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마무리투수 판도가 달라진다

올해 처음으로 팀의 마무리투수로 나선 SK 하재훈, LG 고우석, NC 원종현. 세이브 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3명의 투수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팀의 뒷문을 지키고 있다.

KBO리그에 새바람이 분다. 세이브 순위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시즌 세이브 1위는 35세이브를 올린 한화 정우람이었다. 뒤를 이어 롯데 손승락(28세이브), 두산 함덕주(27세이브), LG 정찬헌(27세이브), 넥센 김상수(18세이브)가 5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하재훈 / 연합뉴스, 고우석 / 이석우 기자, 원종현 / 이석우 기자 (사진 왼쪽부터)

6월 11일 현재 키움 조상우가 18세이브로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17세이브를 올린 NC 원종현이 2위, SK 하재훈이 14세이브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LG의 마무리도 고우석으로 얼굴이 바뀌었다. 지난해에 이어 그대로 순위권에 있는 선수는 15세이브를 올린 두산 함덕주뿐이다. 이렇게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새 마무리투수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팀의 뒷문을 지키고 있다.

미국서 돌아온 하재훈, 타자에서 전업

최근 SK 불펜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는 하재훈이다. 하재훈은 지난 4월 4일 롯데전부터 6월 7일 삼성전까지 27경기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오승환(콜로라도)이 삼성 소속으로 있던 2011년 세운 31경기 무실점 기록도 노려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재훈이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아보는 선수라는 점이다. 경남 마산 용마고 출신인 하재훈은 2008년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의 주포지션은 외야수였다. 시카고 컵스에서는 2013년 마이너리그 트리플A까지 올라갔지만 메이저리그 입성에는 실패했다. 7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빅리그에 대한 꿈을 접은 하재훈은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2016년 일본으로 건너가 야쿠르트에 입단했다. 1군에서 17경기에 뛰었지만 시즌을 마치고는 팀을 떠나야 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 하재훈은 지난해 9월 열린 2019년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해 2차 2라운드 16순위로 SK에 입단했다. 당시 SK는 하재훈을 ‘외야수’가 아닌 ‘투수’로 지명했다. 하재훈은 지명 당시 SK의 선택을 바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하재훈에게는 투수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마이너리그 시절 임창용(은퇴)의 조언으로 잠시 투수 전향을 고민해보기도 했던 터. 이번에는 구단의 전문적인 지원을 받고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그리고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하재훈은 등판 첫 경기였던 3월 23일 KT전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올렸다. 3월 29일 키움전에서 첫 홀드를 챙긴 하재훈은 4월 26일 KT전에서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기존 마무리투수였던 김태훈이 부진하면서 하재훈이 본격적으로 뒷문을 맡기 시작했다. 올시즌 32경기 31이닝 동안 단 4실점밖에 하지 않았다. 평균자책점은 1.16이다.

돌고 돌아 한국 무대로 돌아온 하재훈은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의 ‘늦깎이’ 신인이다. 그럼에도 하재훈은 올 시즌 리그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루키’ 중 한 명이다.

임시 보직에서 주전 마무리로 고우석

LG 고우석은 프로 데뷔전부터 강렬했다. 2017년 4월 16일 잠실 KT전에서 선발 차우찬에 이어 6회 등판한 고우석은 최고 150㎞의 직구를 뿌리며 LG 팬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그가 보여준 공은 단 21개에 불과했지만 고우석이 LG가 그토록 원하던 강속구 투수임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신예답지 않게 포커페이스까지 보였다. 마치 오승환을 떠올리게 하는 투구였다. 실제로 고우석은 이날 경기가 끝나고 오승환을 롤모델로 꼽으며 “임팩트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의 바람이 이뤄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고우석은 그해 25경기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에는 2배가 넘는 56경기에 등판했으나 평균자책은 5.91로 더 치솟았다.

기회는 그러나 생각지도 못할 때 찾아왔다. 고우석은 지난 4월 21일 잠실 키움전에서 5-3으로 앞선 9회초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프로 데뷔 첫 세이브를 올렸다. 기존 마무리인 정찬헌이 재활군으로 내려가면서부터 이 자리에 공백이 생겼다. 팀원 전체가 고우석이 이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정작 스스로는 ‘설마’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경기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분위기가 그를 향해 집중됐다. 최일언 투수코치와 경헌호 투수코치가 이야기를 하자 그제서야 알게 됐다. 그리고 고우석은 마무리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했다. 당시만 해도 “정찬헌 선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잠시 마무리로 뛰는 것뿐”이라며 “찬헌 선배가 돌아올 때까지 확실히 막는 게 목표”라며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

그의 생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정찬헌이 돌아온 뒤에도 고우석은 계속 팀의 뒷문을 지켰다. 원래 150㎞를 웃도는 직구를 던져온 그가 제구력까지 뒷받침되기 시작하자 뒷문이 더욱 견고해졌다. 고우석의 활약에 힘입어 LG 불펜은 평균자책점 2.87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원종현은 올 시즌 정식으로 팀의 마무리투수를 맡게 됐다. 시즌 시작부터 마무리 보직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크게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150㎞ 넘는 공을 뿌리는 그는 시즌 중·후반에도 종종 경기 후반에 기용돼왔던 투수였다. 대장암에 걸려 2015시즌을 통째로 날렸지만 병마를 이겨내고 돌아온 뒤에도 꾸준히 강속구를 뿌리며 마운드를 지켰다. 이런 원종현이 주로 쌓은 기록은 홀드였다. 그는 2017년에는 22홀드로 이 부문 리그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17홀드로 리그 4위, 지난해에도 17개의 홀드를 따내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지난 시즌까지 통산 세이브 개수는 6개에 불과했다. 올해에는 마무리투수로 낙점돼 본격적으로 세이브를 쌓기 시작했다.

포수 양의지와의 인연도 주목받는 부분이다. 양의지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4년 125억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NC로 이적했다. 양의지는 NC 입단 기자회견 당시 가장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투수로 원종현을 꼽았다. 1987년 동갑내기인 데다 경찰청 시절 함께 호흡을 맞춰본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라고 했던 친구와 한 팀에서 뛰게 됐다.

원종현으로서는 여러모로 동기부여가 되는 한 시즌을 맞이했다. 그는 개막을 앞두고는 “지난해 팀 성적과 개인 성적 모두 많이 떨어졌는데 긴장감을 가지고 준비했다. 팀 성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마운드에 오를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역경을 거쳐오면서 단단해진 원종현은 더욱 더 견고한 뒷문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계획이다.

<김하진 스포츠부 기자 h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