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극장전]화려한 도시 불빛 속 ‘내 집은 어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지 한달여 만에 다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재개됐다. 일일 확진자가 연일 역대 기록을 경신하는 가운데 응급병상이 한계치라 확진자 일부는 자가격리를 취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조치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노숙인 문제다. 애초에 독립된 공간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시로 발생하는 보호시설 내 집단감염 문제로 당사자들이 시설 이용을 꺼리면서 겨울철 동사까지 발생하는 형편이다.

한국 대도시 노숙인 문제가 대두된 건 1997년 IMF 사태 이후다. 실직자와 몰락한 자영업자들 일부가 노숙인으로 추락하면서 한국사회는 해당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전처럼 극소수 ‘행려병자’, ‘부랑자’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후 사반세기 동안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도시공간 노숙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 / 넷플릭스

물론 우리가 노숙인 문제 하면 떠올리는 미국에 비하면 아직 인구 대비 숫자는 적은 편이지만 사회양극화 심화와 취업절벽, 가파른 주거비용 상승 등 위험요소는 안심은커녕 위기감으로 다가온다. 타산지석으로 미국 노숙인 실태는 어떨까 궁금한 이들에게 마침 안성맞춤의 자료가 도착했다. 넷플릭스가 11월 말부터 공개한 40분짜리 다큐 <나의 집은 어디인가>다.

영화는 2017에서 2020년까지 4년간 LA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서부 대도시 노숙인 사례를 담는다. 20명 가까운 노숙인이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50만~60만명이 넘는 숫자만큼 이들의 상황과 조건 역시 우리 통념과 달리 다양한 결을 갖고 있다. 9·11테러 이후 심리적 트라우마로 노숙에 접어든 사람,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 후 가족과 단절된 사람, 질병으로 인한 파산으로 노숙생활을 시작한 사람 등 평범한 이웃이던 사람들이 제각각 사연을 안고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체험으로 증명한다. 일자리를 찾아 수입을 얻으면 그만큼 복지수당이 감소해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방을 구해도 몇달 안 가 대도시의 살인적인 임대료 때문에 다시 거리로 돌아오는 사연은 남 일이 아니다. 밤에는 시설에서 잘 수 있지만, 아침이 되면 도서관 등 공공시설이나 거리를 배회해야 한다. 아이를 동반한 여성 노숙인은 2주 후 집세와 오늘 당장 한끼 잘 먹는 식사 중 뭘 택하겠냐며 자조한다.

노숙인은 물리적 폭력에도 노출돼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신질환과 알코올·마약중독 등으로 폭력적 면모를 보이며 그 피해 대상은 대부분 여성 노숙인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노숙인에 대한 일반 시민의 공격도 점점 심각해진다. 그 대상 또한 유색인종, 여성과 노인, 성소수자에 집중되고 있다.

방구석 극장전

지자체 관계자들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 대도시 인구는 정체 상태인데 4년간 2배로 노숙인 숫자가 증가한 건 지역사회 붕괴의 전조다. 하지만 재정은 제한돼 있고 불황은 새로운 노숙인들을 계속 유입시킨다. 거기에 코로나19는 새로운 난제로 대두된 상태다. 어려운 이들에게 사회적 위기는 항상 더 가혹한 법이다. 결국 노숙인 문제는 사회시스템의 위기를 반영하는 징후라고 제작진은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