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소문-‘기묘한’ 살인을 파헤치는 ‘현실적인’ 경찰

경찰을 배경으로 한 일본 작품에선 종종 형사들이 <태양을 향해 짖어라!>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태양을 향해 짖어라!>는 1972년부터 1986년까지 방영된 일본의 형사드라마로 재일 한국인 2세 마츠다 유사쿠가 청바지를 입은 반항적인 형사로 분해 큰 인기를 끌었다. 후대 형사들에 의해 이 드라마가 소환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 번째는 조직 내 세대 차이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일선에서 활약하는 젊은 경찰관들에겐 <춤추는 대수사선>이 더 익숙하고 심지어 이 드라마조차 이제는 낡은 것으로 치부됨으로써 여러 세대가 한데 어우러진 경찰조직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소재로 통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소문>(오기와라 히로시 지음)의 표지 / 모모

<태양을 향해 짖어라!>가 대개 한탄조로 입에 오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마츠다 유사쿠를 동경해 경찰이 됐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현실은 온통 격무와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는 자조와 냉소로 작중 경찰 업무에 재차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문>은 불온한 소문에 정확히 부합하는 살인사건을 오로지 발품과 끈기로 파헤치는 형사들의 이야기다. 언제부터인가 도쿄의 여고생들 사이에서 레인코트를 입은 살인마가 소녀들을 살해하고 발목을 자른다는 괴담이 퍼진다. 어디까지나 도시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실제로 발목 잘린 여고생 시체가 발견되면서 소문의 근원은 곧 주요한 수사대상이 된다. 이 소문에는 ‘뮈리엘 로즈’라는 향수를 뿌리면 살인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덧붙는데, 실은 한 광고회사가 기획한 입소문 전략이 그 시작이었다. 이제 소문은 결코 허황된 도시괴담, 교활한 판매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발목 잘린 시체가 연이어 등장하고 이에 대응코자 수사본부가 꾸려진 가운데 형사 고구레와 나지마는 짝을 이뤄 기묘한 살인의 실체에 접근한다.

<소문>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수사 방식에 바짝 밀착한 작품으로, 본격적인 경찰 소설은 아니면서도 경찰시스템과 형사들의 내밀한 고민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40대 베테랑 형사 고구레는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고등학생인 딸을 돌보고자 출셋길인 경시청 근무를 마다하고 스스로 지역 경찰서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딸과 밥 한끼 함께할 시간조차 내기 어렵다. 경시청 소속인 여성 형사 나지마 역시 수사본부가 설립된 후에는 아예 서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 둘이 피해자 주변을 탐문하는 과정 또한 무척 지난하고 더디게만 다가온다. 하지만 그래서 사건의 핵심이자 소문의 대상인,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10대라는 이질적인 생물의 생태에 접근하는 형사들의 방식은 더욱 진실하고 우직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번화가를 맴도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어른이 돼버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들” 역시도 핍진한 배경을 넘어 마침내 작품의 핵심까지 건드린다.

장르물 전성시대

최근 재출간된 2001년작 <소문>은 CCTV도 얼마 없고 막 휴대폰과 인터넷이 보급돼 추악한 욕망에 마구 휘둘리는 2000년대 초반을 더욱 흥미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무엇보다 정해진 근무시간에만 일하고자 제복 경찰을 희망하는 고구레의 고민은 형사의 현실적인 갈등과 불가해한 사건의 실상을 절묘하게 아우른다. 게다가 고구레와 나지마가 파트너로서 서로에게 보내는 신뢰와 존경 또한 갈수록 마음을 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지난 시대의 경찰이 반전을 거듭하는 사이코 미스터리에 묘미는 물론 풍미까지 더한 셈이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