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한국 첫 우주 드라마, 물음표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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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초청으로 영화인들 앞에서‘SF다운 SF영화’란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SF가 시청각매체와 융합되면 그 잠재력이 엄청나겠지만 그러자면 먼저 SF다운 ‘꼬라지’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손 웰스가 할리우드의 기린아로 이른 데뷔를 하게 된 건 그가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를 들은 LA의 시민 약 170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온 사건이 계기가 됐다. 드라마가 얼마나 실감났던지 중간부터 들은 청취자들은 뉴스보도로 착각해 진짜 화성인들이 지구로 쳐들어온 줄 알았다고 한다.

<고요의 바다> 포스터 /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포스터 / 넷플릭스

2000년 이후 한국에서도 종종 SF영화를 만들고 있으나 눈길 가는 작품은 별로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나 로봇만 눈요기꺼리로 보여주면 SF 아니겠느냐”는 제작진의 안일한 인식이 작품의 디테일은 물론이고 주제의식까지 좀먹기 일쑤였다. 몇몇 예를 보자.

<동감>에서 서기 2000년의 남자 대학생이 왜 웹채팅 대신 구하기도 힘든 HAM(개인무선통신)을 즐기는지 모르겠지만 HAM의 전원코드가 꽂혀있지 않은 장면을 일부러 강조하는 감독의 과감한(?) 연출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2009 로스트메모리즈>는 고구려유적 ‘영고대’가 실은 타임슬립이 가능하다는 억지를 부려 복거일의 원작소설을 훼손했다. <인류멸망보고서>에서처럼 대개의 한국 SF영화들은 상황 묘사 대신 배우의 대사에 기대 고지식한 내용을 지루하게 전달하며 소위 이름값 하는 배우들조차 딱딱한 기색으로 일관하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고요의 바다>는 어떨까? 우주를 무대로 한 한국 최초의 정극 드라마이지만 아쉬움이 크다. 환경오염으로 물이 귀해진 미래의 척박한 삶은 디스토피아 이야기의 흔한 소재이지만 생명체와 접촉하면 그것을 숙주삼아 급속히 증식하는 월수(月水)란 아이디어는 동위원소 개념을 연상시켜 흥미로웠다. 덕분에 <고요의 바다>

는 짐짓 진지한 분위기로 한껏 SF분위기를 내는 도입부를 넘어서자마자 호러 장르와 결탁해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의 진부한 전철을 밟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뚱맞은 괴물이 나오지 않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3부작으로 충분했다는 비판에도 공감한다. 배우들의 호연에도 엉성한 연출과 산만한 전개 탓에 드문드문 끊어진 필름조각들을 대충 이어붙인 느낌이랄까. 특히 SF의 꼬라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많다. 달의 중력이 지구의 1/6이란 사실을 망각한 장면들로 도배한 건 문제였다. 달 표면에서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아리송한 우주복 차림 대원들의 스텝도 그렇지만 기지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지구에 돌아온 양 돌변하는 행동거지는 우리 눈에 자연스러운 만큼 실제로는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월수 연구에 인체실험이 굳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동물과 인간의 체세포 배양액에 월수를 떨어뜨리고 물 입자 증식현상을 관찰하면 되지 않나? 왜 아야나미 레이의 복제판들을 무수히 거꾸로 매단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설정을 빌려왔는지 모르겠다. 정부 차원의 비윤리적 실험 및 은폐 시도라는 설정을 넣을 수 없어 심심해질까봐? 한국정부와 월수 확보를 놓고 이권을 다투는 상대가 RX용병단이란 설정도 개연성이 약해보이지만 월수에 적응한 인간이 대기 없이 섭씨 영하 173도에서 영상 116도 사이를 오가는 달 표면에서 우주복을 벗어던지고도 멀쩡한 ‘엔딩’은 또 어찌 이해해야 할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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