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손학규 대 박근혜’ 양강구도 되나

손대표 재·보선 승리로 박 전대표와 격차 크게 좁혀질 듯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온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손 대표가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당당히 승리했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동안 취약했던 당내 기반을 확고히 다지게 됐고, 침체됐던 대선주자 지지율도 다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내년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양강구도가 굳어졌다고 점치기도 한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손학규 대표의 지지율이 앞으로 20%까지는 올라갈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대선구도는 손학규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간의 양자구도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재·보선 다음날인 4월 28일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야 대선후보군 가운데 손 대표의 지지율은 13.5%를 기록, 8.5%였던 지난주에 비해 5.0%포인트나 상승했다.

(왼쪽)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4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지원 원내대표로부터 의원 배지를 받고 있다. |김정근 기자 (오른쪽)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방문길에 오른 4월 28일 출국에 앞서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배웅 나온 인사들과 환담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만약 손 대표의 지지율이 20%대로 올라서고,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현재 대선주자들 중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30% 초·중반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박 전 대표와 손 대표는 한자릿수 지지율 범위에서 각축을 벌이게 된다. 특히 여기에 박 전 대표의 지지자들 중 고정지지층(25%)이 아닌 중도층(10%)이 박 전 대표 지지 입장에서 손 대표 쪽으로 이동하면 양강구도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박 전 대표의 지지율 35% 중 25%는 확실한 지지층이며, 10%는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지금까지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큰 의미가 없다”며 “전통적인 양당구도인 우리나라 정치구조상 대선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여당과 야당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거의 오차범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직후 대선후보 지지도가 15%까지 올라갔지만 그 이후 지지율이 계속 떨어져, 5~8%에 머물고 있었다. 반면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가 10~14%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손 대표의 자리를 메웠다. 그러나 유시민 대표는 김해을 선거 패배로 깊은 상처를 입게 됐다.

민주당 장악력도 크게 높아질 듯
이와 함께 손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 당 대표로 그동안 느슨했던 당에 대한 장악력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과 사실상 분점했던 지도체제도 손 대표 1인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분당대첩’을 치르면서 손 대표 쪽으로 합류한 의원 20여명을 확보했다. 여기에 당내 비주류연합체인 쇄신연대도 해체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손 대표에게 분당을 출마는 로또복권이나 다름없었다.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손 대표 측근들조차도 “손 대표가 분당을에 출마하면 더 이상 보지 않을 것”이라며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손 대표는 분당을에 그의 정치생명을 걸었다.

선거 결과를 분석해보면 한나라당 출신 손 대표에게 분당을은 기회의 땅이었다. 그가 분당을에서 승리한 것은 손 대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이 지역은 한나라당의 초강세지역으로 민주당은 제대로 된 조직도 없던 불모지였다. 분당을만 놓고 보면 이 지역 주민들은 서울 강남보다 학력이 훨씬 높고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된 곳이다.

또한 분당을 지역은 40대 이하의 인구비율이 67%이며, 대졸자 이상의 학력층이 무려 86%에 이른다. 사실 이 지역에 와서 웬만한 정치인이 유식한 척해봐야 먹혀들지 않는 이유다. 적어도 손 대표 정도의 경력이 있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손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와 서강대 교수, 경기지사 등을 역임했다. 게다가 손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운동권 경력(6·3세대)도 있다. 이 정도의 이력이면 분당을 지역에 사는 30~40대 인텔리전트를 압도할 수 있는 것. 때문에 손학규 후보 캠프에서는 민주당이 아닌 손 대표를 상품화시켰다. 선거 기간 내내 상대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도 하지 않았다.

이같은 전략은 딱 맞아떨어졌다. 분당을에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49.1%라는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이는 ‘넥타이 부대’로 대변되는 30~40대가 손 대표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실정도 한몫 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 지역의 30~40대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이번에는 ‘반MB(이명박)’ 전선의 최대 동력이 됐다. 이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신뢰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는 이들에게도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이번 재·보선 결과를 보면 중산층이 이명박 정권을 외면한 것으로, 현 정권의 국정운영 실패를 심판한 것”이라며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철저하게 쇄신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과 대선도 어려울 것”라고 말했다.

또한 분당 주민들 기저에는 1년짜리 국회의원보다는 ‘경기도 출신 대선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동안 수도권 출신 대선후보로는 이한동 전 총리가 있었지만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대통령은 영호남 출신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안심은 금물, 승부처는 곳곳에
지금은 비록 손 대표가 재·보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지만 앞으로 대선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는 말로 대변되듯이 정치지형에서는 항상 예기치 않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손학규 대표 앞에는 내년 12월 대선까지 10여차례의 크고 작은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승부사로서 그가 기질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가 아직도 많다는 것. 특히 그에게는 야권연대 성사→총선 승리→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승리→야권 단일후보 쟁취 등의 녹록지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사실 손 대표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도 기회를 잡았으나 본인 스스로 놓치는 악수를 범하기도 했었다. 지난 2007년 손 대표는 민주당(당시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초기에 전북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경쟁자였던 정동영 후보는 자신의 아성인 전북에서만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경선이 시작되고 후보들 간에 세 확장 싸움이 가열되면서 상대적으로 조직이 약했던 손 대표는 조직싸움에 밀렸으며, 중간에 경선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당시 손 대표는 제주·울산·강원 경선을 거쳐, 충북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패하며 자신의 선대본을 해체하고 잠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정동영 후보가 손 대표를 누르고 제1야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지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과정에서 후보들의 네거티브 선거를 이유로 손학규 대표가 자충수를 뒀다”며 “내년 대선과정에서 손 대표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만 보고, 국민을 믿고 앞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