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 취재는 두달간 미얀마 몽유와 시민들과 SNS 메시지, 화상전화 등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현재 미얀마 군부는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의 취재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몽유와 시위대의 상징인 오토바이 시위대 / 몽유와 파업 위원회

미얀마 몽유와는 저항의 해방구였다. 기자가 처음 몽유와라는 작은 농촌 도시 이름을 들은 것은 지난 3월 초였다. 수도 양곤이 연일 저항 시위로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반면 우연히 듣게 된 생소한 이름의 도시, 북쪽의 몽유와라는 곳이 저항 시위가 아주 심하다는 것이다. 지도를 펴보니 몽유와라는 곳은 미얀마의 제2 도시인 만달레이와 가까웠다. 몽유와가 왜 그렇게 저항 시위가 활발한지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몽유와의 학생조직과 연락이 닿았다.

몽유와는 인구 37만명(2014년 기준)으로 양곤의 약 20분의 1 수준이다. 미얀마 북부의 사잉주에 속하며 만달레이에서 서북쪽으로 차로 2시간 정도 달리면 나오는 도시다. 지난 2월 1일 군부쿠데타가 일어났고, 일주일 후인 2월 7일 이 몽유와에서 첫 저항 시위가 생겼다. 그후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저항 시위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있다. 양곤의 T기자에 의하면 “몽유와의 저항 시위가 그렇게 심한데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양곤의 기자들이 그곳까지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군경들이 길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그렇지 않아도 기자들 검거에 열을 올리는 터라 위험을 무릅쓰고 몽유와까지 갈 수가 없었다”며 몽유와의 거센 저항 시위가 초창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몽유와 시민의 시위 소식은 SNS나 유일한 몽유와 지역 언론인 몽유와 가제트 등을 통해 조금씩 알려졌다.

몽유와의 시위를 처음 주도한 이들은 기자가 연락이 닿은 학생조직이었다. 몽유와에는 종합 대학교 1개와 5개의 단과 대학이 있다. 2014년에 몽유와대학, 경제대학, 기술대학들이 합쳐 대학생연합조직이 생겼다. 이후 2014~2015년 대학생 파업도 주도하며 이들 조직은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현재 쿠데타 이후 운영되고 있는 파업위원회(Strike Committee)는 그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조직의 전 연합지도자와 저항 시위로 모인 새로운 지도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2월 7일부터 시작된 쿠데타 반대 시위는 모든 몽유와 시민이 거의 매일 길거리에 나왔다고 할 만큼 거셌다. 시민은 시민불복종 운동(CDM)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현재까지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학생조직과 오토바이 시위대 활약

몽유와 시위대의 상징은 오토바이 시위대이다. 지난 2월 6일 오후 군부가 인터넷을 차단했다. 서로 소통이 어려워지자 수백대의 오토바이 시위대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가 갑자기 들리면 시위가 시작됨을 감지한다. 인터넷이 끊긴 후 가상 사설망(VPN)을 써야 하는데 한달에 우리 돈으로 4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농촌 도시인 몽유와에서는 큰돈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한 시위 시간을 공지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이 오토바이 소리로 시위가 시작됨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첫 시위가 2월 7일부터 시작되며 수많은 사람이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모였다. 몽유와 학생조직에서 활동하는 S씨는 “우리는 첫 시위 때부터 몰려든 인파에 감격했다.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구호를 만든 이도 없고 행사 순서를 만든 이도 없었다. 그날 군부를 막아내자는 의지만 있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현재도 몽유와는 군경의 강력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도 이 시위가 안 열린 날이 없다.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운집한 몽유와 시민들 / 몽유와 파업위원회

계속되는 시위 속에 군경은 시위대 진압을 시작했다. 그러자 몽유와 시내를 가로지르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두 지역으로 나뉘었다. 철도역 앞쪽과 뒤쪽 이렇게 두개 지역으로 나뉘었다. 철도역 뒤쪽은 군인과 학생들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시위현장이 됐다. 반면 철도역 앞쪽은 평소대로 시장도 열리고 가게도 문을 여는 몽유와 일상 모습이다. 하지만 시위가 한창 열리면 철도역 앞면에서 채소와 과일을 사고팔던 시민들이 철도 레일을 가로질러 시위대에 참여한다. 그렇게 시위대에 합류했던 시민들은 군경의 진압이 거세지면 다시 철도역 앞쪽으로 나와 채소를 팔며 시위대가 아닌 척해 그를 쫓아온 군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몽유와 철도역 앞에서 상점을 하고 있는 한 시민은 “우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언제 들리나 기다리다가 그 소리가 들리고 시위가 시작되면 바구니를 들고 철도역 나무 사이로 바구니를 숨기고 철도 뒷면으로 간다. 그리고 시위대 본대로 합류했다가 군인들에게 쫓기면 다시 숨겨놨던 바구니를 찾아 철도역 앞쪽으로 도망가 가게에 앉아 있는다”고 말했다. 시민이 시위대이고 시위대가 시민인 몽유와식 숨바꼭질 시위였다. 마치 도시 전체가 짜고 군경을 따돌리는 식이다. 그러자 군인들이 철로에서 본시위대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사람들을 검문하고 체포하며 휴대폰을 검열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몽유와와 철도역 주변은 넓고 나무도 무성해 일일이 다 막기가 쉽지 않다. 몽유와 사람들은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어떡하든 본시위대에 합류하며 군인들과 숨바꼭질하며 두달 넘게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몽유와 시민들 앞에서 연설 중인 웨이 모 나잉, 일명 ‘리틀 판다’(위)와 시위에 참여한 몽유와 시민들 / 몽유와 파업 위원회

혜성처럼 등장한 웨이 모 나잉

몽유와 시위가 매일 열리며 혜성처럼 등장한 히어로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웨이 모 나잉. 일명 ‘리틀 판다’로 불리는 26세의 청년이다. 그는 몽유와 출신으로 지난 2월 1일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생회장을 지냈고,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 조직의 리더를 했다. 미국학교가 후원하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덕에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추기도 했다. 쿠데타가 발생한 날, 그는 양곤에는 자기 말고도 여러 사람이 시위를 주도할 것으로 생각하고 고향 몽유와로 돌아왔다. 그리고 첫 저항 시위가 일어난 2월 7일 몽유와 시의 ‘따르시’ 시장 앞에서 첫 연설을 했다. 그는 “군부의 쿠데타에 저항하며 몽유와 사람들이 시민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며 그날 모인 군중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그의 연설은 삽시간에 몽유와 전역에 소문이 났다. 시위 때마다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구름처럼 인파가 몰렸다. 몽우와의 한 시민은 “몽유와는 예전부터 반골기질이 강한 도시다. 판다의 연설은 그런 우리 시민들에게 기름을 부은 듯 활활 타올랐다”고 표현했다. 판다의 소문은 미얀마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미얀마의 영웅이 됐다.

3월이 되자 양곤처럼 몽유와도 군부의 반격이 심해졌다. 심각한 군경의 감시로 인해 몽유와 시위대가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각자 동네에서 작은 모임으로 치고 빠지는 시위를 이어갔다. 군부의 국영 방송 MRTV에 따르면 판다는 군부의 주요 수배자 20명 중 한명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위 때 갑자기 나타나 명연설을 하고 사라졌다. 그렇게 신출귀몰하며 군경의 체포를 피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판다에 대한 인기는 엄청났다. 그는 미얀마 시위의 슈퍼스타였다. 그의 연설은 유튜브에 오르고 인터넷에는 그의 행적이 회자됐다 양곤에서 활동하는 C기자는 “미신을 많이 믿는 지방의 사람들은 그가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굳게 믿었다. 군부가 그 주변을 샅샅이 파헤치는데도 그 작은 도시에서 판다 한 사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장군의 뒤를 잇는 지도자로 사람들은 입에 오르내렸다. 군부쿠데타로 갑자기 정전된 듯 암울해진 미얀마 시간에 그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돼주는 듯했다.

군인에 맞서 새총으로 무장한 시민들 / 몽유와 파업위원회

3월이 지나면서 몽유와에서도 군경진압으로 인해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과 사망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파업위원회 관계자 중에도 체포된 이들이 늘어가며 집을 떠나 절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숨어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판다의 수배생활도 얼마 가지 못했다. 지난 4월 15일, 여느 때와 같이 시위대의 시작을 알리는 오토바이 부대와 시위현장으로 이동하던 판다 일행은 갑자기 나타난 차량에 받혀 나뒹굴었다. 차에서 사복을 입고 내린 사람들이 판다만 집중적으로 구타를 하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한 일행은 “판다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았다. 사복을 입은 자들은 군인들이 분명했고, 그들은 분명 판다를 노린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날 또 다른 목격자에 의하면 모든 길목마다 일반 차량으로 위장한, 판다 체포를 위한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길로 가든 그날 판다는 체포될 운명이었다.

체포된 그가 끌려간 곳은 경찰서가 아니고 미얀마군 북부사령부라는 군부대 안이었다. 그는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군대 안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체포 다음 날 군부는 얼굴에 고문과 구타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사진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보통 어느 정부든 가능하면 고문의 흔적을 가능한 지우고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반대로 고문한 걸 자랑하는 듯한 전혀 차원이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는 시위대의 상징이었던 판다의 고문으로 얼룩진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일종의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심리전으로 보이다.

“판다는 끌려갔지만 우리 모두 판다”

판다의 체포 후 몽유와는 비통에 빠졌다. 시위를 이끌던 주축 세력이었던 파업위원회와 학생운동 조직의 주요 인물들은 조직을 재정비하기 바빴다. 그리고 판다의 뒤를 이어 칸 웨이 표(26)라는 인물이 시위의 리더로 거리에 나섰다. 그는 “판다는 끌려갔지만 우리 모두 판다이고 더 많은 판다가 시위를 이끌어갑니다”라고 말하며 몽유와의 시위는 하루도 멈추지 않고 재개됐다. 양곤도 이제 군인들의 진압이 심해 골목에서 시위가 겨우 열리지만, 몽유와는 지금도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수천명이 참석하는 시위가 매일 열린다. 시위와 함께 몽유와 타르시 시장에는 채소와 쌀을 이웃들과 서로 나누고 시민에게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하는 ‘이상한 시장’이 열린다. CDM에 참여하느라 일을 할 수 없어 생활비가 없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준다.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 시장에 와서 식량을 담아간다. 기자가 몽유와 시민에게 많이 한 질문이 “왜 유독 몽유와는 저항 시위가 거셉니까?”인데 그 질문에 누구도 딱 떨어지는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몽유와 사람들이 저항의식이 강하다는 알 수 없는 답만 들었다.

4월 21일 몽유와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몽유와 가제트가 문을 닫았다. 유일한 몽유와 언론사로서 연명하던 이 신문사가 문을 닫은 이유는 군부의 압박도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재정난이었다. 양곤은 여러 지원이 들어왔지만 몽유와는 외부 지원이 전무하다. 몽유와 시민들은 이 신문사의 폐업을 아쉬워하면서 “몽유와 시민들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에 신문사가 다시 들어와 몽유와 소식을 전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봄은 아직 몽유와에 오지 않았다.

<김니나노(가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