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시 떠오른 의문사 논란]국가기관 비협조 아직도 ‘감춰진 진실’ 많다

의문사위 조사 활동에 국정원 기무사 ‘완강’ 경찰 검찰은 ‘비호의적’

군사독재 시절 국가권력이 자행한 의문사와 고문·상해·투옥 등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국가기구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해 활동한 바 있다. 2000년 활동을 시작해 2004년 12월 해산한 의문사위와 그 뒤를 이어 2005년 발족한 진실화해위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는 성과를 보였지만 정보·수사기관의 비협조와 한시적으로 존속한 기구 자체의 한계 때문에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진실 규명의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의문사위와 진실화해위에서 민간 출신 조사 실무자로 활동한 김학철씨는 조사 기간 내내 피진정기관의 비협조로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을 조사할 때 가장 핵심적인 자료였던 선생의 사망 당일 행적 기록을 국가정보원에서 보내주지 않았다. 다른 날짜의 기록은 주면서 유독 그날의 기록만 빼고 보내는가 하면, 다른 자료들도 엉뚱한 것으로 바꿔치기해 보내기도 했다. 조사 기간이 다 지나 보고서 작성까지 완료된 시점에 자료를 보낸 적도 있다. 기무사령부에 실지조사를 나갔을 때는 ‘문서고를 폭파시키면 했지, 보여줄 수 없다’고 나오는 데도 별 수가 없어 돌아선 기억도 있다.”

의문사유가족대책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8월 21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독재정권 과거 청산을 외면하는 새누리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태도는 모든 관련 기관이 비슷했다. 국정원과 기무사가 가장 완강했고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도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의문사위가 활동 성과를 정리해 제출한 ‘의문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자료에 대한 협조의 지연이나 사실상 자료에 대한 접근을 거부하는 등의 비협조적 대응’이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큰 요인이었다. 공직에서 물러나 민간인으로 돌아간 뒤에도 전직 요원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의문사위에서 조사과장을 맡았던 이형진씨(현 민주노총 인천일반노조 부위원장)는 “사건 관계자들을 찾아가면 ‘멸사보국의 자세로 충성을 다해 지시대로 수행했는데 이제 와 왜 그 일들에 대해 잘못을 묻냐’며 증언이나 출석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잦았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나오면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심정은 물론이고 과거 청산의 취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양심고백이 있었다면 조사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협조지연, 자료접근 거부 다반사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모든 자료를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가능한 한 은폐 없이 자료 제출에 협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원 소속 기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도 조사의 걸림돌이었다. 이씨는 “민간 출신 조사관과 파견 조사관들 사이의 인식차가 있긴 했지만, 파견 조사관들도 소속 기관의 과거 과오에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임해 적잖은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결국 파견 기간이 지나면 원 소속 기관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어서 기관으로부터 가해지는 암묵적인 압력 때문에 난처하다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의문사위는 조사기구 자체의 한시적 성격 때문에 의문사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도 전에 조사기간이 끝나버리는 문제점도 있었다. 1·2기로 나뉘는 의문사위 활동 기간 중 1기에서 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30건을 포함해 2기에서 44건을 재조사했지만 그 중 24건은 결국 진실 규명에 실패했다. 또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의문사로 규명 범위를 한정한 나머지 다른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선 조사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의문사위 해체 직후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최초 4년의 조사기간을 보장받은 뒤 기간을 연장해 2010년 6월까지 활동했다. 의문사위의 조사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국가폭력 전반을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용해 인권침해 사례 전반을 조사하게 된 진전도 있었다.

김학철씨는 “진실화해위가 의문사위의 한계를 보완하긴 했지만 상시적인 기구로 존속하지 못한 것은 큰 문제다. 과거에 묻힌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 국가와 개인은 대등하지 않다. 과거의 과오에 대한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저지르지 않은 사건도 있겠지만 그것을 해명하는 것까지도 국가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60·70년대의 의문사 가운데 상당수가 여러 정황상 심증은 가지만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해 규명 불능으로 결정됐다.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 관련기관을 압수수색해서라도 밝혀내고 싶었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려 수사의뢰도 불가능했다”며 대책을 세울 수 없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부 파견 공무원은 소속기관 눈치보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진실 규명 활동도 부침을 겪었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의문사위는 각 기관에 여전히 남아있는 보수적 정서와 싸워야 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 이르면 의문사위에서 민주화운동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의견을 무릅쓰고 비전향 장기수의 의문사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인정하는 등 보다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고, 진실화해위도 보다 폭넓게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추세였다. 현재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비롯해 60·70년대 의문사 사건 관련 논의가 불붙는 것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고 할 순 없다.

“진실 규명작업 자체가 정치적 상황에 우선하는 국가의 의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의문사위나 진실화해위가 출범해 활동한 것이 당시의 정치현실을 떠나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유가족들의 끈질긴 싸움이 있었고, 정권교체를 통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열린 것이다.”

김씨는 대선을 앞둔 정치현실과 유력 대권후보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 피해를 당한 유족들이 5·16 쿠데타 직후 또다시 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은 사례를 진실화해위에서 규명했다. 국가폭력 때문에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그 억울함에 누명까지 씌운 것이다. 한 분은 진정을 냈다가 취소한 적도 있다.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국가기관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불신이 계속됐던 것이다. 연좌제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유족들이 대선을 앞두고 나서는 것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과 풀리지 않은 한을 다음 정권에서는 꼭 해결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