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여당의 독주]‘견제 없는 독주’ 새누리 신났다

공기업 민영화ㆍ공무원연금 개편·담뱃값 인상 등 파장 큰 이슈 동시다발적으로 꺼내…

내분 수습에 바쁜 야당, 선거 없는 18개월 등 최대한 활용해 거침 없이 질주

“새누리당이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 돼 우파정권 재창출의 기초를 구축하겠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7월 14일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보수 혁신을 언급할 때만 해도, 이튿날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보수 혁신을 적었을 때만 해도 이미지 선점 차원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아니다. 최근 새누리당이 몰아붙이고 있는 공공부문 개혁 드라이브를 보면 보수 혁신이 단순한 수사로 그치는 게 아닌 듯하다.

지난 9월 24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본회의 법안 상정과 관련해 정의화 국회의장을 면담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김무성 ‘보수진영 개혁 아이콘’ 노려
새누리당의 혁신 드라이브는 동시다발적이다. 그것도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연금 개편 등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대형 이슈들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9월 18일 공무원연금 개편 관련 당·정·청 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19일과 22일에는 국회에서 ‘공공기관 혁신 7대 과제’ 공청회와 공무원연금 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의 공무원연금 개편안과 만성적자 공기업에 대한 청산 등 공기업 개혁안의 밑그림이 발표됐다.

새누리당은 이와 함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담뱃값 2000원 인상과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안을 강력히 지원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국민들 사이에서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고, 사회적 파장이 큰 이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거침없이 이슈를 선점하며 정국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당 내분 수습에 바쁜 새정치민주연합은 존재감이 없어진 지 오래다. 새누리당 독주시대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연금개혁 등 공공부문 개혁의 경우 보수진영뿐만 아니라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동의하는 이슈”라며 “새누리당은 이념적 대결구도를 넘는 정책적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국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이 민감한 정책이슈들을 정리해 나가는 것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승리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김무성 대표는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새누리당 당권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보수진영의 유일한 ‘개혁 아이콘’이라는 이미지까지 선점할 경우 김 대표는 차기 대권경쟁에서 성큼 앞서 나갈 수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밀고 나가면 공무원과 등질 수밖에 없고, (선거에서) 표 떨어지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한 그의 발언은 그가 당장 눈앞의 인기보다도 더 멀리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누리당은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이 국민 지지를 얻는 데 나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공공노련) 등이 강력하게 저항하면 할수록 오히려 국민 여론이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전체 공무원이 100만명이고 가족까지 합쳐도 최대 800만명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모두 반대한다고 가정해도 나머지 1200만 유권자는 새누리당 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공무원노조 조합원이 9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자료집을 찢으며 연금학회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항의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설익고 기득권 손해 안 보는 정책” 지적
새누리당은 앞으로 18개월여 동안 선거가 없는 ‘무선거 기간’이라는 점도 십분활용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조직적 저항이 큰 정책이슈를 선거가 없는 이른바 ‘골든 타임’ 기간에 밀어붙임으로써 공무원의 표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새누리당은 담뱃값과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안을 올해 안에 입법화하고, 공공부문 개혁작업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내놓은 새누리당의 정책이 설익은 정책으로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공무원연금 개편의 경우 새누리당은 친기업 성향의 한국연금학회에 의뢰해 개혁안을 내놓음으로써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연금학회는 그동안 ‘공적연금 축소’와 ‘사적연금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등 대기업 소속 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금학회에 개혁안을 만들게 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것이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그동안 일절 비공개로 하고 있다가 갑자기 연금학회안을 제시했다”며 “공무원연금 개편은 당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인 공무원 단체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기업 민영화도 새누리당이 아무런 반성 없이 포퓰리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개혁안에 따르면 만성적인 적자 공기업을 즉시 청산하고, 부채가 많은 공기업의 출자회사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대형 공기업의 부채문제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여당이었을 당시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과 해외 에너지 개발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발생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수자원공사와 석유공사다. 이경호 공공노련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에 대형 국책사업을 하라고 떠밀었기 때문에 빚더미가 쌓이는 줄 알면서도 공기업들은 대통령의 말을 따랐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박근혜 정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자 규명과 사과 한마디 없이 무작정 부채가 많은 공기업을 팔아버리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담뱃값 인상과 주민세·자동차세 인상도 증세와 관련해 기득권층의 반발이 가장 약하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담뱃값 인상과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은 정부·여당이 재원 마련을 하는 데 있어서 기득권층에 누가 안 되는 대표적인 것들”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부자증세가 아닌 서민증세를 추진함으로써 서민들의 부담이 더욱 늘어나게 됐다”고 밝혔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