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야당,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바꿔라

7 · 30 재보선 민심은 야성을 잃고 제1야당의 달콤함에 안주해 온 새정치민주연합을 심판했다. 김한길ㆍ안철수 체제의 ‘그들만의 새정치’도 4개월여 만에 참담하게 막을 내렸다. 야당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위기다. 7·30 재·보선 개표가 중반으로 치닫던 지난 7월 30일 여의도 새정치연합 당사는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미증유의 위기가 찾아왔음을 누구나 직감했다. 국민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게 분명해졌는데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천막당사로 한나라당을 구한 박근혜 같은 해결사도 떠올려지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당사에 있던 의원들, 당직자들, 당원들 모두 쉽게 답을 올릴 수 없는 질문을 가슴에 던지고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7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정지윤기자

4대 11. 새정치연합의 완패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국민들이 더 이상 새정치민주연합, 아니 야당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2012년 총선, 2012년 대선, 그리고 수도권에서 패한 6·4 지방선거에 이은 네 번째 패배. 새정치연합은 최근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의 밥으로 전락했다. 연이은 패배는 국민들이 야당의 변화를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니, 그냥 변화가 아니라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바라고 있었다.

새정치연합의 참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됐다. 노무현 정부 이후 야권은 자기혁신의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정권을 다시 되찾아와야 한다는 절박함도 없었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잇단 실정에 분노했는데도 그 분노를 표의 심판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선거 때마다 치밀한 전략은 없었고 주먹구구식으로 일관했다. 시대정신을 추구하지 못하고 번번이 새누리당의 선거공학에 당하기만 했다. 지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국민들의 뜻을 받들기보다는 계파의 이익,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만 자초했다.

최근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의 ‘밥’
새정치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안철수 공동대표도 잇단 정치적 실책과 후퇴로 점수를 까먹기만 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새정치연합에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새정치연합 이목희 의원은 “기본적으로 김한길·안철수 지도부가 대여투쟁은 제쳐놓고 공천문제에만 신경을 쓰는 등 당 운영을 잘못했다”며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잇따랐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이 대안정당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앞이 너무 캄캄하다. 당장 무너진 리더십을 세우는 것조차 간단치 않다. 재·보선 참패의 후유증을 털어내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관리형 대표가 아닌 대선주자급 실세 대표가 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 일각에서 거론되는 게 ‘문재인 조기 등판론’이다. 현재 대선주자급 중에서 광역단체장을 제외하고 당대표를 맡을 만한 인물이 문재인 의원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안팎에서 거론되는 정세균·박지원·추미애·이인영 등 현역의원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등이 당을 책임있게 이끌기에는 중량감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비노(노무현)진영이 친노진영의 대표격인 문 의원이 당의 얼굴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특히 비대위 이후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2016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7·30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7월 22일 순천 아랫장에서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때문에 비노진영에서는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전제 하에서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가 되는 것을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연합의 한 인사는 “친노진영 의원들 입장에서는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가 돼서 공천권을 행사했으면 할 것”이라며 “하지만 당내에서 당권과 대권 분리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문재인 의원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노진영에서 문재인 구원투수론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도로 민주당’이라는 따가운 비판을 감당해야 한다.

야당에 위기 때 리더십을 스스로 만든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신민당 시절 김영삼·김대중은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정면돌파했다. 둘은 이후 야권의 지도자로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새정치연합에서도 40대의 젊은 나이에 대권과 당권에 도전해 풍운을 일으켰던 김영삼·김대중처럼 신선한 리더십이 등장해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새정치연합이 ‘헝그리 정신’으로 다시 무장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과거 야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것은 정권교체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강한 일념으로 모두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국민들의 눈에는 새정치연합이 선거를 꼭 이기겠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집권 10년 이후 기득권집단으로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집권 10년 이후 어느새 기득권 집단이 돼버렸다. 다시 정권을 탈환해야 한다는 절박감보다 차기 총선의 공천에만 신경 쓰는 형국이다. 각 의원들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3월 통합 이후 ‘새정치’를 실현하겠다며 공항 귀빈실 이용 금지 등 의원 특권 내려놓기 혁신계획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

반면 새누리당은 달랐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당의 상징색을 바꾸고, 진보의 전유물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전남 순천·곡성 선거에서 이정현 후보는 작업복에 빨간 조끼를 입고 중고 자전거를 타고 순천과 곡성을 누비며 한 표를 호소했다.

소셜미디어컨설턴트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야당이 10년 동안의 여당생활을 하면서 야당성이 상실됐다”며 “이번 기회에 기득권에 안주하는 체질을 버리지 않으면 야당의 미래는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우원식 최고위원은 “새정치연합은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당, 서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국민의 삶의 현장에서 신뢰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정말 귀족주의에 빠진 우리 당 전체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정치연합은 당내에서 뛰어난 전략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7·30 재·보선 시작 직전만 해도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객관적인 여건이 좋았다.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잇단 인사난맥상으로 지지율이 4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패다. 선거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7·30 동작을 전략공천 발표 직후 장고를 거듭해온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오른쪽)이 7월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전략공천 수락’ 입장을 표명하자,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왼쪽)이 회견장에 난입해 강력 항의하고 있다. | 정지윤기자

이번 재·보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여의도연구원의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당내 선거전문가들이 정밀하게 선거전략을 세웠다. 반면에 새정치연합은 선거 전에 여론조사 몇 번 했던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7·30 재·보선은 선거전략에서 승부가 갈렸다. 이번 재·보선은 30%대 안팎의 저조한 투표율이 예상됐다. 새누리당은 서울과 수원 1개(수원 영통)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역밀착형 후보를 공천했다. 비록 인지도가 떨어지더라도 낮은 투표율을 감안할 때 아무 연고가 없는 중앙정치인보다는 지역정치인이 먹힐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서울과 수도권에 연고가 없는 후보들을 내세웠다. 결과는 새누리당의 대승이었다. 새누리당 무명의 후보들이 손학규·김두관 같은 대선주자급 후보를 여유있게 물리쳤다.

또 선거운동 초반에 새누리당에 밀리던 새정치연합은 천막당사를 수원에 설치했다. 하지만 수원시민들은 천막당사를 진정성 있게 보지 않았다. 특히 야당 지지층인 2030세대에게 천막당사는 더 이상 어필하지 못했다. 천막당사는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써먹은 한물 간 메뉴였기 때문이다.

당 해체 각오로 ‘새판짜기’ 나서야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천막당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대표가 한 번씩 사용했던 이벤트였다”며 “차라리 당 지도부가 세월호 가족 단식에 동참했으면 효과가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아닌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띄웠다가 슬그머니 거둬들이기도 했다. 과거정부 심판 프레임은 당연히 먹혀들지 않았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이번 선거를 보면서 새정치연합에는 선거전략가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번 선거는 마치 프로와 아마추어가 대결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계파간의 고질적인 집안싸움도 새정치연합이 시급히 청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새정치연합에는 문재인계, 정세균계, 김한길계, 구민주계, ‘486’ 등 복잡한 계파가 똬리를 틀고 있다. 같은 계파가 아니면 서로 아는 척도 안 할 정도로 새정치연합의 계파 갈등은 심하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계파 갈등이 극에 달했다. 서로 똘똘 뭉쳐 싸워야 할 전쟁 중에 적 앞에서 분열상을 드러낸 것이다.

친노(노무현)진영의 홍익표 의원은 당 지도부가 동작을에 기동민 후보를 공천하자 “조기 전대를 통해 당을 정상화해야 한다”며 당 지도부를 흔들었다. 또한 민평련계인 기동민 후보와 정세균계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이 공천과 관련해 충돌하기도 했다. 허동준 전 위원장이 당직자와 멱살잡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TV로 중계되기도 했다.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야당이 열린우리당 이후 분열과 통합과정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계파가 양산됐다”며 “이번 재·보선 공천 참사 뒤에는 공천자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계파간의 치열한 갈등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이번 기회에 ‘창조적 해체’를 선언하고 야권 전체가 재편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꽤 있다. 새정치연합이 이번에도 개혁 시늉만 내고 ‘도로 새정치연합’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선거에서 지면 지도부 총사퇴-비대위 설립-조기 전당대회 개최-새 당대표 선출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그때뿐 당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 우상호 의원은 “이번에도 혁신기구를 만들어 쇄신하는 시늉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당의 위기 때마다 국민과 당의 소통을 확대하는 방안을 지도부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새정치연합 스스로가 판을 갈아엎고, 정의당 등 다른 진보정당과 함께 통합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패한 정의당도 존폐의 기로에 있다. 야권이 ‘새판짜기’를 할 경우 새정치연합, 정의당, 노동당의 통합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새누리당의 리모델링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처럼 지금 새정치연합을 이끌어갈 ‘김영삼·김대중’ 같은 리더가 없다”며 “차라리 이번 기회에 새정치연합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야권 재편을 시작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