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연구윤리 실종 셀 수 없을 만큼 만연”

김명수 사회부총리 후보자 사기ㆍ횡령 혐의로 고발한 현택수 사회문제연구소장

논문 표절, 연구비 부당수령, 제자 논문 가로채기 등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교수사회의 적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김 후보자를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56·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은 김 후보자와 같은 사람들이 학계에 많다고 지적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논문 표절, 대필 등 교수사회 내 연구윤리 문제를 지적해온 현 원장은 지난 9일 진행된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켜봤다. 그는 김 후보자의 여러 가지 발언을 “지식인 개그”라 칭하며 청문회 내내 “아이고,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냐”며 한숨만 내쉬었다고 말했다.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김 후보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지식인 개그’였다. 특히 개그의 압권은 표절의 새로운 정의를 내릴 때였다. 김 후보자는 ‘특수한 용어나 새로 만들어진 단어를 인용 없이 쓰는 경우가 표절’이라고 정의를 내렸는데, 그렇다면 기존에 발표된 글은 그대로 베껴도 된다는 말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표절을 당한 저자들에 대한 모독 아닌가. ‘네가 쓴 글은 새로운 게 없잖아. 그러니까 베껴서 써도 된다’ 이런 논리밖에 안 된다.”

현택수 전 고려대 교수가 기자에게 학계의 잘못된 연구 관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백철 기자

김 후보자가 제자들이 쓴 논문을 자기가 쓴 것처럼 속인 점은 어떻게 생각하나.
“제자들이 자신을 제1저자로 올린 것이라며 끝까지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시더라. 도둑 맞은 사람이 ‘저 도둑질당한 적 없어요’라고 말하면 범죄가 없어지나. 사실 저런 변명은 지난 10여년간 수도 없이 들었다. 표절을 당했다는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왜 그러냐는 식이다. 물론 저작권의 측면에선 원저자의 허락을 받았으니 문제가 없을 순 있다. 하지만 연구윤리의 차원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된다. 사실 김 후보가 제자의 논문을 공동으로 쓴 것도 아니고 심사한 것밖에 없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현 원장은 1999년 한 신문 칼럼에서 일부 학자들이 제자들과 공동으로 집필한 책을 단독 저서처럼 속였다고 지적했다. 실명을 쓰진 않았지만 책 제목을 표기해 사실상 실명 폭로를 한 거나 다름없었다. 당시 현 원장은 “교수들의 도둑질은 실제 저자들이 묵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략) 제자들은 학계를 떠날 각오가 없이는 피해사실을 폭로할 용기를 가질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본인이 굳이 나서서 고발장까지 낸 이유는 무엇인가.
“15년 전, 언론 기고문에서 공개적으로 학자들의 표절 저서를 고발했다. 내가 열심히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금껏 활동해 왔지만, 학자들의 연구윤리가 크게 개선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잘못된 교육계의 적폐를 바로잡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표절과 논문 가로채기를 앞장서서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후보자뿐만 아니라 학술지 발행인도 같이 고발을 했던데.
“김 후보자가 어떤 과정으로 논문을 썼는지는 청문회와 언론의 검증으로 많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논문이 어떻게 학회지에 실릴 수 있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김명수 개인의 비리일 뿐만 아니라 논문을 통과시켜준 대학과 학회의 비리도 밝혀내야 한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김 후보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논문에 출처를 불분명하게 단 것이 논란이 돼서 18일 만에 사퇴했다. 김 후보자에 비하면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일이었다. 이제 와서 김 후보자 같은 사람이 사회부총리가 된다면 그만큼 공직자 윤리가 후퇴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이렇게 역사관도 불분명하고 연구윤리에서도 문제가 있는 장관이 들어서면 결국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 지금 언론에서 나오는 것과 달리 김 후보자 임명이 강행된다면 그 밑에서 교육받기 싫어하는 국민들을 배려하는 제도가 같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녀들을 해외에서 가르치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 적극적으로 국가가 보조를 해줘야 한다.”(웃음)

인사청문회가 너무 신상털기 위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이렇게 청문회를 강하게 해야 제대로 된 인물이 젊었을 때부터 자기관리를 하게 된다. 그게 몇 십년 쌓여서 인성과 인품이 갖춰진 고위공직자가 되는 게 옳은 방향이다. 또한 학문적 목적이 아닌데도 학벌 세탁, 인맥쌓기용으로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학력 인플레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것도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표절은 없다>란 제목의 책을 냈는데, 제목의 의미는 뭔가.
“실제로 학계에 표절이 없다는 게 아니다. 표절 조사는 있지만 표절 판정이 나고 그걸로 학위가 박탈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연구윤리가 실종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재임용 심사 때 제출했던 논문을 승진 심사 때 또 써먹는 교수도 있다. 아직 학술지에 게재하지 않은 논문으로 한 번 평가받고, 게재된 다음에 똑같은 논문으로 또 한 번 평가받기도 한다. 사례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책을 한 권 썼다.”

프랑스 유학생 출신인데, 해외의 연구윤리는 어느 수준인가.
“외국 학자들이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는 기사를 본 적 있나.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 같은 경우도 표절이 일단 걸리면 시비가 생기기도 전에 바로 교수직에서 물러난다. 대학생도 리포트를 베끼기만 해도 중징계나 퇴학 조치를 받는다. 문제는 해외에서 학위를 받아오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한국의 연구윤리는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는 거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도 한국에 오면 빠르게 한국화가 된다. 표절 제보를 받아도 학회와 대학에서 표절이 아니라고 하면 제보자만 허탈하게 되는데 굳이 연구윤리를 지킬 필요가 없는 거다.”

학계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현재는 국내 논문만 검증하고, 해외에서 받아온 학위는 제대로 검증한 사례가 없다. 한국어 논문을 영어로 번역했거나, 반대로 영어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했을 경우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제자들로부터 연구원 내에 학자, 정치인들의 논문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는 연구진실검증센터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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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에서 표절 검증을 한다고 해도 검증의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말도 맞다. 우리 연구원에서 표절이라고 판정했는데 대학에서 아니라고 하면 우리만 바보가 된다. 지금은 A대학 교수 논문의 표절시비는 A대학에서 검증하는 식이다.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다. 여론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면 표절 판정이 잘 나오질 않는다. 표절 시비가 생기면 다른 대학에서 추천받은 인사들이 검증을 실시하거나 아예 정부 차원에서 제3의 검증기관을 꾸려 연구윤리를 바로세울 필요가 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