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월호 정국서 엇갈린 여야 강경파

주로 초·재선 의원들로 원칙론 앞세워 목청…

특별법 재협상안에 새누리당 내 반대 목소리 소수, 새정치민주연합은 486 침묵 속 친노가 강경론 주도

8월 19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각각 의원총회를 열었다. 양당의 원내대표단이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안을 추인하기 위해서다. 각 당의 의총에서는 재협상안에 반대하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양당 의총에서 발언한 의원들만 봐도 양당 강경파들의 면면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 의총에서는 김진태·이노근 의원 등의 강경파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재협상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진태 의원은 새누리당이 특검 추천위원을 임명할 때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를 받아 추천한다는 것은 추천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러 차례 법체계를 흔들지 않았다고 하는데 흔들었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이노근 의원은 야당의 입맛에 맞게 누가 나서서 특검 추천위원이 되려고 하겠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놓고 정국이 경색된 가운데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회의실이 텅 비어 있다. | 정지윤 기자

여당 강경파, 지도부에 힘 실어줘
하지만 새누리당에서 재협상안에 반대하는 강경파는 소수에 불과했다. 직접 협상에 나섰던 이완구 원내대표는 “이 문제로 부작용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며 “의총에서 추인이 되지 않는다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이 원내대표 역시 평소에는 당내에서 강경파로 분류될 정도로 원칙 고수론자로 통한다. 역시 강경파인 조원진 의원이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자며 거들고 나섰다. 당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조 의원은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결국 새누리당 의총에서는 재협상안이 무난하게 원내지도부의 뜻대로 추인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총에서는 재협상안 추인이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세월호 유가족의 동의가 없는 한 재협상안에 대한 추인은 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의총에서 발언하는 의원들 중 다수는 추인을 반대했다. 재협상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은 의총 안에서는 소수에 불과했다. 평소 재벌개혁과 사법개혁으로 강경파의 이미지가 굳어진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같은 강경파 의원들을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 박 원내대표를 둘러싼 원내대표단의 대다수가 이른바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이었지만 재협상안 돌파에 나선 박 원내대표의 방패막이가 되지 못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전병헌 원내대표 체제에서 박영선 원내대표 체제로 변하면서 바뀐 가장 큰 변화를 “의총이 조용해지고 짧아졌다”는 말로 표현했다. 강경파 원내대표가 들어서고 원내대표단이 대부분 강경파 의원으로 구성되면서 의총에서 강경파 의원들의 발언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새정치연합의 의총은 다시 시끄러워지고 길어졌다.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한 원칙을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비록 이완구 원내대표처럼 공개석상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박 원내대표 역시 ‘직을 걸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넋두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박 원내대표가 지난번 협상안 추인 때나 이번 재협상 추인 때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내가 원내대표를 그만하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경파 의원들에게 공격받는 강경파 원내대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한 새정치민주연합 강경파의 숫자는 다른 때보다 훨씬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계파에 관계없이 많은 의원들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장 민감한 현안인 데다 야권 성향의 여론 또한 원칙론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동의가 없는 한 세월호 특별법의 통과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난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연합에서 논란이 됐던 기초연금법 협상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 지도부는 김한길·안철수 대표체제로 온건파였고, 의총에서는 소수의 강경파들이 많은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의원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에서는 지도부의 협상안에 대한 찬성표가 더 많았다. 의총에서는 강경파의 발언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협상안에 대한 찬성 의견이 더 많았던 것이다.

친노 “박영선 원내대표 독단” 강력 비판
강경파들의 원칙론적 입장은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다만 지도부가 재협상안까지 합의한 마당에 당 지도체제가 무너질 정도에 이르기까지 반대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론이 존재했다. 8월 19일 의총에서 가장 두드러진 반대 발언은 주로 친노 강경파에게서 쏟아져나왔다. 이날은 또 문재인 의원이 단식 농성 중인 김영오씨를 대신하겠다며 단식에 들어갔기 때문에 친노 의원들의 주장에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다. 한 재선 의원 측은 재협상안 반대의 목소리에 친노 강경파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강경파들을 분류하자면 486출신과 친노, 시민단체 출신의 초선 의원들이 있는데 486 출신 의원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고 시민단체의 초선 의원들은 대거 박영선 체제의 원내대표단에 중용돼 쉽게 발언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결국 친노 강경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친노 강경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박영선 원내대표의 독단적인 소통 부재가 이 상황을 불러왔다”며 “세월호 특별법 협상안은 유가족의 동의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다른 친노 강경파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재협상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온건파 의원들은 상황을 가만히 관전하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박영선 원내대표를 거의 만장일치로 비대위원장에 올려놓았으면 직무를 수행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면서 “유가족은 얼마든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야당은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정당은 시민단체와 똑같은 활동을 펼칠 수는 없다”면서 “대중정당이자 수권정당으로 나가기 위해서 새정치연합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경파들은 주로 초·재선에 분포돼 있다. 대부분 재선이 되면 상임위 간사를 맡거나 당직을 맡아 상대 당과의 협상에 나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경파 의원들의 대부분은 협상을 중시하는 온건파로 서서히 바뀐다. 여야의 강경파 의원들은 협상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여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게다가 여당 강경파 의원은 보수 시민단체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야당 강경파 의원들은 진보 시민단체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비슷하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여당과 야당 강경파의 공통점이라면 다른 당 후보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점이라면 여당 강경파는 반대 목소리를 내도 결국 당 최고회의나 중진의 의견을 따르나, 야당 강경파는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에 어긋나면 당 지도부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 의원은 “이런 점에서 보면 야당 강경파들의 원칙론이 그나마 칭찬받을 만하지만, 중진들이 팔짱을 낀 채 방관자로 남아 초선 의원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당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