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김부겸의 ‘인품정치’ ‘대구의 마음’ 얻을까

박정희가 종교인 도시 공략 위해 ‘대구 시민의 언어’로 소통…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 등으로 호감 늘었지만‘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

김부겸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에토스(ethos)의 정치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방을 설득할 때에 필요한 3요소로 에토스(ethos)와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를 들었다. 에토스는 인격적인 측면으로 설득하는 사람의 명성·신뢰·호감을 의미한다. 로고스는 설득의 논리적 근거, 파토스는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를 뜻한다. 당내에서 김부겸이 어떤 정치인이냐고 물으면 대개가 “인품 하나는 정말 훌륭하지”라고 입을 모은다. 대선 때 김 후보는 문재인 캠프의 선대본부장이었다. 맨앞에서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우두머리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맨 아래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유의 대구 사투리로 “막내야, 이리 온나. 많이 묵어라”며 실무진을 다독였다. 계파정치가 유난스러운 야당에서조차 그는 ‘적이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계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그 인품으로 주변을 감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김부겸 대구시장 예비후보가 서문시장을 돌며 상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 후보는 40%가 넘는 득표율을 찍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18대 총선에서 수성을에 출마한 유시민 전 장관도 30%를 겨우 넘겼다. 박정희의 도시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40%의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다는 데에는 그가 대구 태생이고 대구의 유명한 ‘경북고’ 출신이라는 것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역시 사람을 감화시키는 특유의 인품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특별히 지역구 관리를 했다기보다는 지역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중점을 뒀다. 결국 이념을 초월하는 방법은 사람 관계다. 사람이 좋으면 이념은 다음의 문제가 되니까 ‘인간관계’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김 후보가 ‘대구 시민의 언어’를 쓰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한다. 민주당의 언어, 정치인의 언어보다는 대구 시민의 언어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념 지우고 인간관계로 신뢰 쌓기
김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내건 박정희컨벤션센터 설립도 지역민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대구의 언어’ 속으로 들어가려는, 김부겸만의 ‘에토스’가 녹아 있는 공약이다. 박정희가 ‘신’인 도시 대구에서 박정희를 인정하지 않고는 유권자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측 대구 관계자는 “대구 지역민들에게 박정희는 하나의 종교인 셈인데, 야당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대구가 ‘폐쇄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이러한 ‘에토스’는 대구 시민들에게도 전달이 됐다. 대구의 택시기사 김규석씨(62)는 “김부겸 후보가 인기도 많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택시기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면 새누리당 욕하면서 김부겸이 괜찮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박정희컨벤션센터도 여당이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야당 후보가 하겠다고 하니까 오히려 더 신뢰가 간다. 이제껏 새누리당을 대구에서 매번 찍어줬지만 다들 임기 끝나면 그만이지 한 일이 뭐가 있나”라고 말했다. ‘적이 없다’는 김 후보는 야당과 대구의 오랜 적대관계마저 풀어낸 셈이다.

그렇다면 김 후보가 적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을까. 김 후보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서 만난 최수성씨(70)는 김부겸에 대해 묻자 새누리당부터 비판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니까 새누리당이 대구를 안 밀어준다. 전매청, 조폐공사 다 서울로 빠져나가고 대구에는 뭐가 있나. 대기업이 내려와야 하는데 오지는 않고 죄다 투기하는 사람들만 와서 아파트값만 올랐다. 새누리당이 하는 게 없다”고 비판했다. 짐작했겠지만 최씨의 표심은 김 후보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더러워도 할 수 없이 새누리당 찍는 거지”라고 말했다. 최씨가 ‘더러워도 새누리당을 찍겠다’는 이유는 박정희 때문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 내놓고, 간호사·광부들 독일 보내고, 포철 만들고, 월남파병하고 해서 그나마 지금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것 아니냐”며 “박정희 시절, 전두환 시절이 그나마 대구가 제일 먹고 살 만했다”고 말했다. 예소근씨(70)도 “대구에서 새누리당을 밀어주는데 발전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김 후보를 찍을 생각이 있냐고 묻자 “늙은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면서도 새누리당을 찍을 수밖에 없다. 젊은 사람들은 김부겸을 찍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했다.

김 후보의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은 민주당에게 적대적이었던 지역민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는 있었어도 적을 자기 편으로 돌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듯 보인다. 대구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부겸 후보가 ‘박정희·박근혜 끌어안기’를 하고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김부겸이라는 인물은 오히려 안 보이고 있다”면서 “경북도지사 출마하면서 시 이름을 박정희시로 바꾸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컨벤션센터 하나 짓는 게 대구 사람들에게 뭐가 그렇게 매력적일까. 더군다나 지금 대구 엑스포 건물도 적자 투성이인 상태에서 또 하나의 적자 건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도 크게 긴장한 기색은 아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이 우리 표를 가져가지는 못할 것 같다. 솔직히 그런다고 대구 시민들이 마음을 돌리겠나”라고 말했다.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은 표로 연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김부겸 본인의 이야기를 가렸다는 분석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김부겸의 ‘에토스’에 김부겸 본인만의 ‘로고스’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친여 정서 워낙 뿌리 깊어 설득 난제
그렇다면 김부겸은 그저 좋은 인품을 지닌 ‘에토스’만의 정치인이었을까. 김부겸은 연설에서만큼은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도 앞선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논리적인 연설로 유명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2006년 국회에서 그가 했던 ‘각자다운 정치’라는 연설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 연설에서 김부겸 ‘로고스’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김부겸은 “언론법, 사학법, 신행정수도특별법 등 모든 갈등을 이념의 차원으로 환원시켜 대립을 일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라면서 ‘상생’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때부터 정치인 김부겸에게 로고스는 ‘상생’이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프레임이 전략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 정치권의 관계자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화합이라는 것이 대구 시민들에게 와닿을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점점 악화되는 대구 경제에서 먹고 사는 문제, 기득권층과 서민층의 양극화를 바로잡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일수록 그것에 따라 표심이 움직일 수 있는데, 민주화·산업화로 프레임을 잡다 보니 그러한 열기나 에너지가 전혀 생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로고스’가 안 보이다 보니 선거판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파토스’ 또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구 서문시장 앞에서 만난 자영업자 최재성씨(52·가명)는 대구 태생이지만, 지금까지 자신은 당을 가리지 않고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이면 무조건 찍어준다는 대구 정서를 비판하면서 “대구 사람들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먹고 살기만 더 힘들어졌지 새누리당이 대구에 뭐 해준 게 있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구 정치에 대한 최씨의 환멸은 새로운 인물에 대한 희망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최씨는 “지방선거에 관심 없다. 김부겸씨가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대구 시민사회에서는 김 후보가 유례없이 새누리당에 경쟁력이 있다 보니 관대하게 바라보는 점은 있다. 그러나 이번에 내건 공약을 보면서 실망한 사람도 많다. 찍을 사람 없으니 안 찍고 말지라는 것”이라면서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은 사실 넘어서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면 낙선운동 대상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정치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임인데, 설득의 3요소 중 로고스와 파토스를 놓쳐버린 김 후보가 과연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