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느림의 미학, 아니 전략

올해 프로야구에서 가장 기대됐던 선수는 전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입니다. 하지만 SSG 랜더스 추신수 선수의 타율은 2할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할 7푼대인 메이저리그(MLB) 평균 타율보다 훨씬 낮습니다. MLB를 씹어먹던 추신수 선수가 한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로 투수들의 ‘느린 볼’을 꼽습니다. 시속 150㎞대 볼을 상대하다가 130~140㎞대 볼을 치려 하니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야구에서 투수가 포물선을 그리며 느리게 던진 볼을 ‘이퓨스’라고 부릅니다. 일명 ‘아리랑볼’이라고 부르는 볼입니다. 그런데 강타자들도 때때로 이퓨스에 골탕을 먹습니다. 치기 쉽게 보이지만 막상 쳐보면 배트가 헛돌기 십상이라고 합니다. 욕심을 낼수록, 힘이 들어갈수록 잘 안 맞습니다.

두산 베어스 유희관 선수의 느린 볼도 유명합니다. 유희관 선수에게 특히 약한 팀이 롯데 자이언츠입니다. 성질 급한 ‘부산 싸나이’들이 느린 볼을 기다리지 못하고 ‘쎄리다’가 죽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썰’이 있습니다. 느림은 미학이 아니라 때론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과 휴일, 도심은 북적댔습니다. 서울 연남동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지인의 후배는 “매출이 거의 평상시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맛집은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TV의 코로나19 속보는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에 뜨는 확진자 정보에도 심드렁해졌습니다. 하지만 매일 600~700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상당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상 속 감염입니다. 사망자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1년하고도 4개월이 넘어갑니다.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마음껏 친척이나 친구를 만날 수도 없습니다. 여행이 우리를 떠난 지도 오래됐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백신을 맞고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백신을 맞았다고 해도 코로나19로부터 완전해방이 되는 건 아닙니다. 변이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급습해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최근 마스크를 벗기 시작한 미국 역시 이를 ‘실험’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만 청정해진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에서는 최근 들어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쿄올림픽은 아예 취소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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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좀더 참는 수밖에 없습니다. 답답하더라도 마스크를 꼭 끼고 손을 자주 씻는 게 여전히 정답입니다. 4인 이상 모임을 피하고 거리 두기도 계속해야 합니다. 어쩌면 느리게 가는 게 가장 빨리 코로나19를 종식시키는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답답해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지금이 동트기 전 가장 어두웠을 때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잘해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