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어가 잠든 집(The House Where the Mermaid Sleeps)
제작연도 2018
제작국 일본
상영시간 120분
장르 드라마
감독 츠츠미 유키히코
출연 시노하라 료코, 니시지마 히데토시, 사카구치 켄타로, 카와에이 리나
개봉 2022년 1월 28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을 코앞에 두고 다급히 국내 포스터를 변경했다. 원작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부담스러울 정도로)을 제목보다 크게 내세웠다. 원작자의 인지도가 다른 어떤 요소보다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할 것이란 기대를 반영한 수정이었으리라.
왕성한 창작력으로 다작 집필로 유명한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실제로 작품수가 많기도 하지만, 인기도 대단하다. 작품 대부분이 대중의 큰 지지를 얻어 20여편의 영화를 비롯해 드라마, 연극, 만화 등 수많은 영상물의 원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인어가 잠든 집>은 특별히 그가 작가데뷔 30주년을 기념해 2015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출간과 동시에 자국인 일본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다소 뒤늦은 2019년 정식 출간 이후 상반기 문학 베스트셀러 5위를 기록하고, ‘청소년이 직접 추천하는 청소년추천도서’ 목록에 들어가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데뷔 30주년 기념이라는 의미를 지닌 만큼 <인어가 잠든 집>은 기존 작품과 비교해 사회적 문제와 깊은 정서에 좀더 집중한 흔적이 역력하다. ‘뇌사’라는 소재와 이에 뒤따르는 ‘존엄사’ 또는 ‘안락사’ 논쟁을 대담하게 담론화한 작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본질적 의문부터 삶과 죽음, 사랑과 정의라는 보편적이고 거시적인 영역까지 고민을 자연스레 넓히고 있다. 이를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반영했다.
평범한 가족에게 찾아온 비범한 비극
건실한 IT 기업을 운영하는 가즈마사(니시지마 히데토시 분)와 아내 가오루코(시노하라 료코 분)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 곧 다가올 어린 딸 미즈호의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이혼을 유보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딸이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이전까지의 평범한 일상은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의사의 권유대로 부모는 깊은 고민 끝에 장기기증을 결정하지만, 마지막 작별인사의 순간 미즈호가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가오루코는 딸을 집으로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아빠 가즈마사도 회사의 첨단기술을 이용해 미즈호의 신체기능이나마 최선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딸을 향한 엄마의 애착과 희망은 주변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드세게 변해간다.
감독 츠츠미 유키히코는 아동공포물 <신생 화장실의 하나코>(1998), TV드라마를 기반으로 특별판 영화로 확장한 <케이조쿠>(2000), <트릭>(2002), <스펙>(2012) 등을 통해 주가를 올리고, 인기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대작 <20세기 소년>(2008) 3부작 등을 연출하며 장르영화에 꾸준한 애정을 과시해왔다.
테러리스트가 강탈한 최신예 전투 헬기를 소재로 한 재난 스릴러 <천공의 벌>(2015)을 통해 앞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영화화했던 인연이 이번 작품을 신뢰할 만한 또 하나의 중요 요소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시노하라 료코의 재발견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사이사이 너무 감정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어느 정도 거리 두기가 느껴진다. 따뜻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위태롭고 불안하게 꾹꾹 누르고 있던 억눌린 감정은 종국에 이르러 뜻밖의 광기로 결국 폭발하고 이는 관객에게 강한 충격과 더불어 쉽지 않은 질문을 안긴다.
각자 제 몫을 충실히 해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무난하지만, 그중에서도 엄마 가오루코를 섬세하게 연기하는 시노하라 료코의 존재감은 특별히 눈에 띈다. 어린 딸의 사고로 죄책감과 실낱같은 희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점차 주변사람들을 두렵게 만들 만큼 집착적인 모성애를 보이는 카오루코란 인물의 고뇌와 슬픔은 이 작품이 던지는 쉽지 않은 이야기의 심란함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한다.
1990년, 아이돌 그룹 ‘도쿄 퍼포먼스 돌’로 연예계에 데뷔한 시노하라 료코는 2001년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후 드라마 <언페어>, <파견의 품격> 등을 통해 연기자의 입지를 굳혔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한국영화 <써니>의 일본판 리메이크 등으로 연기의 폭을 넓힌 그는 이번 작품에서의 호연으로 제43회 호치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5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인 덴소에 취업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소설을 써 1995년 발표한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도쿄로 상경한 그는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시작하는데,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다수의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사람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는 왕성한 창의력에 더해 부지런한 작업습관으로 다작을 하기로 유명하다. 2014년에는 무려 9권의 작품을 출판해 화제가 됐는데, 지금까지도 매년 평균 2~3권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열혈 팬을 자처하는 독자들조차 지치게(?) 만드는 진정한 다작 작가의 대명사다.
대부분의 작품이 미스터리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 추리물 작가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정통적 장르 팬들 사이에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논리와 트릭에 집중하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화제나 인물들의 감정에 무게를 싣는 작품들도 많기 때문이다. 또 외형적으로도 관습적인 추리물 형태를 벗어난 작품들이 많다. 추리소설과 사회소설의 절묘한 지점에서 존재하는 그만의 장르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용의자 X의 헌신>이다. 한국 독자에게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된 이 작품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로는 최초로 3개 부문 베스트 1위 기록을 달성했고 일본, 한국, 중국, 인도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비밀>, <백야행>, <방황하는 칼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작품도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