북 교류사업 중 가장 역사가 깊다. 그러나 지난 2010년 5·24 조치에 따라 남북 교류협력사업이 전반적으로 잠정 중단되면서 2011년 이후 신규예산 편성은 중단된 상황이다. 서 의원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해야 할 미래창조과학부가 지금까지 잘 해오던 사업을 방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대박론이 국정기조인 만큼 남북관계 상황 변화에 대비해 유연한 사업 추진이 필요하나, 기초 예산이 전무하고 직원 또한 사무관 1명만 배정해놓아 과연 정부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통일대박론’이라는 구호는 요란한데 눈에 띄는 사업이나 정책 추진은 전무한 실정이다. 5·24 조치에 따라 남북 협력사업이 제한돼 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영역에서조차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오전 박근혜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2차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창조경제’ 또한 마찬가지다. ‘창조경제’라는 국정기조 아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 진행이나 예산 편성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이후 140개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이를 이행할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최초로 공약가계부(재원조달 계획)를 작성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140개 국정과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20개의 과제는 ‘창조경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지식재산의 창출·보호·활용 체계 선진화’ ‘동반성장 등 협력적 기업생태계 조성’ ‘보건·고령 친화사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 등의 과제들이 거론돼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실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이들 국정과제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국정과제 추진현황 자료를 요구했다. 각 사업에 예산을 얼마나 배정하고 집행하는가를 통해 국정과제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에서 보내온 자료는 크게 미흡했다. 홍종학 의원실은 140개 국정과제 중 창조경제 부분을 포함해 67개 국정과제의 2014년 예산배정분과 2015년 예산안의 상세내역을 기재부에 요구했다. A4 1장 분량으로 돌아온 답변은 요구한 67개 사업 중 2014년 예산배정분의 경우 7개의 항목만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2015년 예산안의 경우 8개의 항목만 반영 내용을 언급하고 있었다. 홍종학 의원실 관계자는 “한마디로 각 국정과제별로 어떻게 예산이 배정되는지 파악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공약가계부 현황에 대한 요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발표된 공약가계부는 140대 국정과제에 필요한 돈과 마련할 돈을 대차대조표로 정리한 것으로, 부처 업무계획과 예산안 수립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난 9월 18일 정부가 ‘2015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공약가계부가 사실상 폐기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2015년도 예산안에서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분야 예산을 올해보다 7000억원 늘어난 24조4000억원으로 편성했는데, 이는 공약가계부 발표 당시 사회간접자본 투자규모를 21조~22조원 수준으로 정상화해 나가겠다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폐기 아니면 전면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구호뿐인 민생… 통치에만 신경 쓴 결과”
국정감사를 앞두고 홍종학 의원실은 공약가계부 주요 과제 중 변동된 내용과 향후 수정된 공약가계부를 발표할 계획이 있는지를 기재부에 물었다. 기재부는 공약가계부 주요 과제 중 당초 계획과 대비해 변동된 내역은 4개에 불과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또한 향후 공약가계부에 일부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수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기존의 공약가계부가 전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중론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꾸지 않은 것이다. 이 또한 현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홍종학 의원실 관계자는 “경제 사정이 바뀌었는데도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기존 공약가계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공약가계부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당선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처음 들고 나왔을 때, 창조경제는 ‘여의도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희화화되어서 회자됐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였던 창조경제는 집권 2년차 국정감사에서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 못했다. ‘통일대박론’도 마찬가지다. 통일대박론은 북한과의 전면적인 협력이 필요한 사업인데 이는 박근혜 정부의 지지기반인 보수세력과 충돌한다. 한상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는 정책 없이 구호만 남발한 셈인데, 정치와 통치는 아버지에게 배워 강한 편인데 경제는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선거 당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선거용에 불과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한 이후 ‘민생’이라는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경제를 언급해 왔다. 지금은 한쪽에서 구호만 띄우고, 또 다른 한쪽에서 공안통치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당 내에서는 수석이나 장관이 배제된 청와대 문고리 권력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의 권력구조는 ‘박근혜 의원실’이 그대로 확대된 것에 불과하다. 의원과 대통령이 하는 일은 엄청난 차이인데 국정운영의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그대로 옆에서 권력을 쥐고 보좌하고 있기 때문에 미흡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