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규제완화 돌쇠 자임 거꾸로 가는 환경부

박 대통령 ‘규제는 암덩어리’ 한 말씀에 건강·환경 지키는 ‘착한 규제’ 완화 계획 쏟아내 ‘경제부처 도우미’로 전락

지난 1월 23일 서울신문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발표 자료를 인용해 ‘먹는 물보다 깨끗해야 하는 공장 폐수’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환경부의 엄격한 수질규제를 대표적인 ‘손톱 밑 가시 규제’로 꼽았다. 이 신문은 한강 상류 지역인 경기 이천시에 있는 한 음료 제조공장의 폐수에서 구리 검출량이 먹는 물에서나 나올 수 있는 정도인데, 환경부가 단속해 매출이 감소하는 등 큰 손해를 입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즉각 반발했다. 환경부는 즉시 보도 해명자료를 내고 “특정수질 유해물질은 미량으로도 인체 및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수질 오염사고 등으로부터 먹는 물의 안전관리를 위해 상수원 상류 일정 지역에 대해서 발생폐수(원폐수) 기준의 입지 규제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환경부는 “특히 구리의 경우 먹는 물 수질기준은 1PPM이나 생태독성이 강해 극미량(0.003∼0.008PPM)에서도 플랑크톤, 치어류가 치사에 이를 수 있고, 이로 인해 수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지난 2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환경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왼쪽부터)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메모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환경부의 이 같은 기조는 두 달여 만에 180도 바뀌었다. 환경부는 4월 3일 개최한 환경규제개혁회의에서 수질 등 환경질의 향상을 보장하는 환경관리기법을 적용하는 경우에는 배출시설의 입지를 허용하는 등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기존의 강력한 환경규제 입장에서 규제완화로 선회한 것이다.

“2016년까지 기존 규제 75% 일몰제”
‘착한 규제’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지켜야 할 환경부가 갑자기 규제개혁의 전도사를 자임하면서 ‘규제완화부’, ‘환경경제부’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환경부의 돌변은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덩어리”라고 선언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3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우리 경제의 암덩어리”라며 규제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지를 강도 높게 밝혔다.

환경부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듯이 규제완화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환경부는 4월 3일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 등 산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환경규제개혁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아침 7시 30분에 비공개로 열린 회의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참석자들에게 기업의 애로사항을 조기에 해결하고, 환경규제를 완화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실 이 회의는 환경부가 있는 세종시에서 이날 오후 3시에 열리기로 계획됐으나, 서울에서 이른 아침에 열렸다. 기업인 등 참석자들의 편의를 위해 장소를 급히 변경한 것이다.

환경부는 이 자리에서 환경부가 규제하고 있는 환경규제 849건 중 8%를 올해 안에 감축하고, 2016년까지 기존 규제의 75%에 일몰제를 적용하겠다는 목표도 천명했다. 또한 환경부는 홈페이지에 ‘규제개혁제안’ 코너를 개설하고, 규제개혁을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환경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환경규제개혁추진단을 발족했다고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산업자원부 같은 경제부처가 아닌 환경부가 이런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참석자들에게도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환경을 지키는 것이 조직의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타 부처에 비해 한 발 앞서 중소기업 등 수요자 입장에서 접근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밝혔다.

장하나 의원(왼쪽)이 4월 16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규제완화의 역습: 환경대란이 몰려온다!’는 주제로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순철 기자

환경부는 또 앞으로 산업계 및 유관협회 등과 수시로 민·관 규제개혁협의회를 열어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 해결방안을 논의해 주요 환경정책에 대한 상시 소통채널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환경규제를 전담하는 유일한 정부 부처인 환경부가 영리 추구가 목적인 기업과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데도 불구하고 ‘기업 프렌들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홍영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환경부가 기업을 데려다놓고 무엇을 풀어줬으면 하는지 물어봐야 하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며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환경규제는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에서 대규모 개발사업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 가능하도록 한 것도 환경부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개정안은 다른 법에서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한 번 거쳤으면 ‘환경영향평가법’에서 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해도 되도록 규정했다. 환경부의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9월 박 대통령 주재로 열렸던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 후속조치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른 법에서의 의견 수렴과 환경영향평가에서의 의견 수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반박한다. 즉 다른 법에서의 의견 수렴은 개발을 위한 입지 선정의 절차이며, ‘환경영향평가법’에서 의견 수렴은 개발 이후의 피해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환경영향평가법’에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는 국민 스스로 환경피해를 예방하고, 환경분쟁으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무력화하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환경평가 주민의견 수렴 생략 길 터줘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에서는 사업자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할 경우 환경부가 보완·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횟수를 2회로 제한했다. 기존에는 사업자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할 경우 환경부는 횟수에 제한 없이 보완·시정을 요구했다. 이 같은 까다로운 규정으로 인해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는 골프장 건설이 중지되기도 했다. 최근 이슈화됐던 강원도 홍천 구만리 골프장의 경우 당초 사업자가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 본안보고서가 부실해 원주지방환경청이 두 차례 보완조치를 요구를 했다. 이렇게 한 이후에도 하늘다람쥐 등 새로운 법정보호종이 발견되자 원주지방환경청은 추가조사 명령을 내렸다. 추가조사 끝에 강원도는 결국 구만리 골프장 건립을 취소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암덩어리’에 비유했다. 하지만 환경부문에서 규제는 ‘보호’라는 의미로 쓰인다. 특히 환경규제는 현 세대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다. 환경부의 규제완화 드라이브가 걱정되는 이유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