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벤처캐피털 기업 아토미코(Atomico)의 2020년 보고서를 보면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수가 인구 10만명당 약 0.8개로 1.4개인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같은 회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당 스타트업 수는 429개로 유럽 내 6위에 올라 있다. 스타트업 분석기관 ‘스타트업게놈’은 2019년 스웨덴을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 세계 8위에 올렸다.
스웨덴은 인구 95%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한다. 인터넷 속도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세계경제포럼이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화된 나라다. 자율적이고 관료주의의 문제도 거의 없다. 국민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18세부터 64세까지 전 연령대의 65%가 창업을 꿈꾼다.
튼튼한 복지와 기업 간 상생
스웨덴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인구 1000만명의 국가다. 국토는 남한의 4.5배다. 수도 스톡홀름의 인구는 100만명에 불과하다. 크지 않은 나라임에도 스웨덴을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안전하며 부유한 국가의 하나로 꼽는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스웨덴은 수년째 스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은 어떻게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적인 유니콘 탄생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을까.
첫째, 튼튼한 복지가 기반이 됐다. 스웨덴은 복지국가답게 실업수당, 육아수당 등 다양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로 이어졌고, 창업에 나설 용기를 만들었다. 발명자의 특허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대학교수의 산업체 겸직과 파견 근무를 허용했다. 대학 창업이 용이해졌다. 국민은 창업을 기회의 장으로 인식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 1000명당 20개의 스타트업이 창업해 터키와 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았다. 스타트업의 3년 생존율은 74%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둘째, 성공한 창업기업과 신생 창업기업 간의 상생문화다. 스웨덴처럼 작은 나라는 대학과 기관, 기업이 서로 지식을 공유하는 문화가 활성화돼 있다. 성공한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는 문화이기도 하다. 상생문화의 핵심은 노르스켄 하우스(Norrsken House)다. 2016년 유니콘 스타트업 클라르나(Klarna)의 창업자가 설립한 비영리 재단인 노르스켄 재단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세운 기관이다.
노르스켄 하우스는 일상의 불편을 해소하거나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한다. 건강한 사회 시스템을 만들려는 정부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2019년에 설립한 더 팩토리(The Factory)는 100개가 넘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등이 모여 있는 북유럽의 최대 혁신 기술 허브다. 디지털 혁신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에피센터(Epicentar)에는 연중 세계적 수준의 워크숍과 국제적인 강의가 열린다.
체계적인 창업지원과 규제 완화
셋째, 다양하고 체계적인 창업지원 정책이다. 정부는 기술혁신청을 통해 매년 약 405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며 기업 및 공공부문의 혁신을 촉진한다. 그 결과는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분석한다. 지자체도 창업을 지원한다. 웁살라 혁신센터가 대표적이다. 웁살라시, 웁살라대학, 웁살라 지역 중소기업들의 협력으로 설립 운영되며 단계별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 창업한 기업의 생존율은 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도 스타트업 성장의 기반이 됐다. 1990년 이전 공기업 독점으로 규제가 심했던 경제에서 벗어나 각종 규제를 완화해 민간기업이 경쟁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 1993년 외국인이 스웨덴 기업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도록 보호주의 법률에 대응하는 경쟁법을 만들어 외국 기업들도 스타트업을 인수합병할 수 있게 했다. 법인세도 1991년 30%에서 2020년 22%로 낮춰 창업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2000년에는 상속세와 부유세를 없애 여유 자본을 가진 부자들이 엔젤 투자자로서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스웨덴 대기업들은 수익의 3분의 2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혁신이 회사의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내수보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 전략도 볼보, 이케아, H&M 등 세계적인 브랜드가 탄생하는 기반이 됐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전에 제품의 글로벌화 가능성을 중요하게 본다. 나라 전체가 혁신을 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
정부는 국민의 컴퓨터 사용은 물론 디지털식 사고방식을 지향하는 기업들에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했다. 1990년부터 컴퓨터를 사면 세금을 깎아주는 방법으로 컴퓨터 보급률을 높여 디지털 사회로 거듭났다. 인구의 95% 이상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이 같은 초고속 인터넷 정보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유니콘으로 스포티파이(Spotify)와 클라르나(Klarna)가 있다. 세계 최고의 음원 기업으로 음악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스포티파이는 5000만곡의 음원과 3억명의 사용자에 1억명 이상의 유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스타트업 클라르나는 유럽 18개국 6000만명의 소비자에게 지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들도 후불결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선구매 후결제’ 시장을 이끌고 있다.
디지털 의료 서비스 부문의 선두업체로 환자와 의사 간의 온라인 화상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라이(Kry)도 있다. 2020년 기준으로 140만건 이상의 진료를 기록했는데 스웨덴 전체 일반 진료의 2%를 차지한다. 틴크(Tink)는 은행과 금융기관이 고객들에게 정보기반의 재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오픈뱅킹 플랫폼을 지원하는 핀테크 기업이다. 노스볼트(Northvolt)는 2016년 테슬라의 전직 매니저인 피터 칼슨이 설립한 리튬이온전지 생산기업이다. 창업 3년 만에 폴크스바겐, BMW, 골드만삭스로부터 1조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해외 기업이 인수합병한 유니콘도 많다.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가 85억달러에 인수한 스카이프와 역시 마이크로소프트가 2014년 25억달러에 인수한 마인크래프트의 제작사 모장(Mojang)이 대표적이다.
<전규열 서경대 경영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